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人터뷰]
 
								  “피아노는 제 전부에요.”
갑작스러운 뇌졸중으로 오른팔과 오른다리가 마비됐지만, 피아니스트 이훈(54)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지금도 왼손으로 피아노를 연주하며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 특히 최근 《나는 왼손피아니스트입니다(오늘산책)》을 출간한 이훈은 “독주회와 일본 공연 준비로 쉴 틈 없이 연습 중”이라고 전했다. 지금도 열정적인 음악 행보를 이어가고 있는 이훈을 직접 만나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처음 피아노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건 아니었다. 그냥 남들처럼 자연스럽게 시작했다. 사실 피아노를 배우기 전에 미술도 잠깐 했었는데, 너무 재미가 없어서 한 달 만에 그만뒀다. 그런데 피아노는 정말 재미있다. 치면 칠수록 빠져들었고, 그 재미 덕분에 지금까지 오게 됐다. 처음에는 내가 재능이 있는지도 몰랐고, 주위에 피아노를 치는 사람도 거의 없어서 비교할 수도 없었다. 그러다가 선화예중에 입학하게 되었고, 그때 처음으로 ‘재능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미술은 재미가 없었고 피아노는 재미있었다는 것 자체가 어쩌면 재능이 있다는 신호였던 것 같다.”
갑작스러운 뇌졸중으로 오른팔과 오른다리가 마비됐지만, 피아니스트 이훈(54)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지금도 왼손으로 피아노를 연주하며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 특히 최근 《나는 왼손피아니스트입니다(오늘산책)》을 출간한 이훈은 “독주회와 일본 공연 준비로 쉴 틈 없이 연습 중”이라고 전했다. 지금도 열정적인 음악 행보를 이어가고 있는 이훈을 직접 만나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처음 피아노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건 아니었다. 그냥 남들처럼 자연스럽게 시작했다. 사실 피아노를 배우기 전에 미술도 잠깐 했었는데, 너무 재미가 없어서 한 달 만에 그만뒀다. 그런데 피아노는 정말 재미있다. 치면 칠수록 빠져들었고, 그 재미 덕분에 지금까지 오게 됐다. 처음에는 내가 재능이 있는지도 몰랐고, 주위에 피아노를 치는 사람도 거의 없어서 비교할 수도 없었다. 그러다가 선화예중에 입학하게 되었고, 그때 처음으로 ‘재능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미술은 재미가 없었고 피아노는 재미있었다는 것 자체가 어쩌면 재능이 있다는 신호였던 것 같다.”
 
								  -유학 당시 뇌졸중 판정받았다고 했다. 어떤 상황이었나? 
“피아노 강사로 일하다가 더 깊이 공부하고 싶어서 유학을 갔었다. 유학 생활은 너무 즐거웠다. 그런데 유학을 시작한 지 4년쯤 지나서 저녁을 먹으려고 냉장고 앞에 가다가 갑자기 쓰러져 의식을 잃었다. 당시 하숙을 하고 있었는데, 평소에는 곧바로 방에 들어가시던 할머니가, 그날은 늦게까지 거실에서 TV를 보고 계셨다. 내가 아래층 부엌에서 오랫동안 올라오지 않자 이상하게 여긴 할머니가 내려오셨고, 내가 쓰러져 있는 것을 발견하셨다. 곧바로 응급실에 실려 갔다. 할머니가 아니었으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거다. 할머니는 8년 전에 세상을 떠나셨지만, 지금도 너무 감사하다.”
-어떤 치료 과정을 거쳤나?
“미국에서 응급 수술을 받았고, 열흘 만에 의식을 되찾았다. 그런데 실어증과 함께 (몸의) 오른쪽이 아예 마비된 상태였다. 깨어나서 침대에 누워 있을 때도 내 몸 오른쪽이 있는지조차 모를 정도였다. 휠체어를 타고 겨우 움직일 정도로 심각한 상태였다. 이후 재활 치료를 받으면서 조금씩 회복했고, 지금도 일주일에 한 번씩 병원에 가고 있다.
