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는 나를 ‘분석’하지만, 정작 나는 내 마음을 점점 알지 못하게 된다. “AI가 대신할 수 없는 인간 고유의 힘은 무엇인가?” 바로 그 질문이 지금 우리에게 정신 인문학이 필요한 이유를 일깨운다.
인간은 자신이 모른다는 사실을 스스로 깨닫는다. 그러나 AI는 그 ‘모름’을 자각하지 못한다. 가진 정보를 끝없이 돌려보다가 답이 없을 때야 비로소 ‘모른다’고 말한다. 바로 이 차이, 모름을 자각하는 통찰력이 인간을 AI보다 우위에 서게 하는 힘이다. 인간은 지식적 겸손을 통해 사고의 지평을 넓힌다. “내가 모른다”는 인정은 배움의 출발점이며, AI 시대에 더욱 필요한 인간의 비판적 사고력이다. 지식적 겸손은 아는 자의 오만을 경계하고, 기술이 닿을 수 없는 인간의 사유 깊이를 지켜주는 힘이다.
그러나 지식적 겸손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인간에게 더 근본적으로 필요한 것은 정신적 겸손이다. 지식적 겸손이 머리의 문제라면, 정신적 겸손은 존재 전체의 문제다. 많은 사람이 “모를 수 있다”는 건 쉽게 받아들이지만, “나는 정신적으로 불완전함을 지닌 존재다”라는 사실은 좀처럼 인정하지 못한다. 그것은 자존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의 성숙은 완벽함이 아니라 불완전함의 수용에서 시작된다. 불완전함을 받아들이는 순간, 인간은 자유로워진다. 그때 우리는 타인에게 따뜻해질 수 있다.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은 마음을 병들게 하지만, 불완전함의 수용은 나와 관계를 치유한다. 정신적 겸손은 자존감을 무너뜨리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자존심의 감옥을 깨뜨리는 해방의 힘이 된다.
지식적 겸손이 사고를 열고, 정신적 겸손이 마음을 성찰하게 한다면, 그다음에 오는 것은 공감의 회복이다. AI는 데이터를 학습해 답을 내놓을 수 있지만, 타인의 고통을 함께 느끼고 공감하는 능력은 인간에게만 있다. 심리학자 장 피아제는 아동기에는 ‘자아 중심성’이 뚜렷하다고 했다. 예를 들어 아이는 엄마의 생일에 자신이 좋아하는 장난감을 선물하며 사랑을 표현한다. 그러나 성인이 된 지금도 우리는 여전히 자아중심성을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다. 갈등 속에서는 늘 내가 피해자라고만 믿지만, 나 역시 누군가의 마음을 다치게 한다.
결국 필요한 것은 역지사지(易地思之), 곧 상대의 입장에서 상황을 바라보는 태도다.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인간은 여전히 ‘마음의 언어’를 잃지 말아야 한다. AI 시대의 진짜 위기는 기술이 인간을 능가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인간성을 잊어버리는 데 있다.
(*이 칼럼은 사공정규 동국의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의 기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