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인사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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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세브란스병원 조리실 직원이 식단을 이동 카트에 넣고 있다./사진=강남세브란스병원 제공
최근 위암 수술을 받은 60대 남성 A씨는 점심시간이 되자 병실 앞에 놓인 식판을 꺼냈다. 미음 한 그릇과 으깬 두부조림, 잘게 썬 애호박볶음, 미지근한 보리차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물조차 넘기기 힘들었지만, 지금은 한 숟갈씩 삼킬 수 있다. 병원 영양팀이 위를 절제한 그에게 맞춰 지방 함량을 줄이고 섬유질이 적은 채소 반찬으로 식단을 구성한 결과다. 이처럼 병원에서 제공되는 환자식은 단순한 식사가 아니다. 영양과 치료, 회복의 균형이 맞아야 하며, 환자의 질환과 상태에 따라 영양소와 식감까지 세밀히 조정해야 한다.

강남세브란스병원은 질환별 식단을 코드화해 ‘표준화된 치료식 모델’을 운영하고 있는 대표 의료기관 중 하나다. 병원 영양팀은 의료진과 함께 ‘대사증후군 식사 가이드’, ‘저당지수 식사 가이드’ 등의 저서를 작성할 정도로 임상영양에 대한 역량이 뛰어나다. 식욕 없는 환자들이 한술이라도 더 뜨게 만들기 위해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다만 식자재·인건비가 오르는 것에 비해 환자식 수가는 더디게 올라 식단을 짜는 게 점점 어려워지는 실정이다. 강남세브란스병원 이호선 영양팀장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100가지 넘는 식단… 단체 급식 아닌 ‘맞춤 급식’
환자의 식단은 의사의 처방에 따라 제공된다. 크게 일반식과 치료식으로 나뉜다. 치료식은 질환에 맞게 영양성분을 조절한 식단이다. 질환뿐만 아니라 환자의 ‘먹는 능력’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외과적 수술이나 노화로 삼킴 기능에 문제가 생기면 부드러운 반죽형, 묽은 죽 형태의 음식만 섭취할 수 있다. 이호선 팀장은 “현재 운영 중인 치료식만 46종, 밥과 죽, 유동식을 합하면 100가지가 넘는다”며 “단체 급식이라기보다 환자 맞춤 급식에 가깝다”고 말했다.


이런 다양성을 구현하기 위해 병원측은 질병에 따라 식단을 코드화했다. 영양팀은 전산으로 내려오는 처방을 확인해 식단을 조정하고, 조리실에서는 이를 기준으로 메뉴를 준비한다. 과거에는 탄수화물·단백질·지방 등 영양성분 기준으로 처방했는데 의료진과 영양팀 간 소통이 어려웠다고 한다. 그래서 심부전식, 신부전식, 당뇨식처럼 질환명 중심으로 코드화했다. 식단의 영양성분 기준치는 의료진 포함 원내 영양위회의 인준을 받아 업데이트 한다.

영양팀이 영양성분 다음으로 신경 쓰는 건 위생이다. 모든 음식이 그렇겠지만 환자식은 특히 위생관리가 중요하다. 식중독이라도 발생하면 환자의 병세가 금세 악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팀장은 “식재료가 일반구역에서 전처리된 후 조리구역으로 이동하면 다시 돌아오지 못하도록 시스템을 구축했다”라며 “냉장고와 냉동고는 일반구역과 조리구역 사이에 있는데 조리구역에서는 식재료를 꺼내기만 하는 구조”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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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조리실 풍경./사진=강남세브란스병원 제공
◇환자식 꾸준히 개발하지만… 당뇨병 합병증 신장질환 식단은 난제
최근에는 환자들의 만족도가 중요해지고 있다. 병원식의 품질 향상을 위해서라도 환자 피드백은 중요한 지표다. 병원은 분기별로 식사 만족도 조사를 진행하고, 매주 위탁업체와 회의를 통해 개선점을 논의한다. 맛과 위생, 서비스 등을 평가받고, 민원이 반복되는 메뉴는 교체하기도 한다. 이 팀장은 “맛없다는 민원이 많은 식단은 영양사가 직접 병실을 방문해 설명하고, 가능한 범위에서 조정한다”라며 “컨디션 회복이 우선일 땐 일반식을 제안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환자들이 더 잘 먹을 수 있도록 식단을 개발하는 것 역시 원내 영양팀의 역할이다. 최근에는 외과 환자에 특화된 치료식 개발이 활발하다. 수술 직후 섬유소 섭취가 어려운 환자를 위해 채소 반찬 대신 채소를 갈아 주스 형태로 제공하는 등 식사 다양성을 높이는 시도도 진행 중이다. 올해는 췌담도 수술 환자를 위한 식단 개선을 추진 중이다. 이호선 영양팀장은 “과거에는 절제 범위가 넓어 식사 제한이 많았지만, 의료진과 협의해 허용 가능한 범위를 조정하고 메뉴를 다양화했다”며 “실제 환자 만족도도 이전보다 높아졌다”고 말했다.


다만, 난제도 있다. 이 팀장이 꼽은 가장 어려운 식단은 당뇨병에 신장질환이 동반된 환자식이다. 칼로리를 제한하면서 단백질도 줄여야 하고, 채소·과일 속 칼륨과 인도 제한해야 한다. 칼륨이 많은 잡곡밥도 제한돼 흰밥과 반찬1~2개만 나가는 경우가 많다. 먹을 수 있는 게 많지 않아 환자도, 영양사도 곤욕을 치르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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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세브란스병원 이호선 영양팀장./사진=강남세브란스병원 제공
◇식대 6000원대… “조금 비싼 커피 한 잔 값”
병원식은 건강보험 수가 기준에 따라 운영된다. 2025년 기준 일반식은 6760원, 치료식은 7210원이다. 매년 인상되지만 최근의 물가상승률을 고려하면 빠듯하다는 게 이 팀장의 설명이다. 2024년 연간 소비자물가지수는 전년도 대비 2.3% 올랐고 신선식품지수는 9.8% 상승했다. 그러나 환자식 수가는 전전년도 소비자물가지수 변동률이 반영될 뿐이다. 최저임금이 급격히 오른 2018~2020년에도 식대 인상률은 1%대에 그쳤다

이 팀장은 “식재료는 물론 인건비 등 모든 비용을 해당 금액 안에서 운영해야 한다”며 “특히 채소값이 많이 올라 재료의 질을 높이는 게 어려운 실정”이라고 말했다. 또 “비싼 커피 한 잔 값으로 환자식 한 끼를 제공한다는 자조적인 목소리 있다”고 말했다.


끝으로 이 팀장은 “질환에 맞는 식사가 원칙이지만, 환자가 잘 먹는 것이 결국 치료의 시작”이라고 말했다. 그는 “영양 상태를 유지하거나 개선하기 위해서는 환자가 식사 자체를 거부하지 않도록 돕는 것이 중요하다”며 “식단은 치료의 일환임과 동시에 환자들에게 올바른 식단 구성의 예시가 되고, 영양 교육의 장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