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립: 희귀병을 앓는 사람들] <5> 산필리포증후군 환아 김세빈(7) 양
<편집자 주>
희귀질환을 앓는 환자와 그 가족들은 삶을 ‘외딴 섬’에 비유하곤 합니다. 분명 같은 세상에 살고 있지만, 자신들만 외따로이 떨어져 고립된듯하다는 의미입니다. 실제 그들의 삶은 절해고도(絕海孤島)에 갇힌 것처럼 외롭고 힘겹습니다. 누구보다 관심과 도움이 절실하지만, 실상은 대부분의 문제를 환자와 가족들이 온전히 짊어지고 있습니다. 간혹 단지 소수라는 이유로 다수를 위한 희생의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고립]이 그들의 아프고 쓸쓸한 투병기를 전합니다.
병마로 예기치 않게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내는 일은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큰 아픔이고 슬픔이다. 상대가 어린 자녀일 경우엔 더더욱 그렇다. 오죽하면 이를 ‘참척(慘慽, 참혹할 참·슬플 척)’이라고 말할 정도다. 그런데 간혹 참척의 고통을 앞두고도 덤덤해 보이는 이들이 있다. 오랜 시간 아픈 자녀를 돌봐온 부모들이 더러 그런 모습을 보인다.
일곱 살 ‘산필리포증후군’ 환아 김세빈 양의 어머니 진혜민 씨(29)도 “이제는 무뎌진 듯하다”고 했다. 산필리포증후군은 아직까지 치료제가 개발되지 않은 희귀질환이다. 치료제가 없다는 건 지금으로선 병의 진행을 막을 길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혜민 씨는 쉽게 슬픔이나 무기력에 빠지지 않는다. 매일 딸과 조금이라도 더 행복한 기억을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할 뿐이다. 그는 “세빈이를 돌보다보면 ‘내가 아니면 아이가 잘못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며 “그렇기에 더욱 더 무너지면 안 된다고 마음먹는다”고 말했다.
◇출생 직후 원인 불명 이상 증세… 진단까지 5년
세빈 양은 임신 36주 5일차에 만삭(37주)이 거의 다 돼서 태어났다. 아들만 둘이던 혜민 씨 가족에게 찾아온 첫 여자 아이였다. 선물과도 같은 아기였지만 품에 안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세빈 양은 출생 직후 신생아호흡곤란, 난청, 뇌실확장 등을 진단 받았다. 이후 만성폐질환까지 더해져 신생아중환자실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야 했다. 혜민 씨는 “같은 중환자실에 있는 신생아들은 보통 한 달이 되기 전에 다 퇴원했는데, 세빈이는 한 달 넘도록 산소호흡기를 떼지 못하더라”고 회상했다.
세빈 양은 임신 36주 5일차에 만삭(37주)이 거의 다 돼서 태어났다. 아들만 둘이던 혜민 씨 가족에게 찾아온 첫 여자 아이였다. 선물과도 같은 아기였지만 품에 안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세빈 양은 출생 직후 신생아호흡곤란, 난청, 뇌실확장 등을 진단 받았다. 이후 만성폐질환까지 더해져 신생아중환자실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야 했다. 혜민 씨는 “같은 중환자실에 있는 신생아들은 보통 한 달이 되기 전에 다 퇴원했는데, 세빈이는 한 달 넘도록 산소호흡기를 떼지 못하더라”고 회상했다.
중환자실을 나온 후에도 병동 생활은 이어졌다. 그 사이 잦은 중이염으로 인해 두 차례 튜브 시술을 받았고, 뇌전증 진단까지 받는 등 크고 작은 문제들이 계속 나타났다. 발달 지연이 확인돼 생후 16개월부터는 발달 치료도 받았다.
원인을 찾기 위해 온갖 검사를 다 받아봤지만 결과는 언제나 ‘불명(不明)’이었다. 아기에게는 계속 이상 증세가 생기는데 영문도 모른 채 지켜봐야만 하니, 부모 입장에선 속상하고 답답할 뿐이었다. 혜민 씨는 “유전자검사도 진행했지만 원인을 알 수 없었다”며 “얼굴 생김새가 변하고 몸에 털이 많아졌는데, 당시엔 스테로이드 사용에 따른 부작용이라고만 생각했다”고 했다.