당시에는 왜 나에게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몰랐다. 평소 건강에 큰 문제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중에 생각해보니까 아마 흡연 때문이었던 것 같다. 한국에서 ‘담배를 많이 피우면 뇌졸중에 걸릴 수 있다’는 광고를 봤는데, 딱 그 광고에 나오는 사례처럼 쓰러졌었다. 그래서 ‘나처럼 젊은 사람도 뇌졸중에 걸릴 수 있다’는 걸 알리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피아노 강사로 일하다가 더 깊이 공부하고 싶어서 유학을 갔었다. 유학 생활은 너무 즐거웠다. 그런데 유학을 시작한 지 4년쯤 지나서 저녁을 먹으려고 냉장고 앞에 가다가 갑자기 쓰러져 의식을 잃었다. 당시 하숙을 하고 있었는데, 평소에는 곧바로 방에 들어가시던 할머니가, 그날은 늦게까지 거실에서 TV를 보고 계셨다. 내가 아래층 부엌에서 오랫동안 올라오지 않자 이상하게 여긴 할머니가 내려오셨고, 내가 쓰러져 있는 것을 발견하셨다. 곧바로 응급실에 실려 갔다. 할머니가 아니었으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거다. 할머니는 8년 전에 세상을 떠나셨지만, 지금도 너무 감사하다.”
-어떤 치료 과정을 거쳤나?
“미국에서 응급 수술을 받았고, 열흘 만에 의식을 되찾았다. 그런데 실어증과 함께 (몸의) 오른쪽이 아예 마비된 상태였다. 깨어나서 침대에 누워 있을 때도 내 몸 오른쪽이 있는지조차 모를 정도였다. 휠체어를 타고 겨우 움직일 정도로 심각한 상태였다. 이후 재활 치료를 받으면서 조금씩 회복했고, 지금도 일주일에 한 번씩 병원에 가고 있다.
당시에는 왜 나에게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몰랐다. 평소 건강에 큰 문제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중에 생각해보니까 아마 흡연 때문이었던 것 같다. 한국에서 ‘담배를 많이 피우면 뇌졸중에 걸릴 수 있다’는 광고를 봤는데, 딱 그 광고에 나오는 사례처럼 쓰러졌었다. 그래서 ‘나처럼 젊은 사람도 뇌졸중에 걸릴 수 있다’는 걸 알리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힘들 때는 어떻게 버텼나?
“솔직히 가족들이 없었으면 못 버텼을 것 같다. 가족의 존재는 치료를 단순한 ‘치료’가 아니라 진짜 ‘치유’로 만들어줬다. 가족들의 따뜻한 말 한마디, 응원 한마디가 나를 다시 일으켜 세웠다. 또 언젠가는 다시 양손으로 피아노를 칠 수 있을 거라는 믿음. 그 믿음이 나를 끝까지 붙잡아줬다. 지금도 그 생각이 큰 힘이 되고 있다.
-다시 피아노를 치겠다고 다짐하게 된 계기는?
“재활 치료 과정에서 피아노 선생님을 다시 만났는데, 나를 보고 눈물을 흘리면서 기도를 해주셨다. 1년쯤 지나서 그 선생님을 다시 만났는데, 저녁 식사 중에 “왼손만으로 피아노를 쳐보는 건 어떠냐”고 제안하셨다. 사실 그때까지는 피아노를 다시 칠 생각도 못 했고, 오른손이 마비된 상태라 상상조차 못 했다. 하지만 선생님이 “왼손만으로 칠 수 있는 곡이 1000곡이 넘는다”고 하니까 갑자기 가능성이 느껴졌다. 그날 저녁 식사 후, 다시 피아노 앞에 앉아 기초부터 시작했다. 페달도 못 쓰고, 정말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왼손하나로 시작했다.”
“솔직히 가족들이 없었으면 못 버텼을 것 같다. 가족의 존재는 치료를 단순한 ‘치료’가 아니라 진짜 ‘치유’로 만들어줬다. 가족들의 따뜻한 말 한마디, 응원 한마디가 나를 다시 일으켜 세웠다. 또 언젠가는 다시 양손으로 피아노를 칠 수 있을 거라는 믿음. 그 믿음이 나를 끝까지 붙잡아줬다. 지금도 그 생각이 큰 힘이 되고 있다.
-다시 피아노를 치겠다고 다짐하게 된 계기는?
“재활 치료 과정에서 피아노 선생님을 다시 만났는데, 나를 보고 눈물을 흘리면서 기도를 해주셨다. 1년쯤 지나서 그 선생님을 다시 만났는데, 저녁 식사 중에 “왼손만으로 피아노를 쳐보는 건 어떠냐”고 제안하셨다. 사실 그때까지는 피아노를 다시 칠 생각도 못 했고, 오른손이 마비된 상태라 상상조차 못 했다. 하지만 선생님이 “왼손만으로 칠 수 있는 곡이 1000곡이 넘는다”고 하니까 갑자기 가능성이 느껴졌다. 그날 저녁 식사 후, 다시 피아노 앞에 앉아 기초부터 시작했다. 페달도 못 쓰고, 정말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왼손하나로 시작했다.”
