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윤용의 藥이 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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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립아트코리아
요즈음에는 계절을 가리지 않고 온갖 과일이 나오지만, 그래도 겨울이 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과일 하면 역시 귤이다. 따뜻한 방 안에서 까먹는 귤의 향긋한 냄새는 계절의 정취를 완성한다. 그런데 이 평범한 귤껍질이 바로 한의학에서 오랫동안 귀하게 써온 약재 ‘진피(陳皮)’라는 사실을 아는 이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진피’란 말 그대로 ‘묵을 陳’ 자를 써서 ‘오래된 껍질’이라는 뜻이다. 갓 벗긴 귤껍질은 수분이 많고 성질이 강하지만, 말려서 오래 두면 맛이 순해지고 향이 깊어진다. 이렇게 숙성된 진피는 ‘비위를 따뜻하게 하고 기를 순조롭게 하며 담(痰)을 없애는 효능이 있다’ 하여 예로부터 소화불량, 기체(氣滯), 기침, 가래 등에 두루 사용되었다.

진피는 약으로 사용된 역사가 엄청나게 오래되었는데, 신농본초경에 처음 수록된 이후 탕액본초, 본초강목 등 대표적인 한약재 서적에는 반드시 진피가 수록되었다고 볼 수 있다. 『동의보감』에서는 “성질이 따뜻하며 맛은 쓰고 매우며 가슴에 기가 뭉친 것을 치료한다. 음식 맛이 나게 하고 소화를 잘 시킨다. 이질을 멈추며 담연(痰涎)을 삭히고 위로 치미는 것과 기침하는 것을 낫게 하고 구역을 멎게 하며 대소변을 잘 통하게 한다.”고 하여 소화기계와 호흡기계 모두에 유익한 약재로 꼽았다.

이처럼 기혈의 순환을 도우며 인체에 쌓인 노폐물(痰)을 없애는 대표적인 한약재로 쓰였으니, 한의학에서 소화기계 질환과 호흡기 질환의 가장 기본 바탕이 되는 처방 중 하나인 이진탕과 평위산에 모두 진피가 주요 성분으로 들어가는 것만 봐도 그 효능을 알 수 있다.

이에 역사 속에서도 진피는 널리 쓰였는데 특히 처방은 기본이요, 왕실에서는 차로도 많이 사용되었다. 장수의 상징인 영조의 경우 생강이나 인삼, 향부자, 소엽 등과 배합하여 평생 음용했다고 전해진다.

약리연구에 따르면 진피의 풍부한 정유성분은 천식에 효과가 좋고, 기침 억제, 알레르기에 효과가 있다고 보고되고 있어 기침, 천식, 기관지염에 많이 사용될 뿐 아니라 최근에는 혈중 콜레스테롤 저하, 항산화, 항비만 작용을 나타낸다는 결과도 발표되어 대사증후군에서도 치료 효과를 가지는 것으로도 나타나 더욱 주목받고 있다.

앞서 진피의 ‘진’이 묵을 진이라고 얘기했는데, 또 하나 재미있는 점은 그 이름처럼 오래 묵을수록 약효가 좋다는 점이다. 한의학에서는 육진양약(六陳良藥)이라고 하여 오래 묵을수록 약효가 좋은 6가지 약재를 꼽는데,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이름에서부터 묵을 진(陳)이 들어가는 진피다.

겨울에는 위장이 차고 에너지 순환이 정체되기 쉽다. 이럴 때는 따뜻한 아랫목에서 시원한 귤의 과육만 즐길 것이 아니라 가정에서 진피를 달여 차로 마시면 아주 좋다. 다만 집에서 먹고 난 귤껍질을 그대로 말려 차로 사용하는 것은 권하지 않는다. 한약재로 사용하는 귤껍질은 처음부터 의약품용 목적으로 귤껍질을 얻기 위해 농약을 거의 사용하지 않으며 의약품용으로 유통되기 전 다양한 검사를 받아 유통되지만, 과육을 얻기 위한 일반적인 귤에는 껍질에 농약 등이 뭍어 있을 수 있다. 따라서 가정에서 차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식품용 귤껍질을 별도로 구하는 것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