그러다 병원을 옮기기 위해 1500장에 달하는 의무기록지를 발급 받아 확인하던 중 과거 이비인후과에서 다른 질환에 대한 의심 소견을 내놓은 것을 우연히 발견했다. 의료진은 리소좀축적질환 여부를 확인하는 유전자검사를 권했고, 검사를 통해 세빈 양이 해당 질환의 일종인 산필리포증후군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게 됐다. 신생아 때 증상이 나타난 뒤 5세 가을에 확진을 받았으니, 원인 질환을 찾기까지 약 5년이 걸린 셈이다. 풀리지 않던 궁금증이 이렇게 해결될 줄 상상이나 했을까. 혜민 씨는 “진료실을 나와서 인터넷 검색을 해봤는데 예후가 정말 안 좋다고 나와 있었다”며 “5년 동안 투병하면서 ‘뭐라도 나왔으면’ 했지만, 막상 그 원인이 심각한 병이라고 하니 무너지게 되더라”고 말했다.
◇증상 조절 위해 먹는 약만 10개… 치료제는 없어
세빈 양이 진단 받은 산필리포증후군은 유전성 대사질환인 ‘뮤코다당증’ 3형으로, 헤파란황산염(뮤코다당류)을 분해하는 데 필요한 효소가 부족할 때 발생한다. 세포 안에 분해되지 않은 뮤코다당류가 남아 축적되면서 언어 발달 지연, 발달 정체, 인지 기능 저하, 운동 능력 약화, 호흡기 문제 등이 발생한다. 증상은 시간이 갈수록 악화되며, 생명에도 위협을 준다.
세빈 양이 진단 받은 산필리포증후군은 유전성 대사질환인 ‘뮤코다당증’ 3형으로, 헤파란황산염(뮤코다당류)을 분해하는 데 필요한 효소가 부족할 때 발생한다. 세포 안에 분해되지 않은 뮤코다당류가 남아 축적되면서 언어 발달 지연, 발달 정체, 인지 기능 저하, 운동 능력 약화, 호흡기 문제 등이 발생한다. 증상은 시간이 갈수록 악화되며, 생명에도 위협을 준다.
세빈 양 역시 산필리포증후군으로 인해 만성폐질환, 뇌전증, 만성중이염, 외사시, 난청, 뇌실확장, 뇌위축, 발달장애 등 여러 건강 문제를 겪어왔고 현재도 겪고 있다. 폐질환이 유독 심해, 산소포화도가 급격히 떨어지면서 위험한 상황에 처하는 일도 있었다. 지금도 매일 산소호흡기를 착용한 채 잠자리에 들어야 하며, 작년부터는 걸음걸이가 불안해지고 넘어지는 일이 잦아지면서 휠체어도 타기 시작했다. 난청 역시 점점 심해져 인공와우 수술을 앞두고 있다.
혜민 씨는 “언어기능이 최상의 수준이었던 때와 비교하면 현재는 반의 반도 남아있지 않은 것 같다. 과자를 까는 것도 힘들어할 정도로 근육 또한 많이 약해진 상태”라며 “전체적으로 건강이 악화되는 게 눈에 너무 잘 보여서 안쓰러운 마음이다”고 했다.
건강이 계속 안 좋아지고 있지만, 병을 치료할 수 있는 약은 아직 없는 상태다. 뇌전증 약, 간장약, 위장약을 비롯해 하루에 10개 가까운 약을 먹지만, 모두 산필리포증후군이 아닌 부차적으로 생긴 문제들과 관련된 약이다. 산필리포증후군은 A~D 유형으로 나뉘는데, 세빈 양이 앓고 있는 B형은 임상시험조차 진행되지 않았다. 그래도 최근엔 뇌척수강 내 효소대체치료제 주사와 유전자치료제 등이 임상 단계에 진입해, 신약 개발과 임상 참여에 희망을 걸어보는 상황이다.
