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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이미지./사진=클립아트코리아
40~50대 경제활동인구 중 만성콩팥병 환자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는 가운데, 정부가 투석 환자들이 병원을 방문하지 않고도 집에서 투석할 수 있는 ‘복막투석 재택관리 시범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적정 수가가 보장되지 않아 병원이 혈액투석을 선호하면서 관련 인프라가 붕괴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제활동 인구에서도 급증하는 만성콩팥병
만성콩팥병이 고령층 중심의 질환에서 벗어나 경제의 핵심축인 생산가능 인구층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실제 국내 경제활동인구 중 만성콩팥병 환자수는 최근 10년간 급격히 증가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최보윤 의원실에 따르면 경제활동인구 내 만성콩팥병 환자는 2015년 8만6356명에서 지난해 12만1821명으로 41.1% 증가했다.

만성콩팥병 환자는 말기까지 진행되면 생명 유지를 위해 필수적으로 투석 치료를 받아야 한다. 대표적인 방식으로는 복막투석과 혈액투석이 있다. 복막투석은 환자 본인의 복막을 이용해 체내 노폐물을 제거하는 방식으로, 혈액투석과 달리 주 3회 병원에 방문할 필요가 없다. 다만 스스로 복막 카테터를 통해 투석액을 주입·배액해야 해 거동불편자나 고령자에겐 힘든 측면이 있다.

경제활동을 하는 환자에겐 ‘병원에 가지 않고 집에서도 가능한 투석’으로 불리는 복막투석이 유리하다. 실제 혈액투석을 하는 데 소요되던 주당 평균 20시간을 경제활동이나 여가생활에 투입할 수 있기 때문에 삶의 질 측면에서 복막투석이 나았다는 환자 설문 조사 결과가 있다.

◇투석 환자 중 5%만 복막투석
보건복지부는 2019년 12월부터 올해 말까지 복막투석 환자를 주기적으로 관리하고 안전하게 자가 관리를 할 수 있도록 교육·상담을 제공하는 시범사업을 시행 중이다. 현재 상급종합병원 43곳을 포함한 93개 의료기관이 참여하고 있는데 시범사업 참여 환자의 의료비용 및 의료이용 감소, 출구염 및 복막염 감소 등 임상지표 개선, 높은 환자 만족도 등 효과가 높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러나 국내 투석환자 12~13만만명 중 복막투석을 받는 비율은 약 5%에 그친다. OECD 평균(약 30%)의 3분의 1에도 못 미친다. 이마저도 지속적으로 감소하는 추세다. 2012년 7752명(전체 투석환자 중 13.5%)이었던 복막투석 환자는 2023년에는 5253명으로 쪼그라들었다.


복막투석 환지 비율이 낮은 원인은 복합적이다. 먼저 수가다. 복막투석 환자를 관리하는 의료진은 투석 교육, 감염 관리, 합병증 모니터링 등을 수행하지만 청구하는 수가는 진찰료 1만3000원 정도가 전부다. 병원 입장에선 복막투석 환자는 시범사업 수가를 최대치로 받아도 병원 수입이 연간 100만원에 못 미치지만, 혈액투석 환자의 경우 약 2000만원에 달한다
또 복막투석을 하는 환자 자체가 적다보니까 거부감을 갖는 환자도 많다. 수도권 소재 종합병원 신장내과 A 전문의는 “거의 모든 환자들이 혈액투석을 받다 보니 복막투석을 권유해도 다른 환자는 다 병원에서 투석 받는다고 거절하는 경우도 많다”며 “일단 시작하면 대다수 만족하지만 처음 집에서 혼자 시작할 때 정서적 어려움을 느끼는 환자들이 많다고 한다”고 말했다.

◇복막투석, 2030년엔 국내서 사라질 수도
문제는 이대로라면 국내 복막투석 기반이 소멸할 수 있다는 점이다. 복막투석 환자가 줄면서 의료진 교육과 수련 기회도 사라지기 때문이다. 이동형 대한신장학회 홍보이사(범일연세내과)는  “2000년대 초반만 해도 한 상급종합병원 복막투석 환자가 800명 이상이었는데, 지금은 전국적으로 4000명대에 불과하다”며 “젊은 의사들이 복막투석 환자를 접할 기회가 없다 보니 실제 현장에서 복막투석을 권하지 못하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대로면 향후 10년 내 국내 복막투석이 사실상 사라질 수 있다는 우려가 의료계 내부에서 나오고 있다.

산업 생태계는 이미 붕괴하고 있다. 실제 복막투석액을 생산하던 보령제약은 올해 해당 제품 생산을 중단했다. 이동형 이사는 “복막투석 환자가 줄면서 시장이 너무 작아져 기업이 수익을 맞출 수 없게 됐다”며 “국내 생산이 중단되면 해외 공급망 문제가 생기거나 팬데믹 같은 위기 상황이 오면 환자들이 큰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고 말했다.

◇복막투석 살리려면 수가 개선과 재택관리 체계 시급
전문가들은 복막투석이 지속 가능하려면 수가 개선과 재택 관리 체계 확립이 병행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A 전문의는 “의료진이 복막투석 환자를 관리해도 병원 수입이 거의 없어 인력이 붙지 않는다”며 “복막투석 관리 수가 신설과 전담 간호사 인건비 보전이 가장 시급하다”고 말했다.

아울러 원격 모니터링이나 방문 간호 시스템을 결합한 복막투석 관리 모델 도입도 필요하다. 프랑스 등 일부 유럽 국가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방문 간호형 복막투석(Assisted PD)’을 운영한다. 간호사가 하루 4회 가정을 방문해 투석을 도와주고, 이에 대한 수가를 받는 제도다.

이동형 이사는 “혈액투석 중심의 구조를 그대로 두면 의료비 부담이 폭증할 수 있다”며 “복막투석과 재택 혈액투석 등 다양한 치료 옵션을 제도적으로 지원해야 국가 재정과 환자 모두를 지킬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