◇“아이 생각하면 무너질 수 없어… 치료제 꼭 나오길”
혜민 씨와 같은 중증희귀질환 환아의 보호자들은 거의 매일 ‘24시간 비상근무’ 체제다.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라 한시도 아이 곁에서 떨어질 수 없다. 남들처럼 회사 생활을 한다거나 개인적인 취미 활동을 하는 건 상상하기 힘들다.
혜민 씨와 같은 중증희귀질환 환아의 보호자들은 거의 매일 ‘24시간 비상근무’ 체제다.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라 한시도 아이 곁에서 떨어질 수 없다. 남들처럼 회사 생활을 한다거나 개인적인 취미 활동을 하는 건 상상하기 힘들다.
세빈 양 역시 매주 병원 진료와 재활 치료를 받고, 두 달에 한 번 정도 치료를 위해 입원한다. 그때마다 늘 혜민 씨가 동행한다. 활동보조사를 구해 도움을 받는 방법도 있지만, 뇌전증 발작 증상이 있고 휠체어를 타는 세빈 양은 그마저도 쉽지 않다. 움직임이 제한되는 데다, 돌발 행동을 하거나 위급한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어서다. 그나마 완화의료와 중증소아재택의료 대상자로 지정돼 조금씩 도움을 받는 정도다. 혜민 씨는 “우리는 도움을 받고 있지만 이런 지원을 모르는 환우들도 많다”며 “정부가 관련 지원 인력과 예산을 늘렸으면 한다”고 말했다.
치료에 들어가는 비용 역시 만만찮다. 매주 받는 외래 진료비에 약값, 재활치료비 등을 합하면 매달 약 300만원이 치료에 사용된다. 여기에 다른 자녀들의 학비까지 더해진다. 자녀를 위해서라면 얼마든 못쓰겠냐마는, 현실은 말처럼 쉽지 않다.
그럼에도 혜민 씨는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물론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살다보니 그렇게 된 것 같다”는 게 그의 이야기다. 혜민 씨는 “예전엔 우울증 약도 복용하고 힘든 시간을 보냈지만, 지금은 많이 무뎌진 듯하다”며 “결국 엄마가 아이를 돌봐야 하기 때문에 ‘내가 무너지면 안 된다’는 생각이다”고 했다.
현재로선 세빈 양의 치료가 어렵다는 사실을 혜민 씨도 잘 알고 있다. 그렇기에 치료제 개발을 간절히 바라면서도, 한편으론 언젠가 이별의 순간이 찾아올 수 있다는 걸 항상 염두에 두고 있다.
그는 “산필리포증후군은 조금 짧지만 행복한 세상을 품 안에 갖고 가는 질환”이라며 “치료제가 꼭 나오길 바라지만, 그렇지 못한다면 남은 시간 동안 ‘떼떼 공주(세빈 양 별명)’ 세빈이가 행복한 기억만 가득 안고 너무 아프지 않은 시기에 소풍을 가면 좋겠다는 생각이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의사 인터뷰>
“부모의 사랑, 어떤 치료보다 강력… 의료진 끝까지 함께 할 것”
산필리포증후군 환아들은 처음에는 또래와 비슷하게 걷고 말하다가, 점차 말이 줄고, 인지 기능이 떨어지고, 움직임이 느려지는 과정을 겪는다. 아직까지는 근본적인 치료제가 없어, 부모는 이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고만 있어야 한다. 그래도 다행인 건 과거에 비해 치료제 연구가 활발해졌다. 당장 쓸 수 있는 약은 없지만, 현재 진행 중인 임상 연구들에 조금이나마 기대를 걸어볼 수 있다. 삼성서울병원 소아청소년과 조성윤 교수는 “산필리포증후군은 아직 치료제가 없는 매우 어려운 질환이지만, 향후 임상연구 결과가 기대되는 희망적인 질환이기도 하다”며 “최근 몇 년 사이 임상에 진입했고, 성공 가능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산필리포증후군 A~D형을 나누는 기준은?
“산필리포증후군은 모두 ‘헤파란황산’이라는 축적물을 분해하지 못해 생기는 병이지만, 결핍된 효소의 종류가 서로 다르다. A·B형이 C·D형보다 상대적으로 흔하다.”
-다른 유형의 뮤코다당증과 달리 아직 치료제가 없는데?
“현재 상용화된 뮤코다당증 치료제는 부족한 효소를 정맥주사를 통해 보충하는 효소대체요법 약이다. 이 약물은 정맥주사를 해도 혈액-뇌 장벽을 통과하지 못해 뇌신경계에는 큰 치료 효과가 없다. 뇌신경계 이외의 장기에 영향을 많이 미치는 다른 뮤코다당증 유형에서는 어느 정도 개선을 기대할 수 있는 반면, 뇌신경계에 영향을 미치는 산필리포증후군은 치료 효과가 입증되지 못했고 상용화된 치료제도 없다.”
-그럼 산필리포증후군 환자들은 어떤 치료들을 받고 있나?
“근본적인 치료제가 없어 증상이나 합병증 예방을 위한 다학제적 치료를 시행하고 있다. 발달 지연을 최대한 늦추기 위한 재활치료, 신경학적·호흡기적 평가와 관리, 완전 와상 상태나 호흡부전이 있을 때 시행하기도 하는 기관절개술, 위루관수술 등이다. 효소대체요법의 뇌내 직접 주입 요법이나 유전자 치료 등은 임상시험 단계에 있다.”
-임상 중인 약이 있다고?
“효소대체요법 치료제가 혈액-뇌 장벽을 통과하지 못하는 한계점을 극복하기 위한 임상시험을 주로 진행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수술을 통해 뇌척수액에 약물을 투여할 수 있는 장치를 삽입한 뒤, 뇌척수액에 직접 효소대체요법 치료제를 투여하는 방법이 있다. 정맥주사로 혈액-뇌 장벽에 도달할 수 있도록 약제의 분자구조를 변경하는 방법도 시도되고 있다. 최근에는 효소대체요법 치료제가 뇌척수액에 도달하게 하는 방법을 넘어, 뇌 신경계 세포의 유전자를 교정해 세포가 정상 효소를 분비할 수 있도록 하는 유전자치료제도 활발히 연구되고 있다.”
-C·D형 산필리포증후군은 상대적으로 연구가 더딘데?
“현재 산필리포증후군 관련 연구는 주로 A형에 집중돼 있다. C·D형 산필리포증후군은 환자 수가 매우 적고, 후보 물질 발굴과 임상시험이 더딘 편이다. B형의 경우 A형보다는 적지만 뇌척수강 내 효소대체치료제 주사와 유전자치료제 임상시험을 진행 중이다. C형은 전임상단계의 소규모 실험이 진행되고 있고, D형은 전세계적으로 환자 수가 극소수여서, 아직 본격적인 연구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치료제 개발을 위해 어떤 지원이 필요할까?
“산필리포증후군은 뇌 손상이 시작되기 전에 치료를 시작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신생아 선별검사 항목에 포함하거나 고위험군을 조기 선별할 수 있는 검사법 개발이 필요하다. 또한 이 질환은 환자 수가 적기 때문에 한 명 한 명이 소중한 데이터다. 임상시험을 위해 국가 차원의 환자 등록사업과 장기 추적시스템이 마련돼야 한다. 다기관·국제 공동연구를 통해 충분한 표본도 확보할 필요가 있다.”
-환아와 보호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보호자들의 헌신과 사랑은 그 어떤 의학적 치료보다 강력한 힘이 된다. 아이를 돌보는 하루하루가 지치고 힘들 때도 있겠지만, 그 시간들이 아이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큰 위로이자 행복임을 기억해줬으면 한다. 의료진도 환아와 가족 곁에서 끝까지 함께하며, 치료 기회를 넓히고 삶의 질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
☞ 산필리포증후군
리소좀축적질환의 일종으로, 소아 약 7만명 당 1명 꼴로 발생한다고 알려졌다. 2~5세부터 언어 발달 지연, 발달 정체 등의 증상이 생기기 시작하고, 시간이 지나면서 인지 기능 저하, 운동 능력 약화, 호흡기 문제가 나타난다. 현재까지 승인된 치료제는 없으며, 병의 진행을 늦추는 치료들이 주로 시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