 
								  -대학병원 로비에서 연주회도 열었다. 당시 심정이 어땠나? 
“뇌졸중 이후 처음으로 피아노를 친 건 2013년이었고, 정식으로 사람들 앞에서 연주를 한 건 2016년 7월, 바로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로비였다. 그때 연주를 잘하고 못하고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냥 다시 피아노를 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너무나 기뻤고, 마음이 벅찼다. 지금 돌이켜보면 연주를 정말 잘 치지는 못했다(웃음). 그런데도 많은 분들이 “왼손 하나로 피아노를 칠 수 있다는 게 어디냐”며 진심으로 응원해 주셨다. 한국에서 왼손만으로 피아노 연주를 한 건 아마 그때가 처음이지 않았을까 싶다. 또 올해 같은 장소인 서울성모병원에서 다시 연주회를 가졌다. 그때의 감사함을 다시 돌려드리고 싶었다. 그 연주는 단순한 공연이 아니라, 기적과 감사의 보답이었다. 그래서 더 특별하고 기쁘다.”
-현실적으로 힘든 상황도 많이 생길 것 같은데, 어떤 게 있나?
“뇌졸중 이전에는 걷는 것도 빠르고 자유로웠다. 하지만 지금은 같은 거리를 가는 데 훨씬 많이 걸린다. 그만큼 몸이 느려지고, 불편함이 많아졌다. 연주할 때도 한계가 있다. 원래는 오른발로 페달을 밟으면서 균형을 잡아가며 연주했는데, 지금은 오른쪽 다리에 마비가 있어 왼발로 페달을 밟고 있다. 특히 무대에 서서 긴장을 하게 되면 오른쪽 다리가 떨리고 굳어서 자세가 흐트러질 수밖에 없다.”
-마지막으로 이 글을 읽는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절대 포기하지 말라는 말을 꼭 전하고 싶다. 뇌졸중 같은 큰 고통과 어려움 앞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어느 순간 포기하고 멈추게 된다. 하지만 나처럼 양손으로 피아노를 다시 칠 수 있을 때까지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사람이 있다는 걸 기억했으면 좋겠다. 사람마다 상황은 다르겠지만, 포기하지 않고 계속 도전하는 마음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나 또한 목표를 모두 달성할 때까지 절대 포기하지 않고 계속 도전할 계획이다. 죽음이 가까웠던 경험을 한 사람으로서, 모두가 매 순간을 행복하게 즐기며 살아가길 진심으로 바란다.”
“뇌졸중 이후 처음으로 피아노를 친 건 2013년이었고, 정식으로 사람들 앞에서 연주를 한 건 2016년 7월, 바로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로비였다. 그때 연주를 잘하고 못하고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냥 다시 피아노를 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너무나 기뻤고, 마음이 벅찼다. 지금 돌이켜보면 연주를 정말 잘 치지는 못했다(웃음). 그런데도 많은 분들이 “왼손 하나로 피아노를 칠 수 있다는 게 어디냐”며 진심으로 응원해 주셨다. 한국에서 왼손만으로 피아노 연주를 한 건 아마 그때가 처음이지 않았을까 싶다. 또 올해 같은 장소인 서울성모병원에서 다시 연주회를 가졌다. 그때의 감사함을 다시 돌려드리고 싶었다. 그 연주는 단순한 공연이 아니라, 기적과 감사의 보답이었다. 그래서 더 특별하고 기쁘다.”
-현실적으로 힘든 상황도 많이 생길 것 같은데, 어떤 게 있나?
“뇌졸중 이전에는 걷는 것도 빠르고 자유로웠다. 하지만 지금은 같은 거리를 가는 데 훨씬 많이 걸린다. 그만큼 몸이 느려지고, 불편함이 많아졌다. 연주할 때도 한계가 있다. 원래는 오른발로 페달을 밟으면서 균형을 잡아가며 연주했는데, 지금은 오른쪽 다리에 마비가 있어 왼발로 페달을 밟고 있다. 특히 무대에 서서 긴장을 하게 되면 오른쪽 다리가 떨리고 굳어서 자세가 흐트러질 수밖에 없다.”
-마지막으로 이 글을 읽는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절대 포기하지 말라는 말을 꼭 전하고 싶다. 뇌졸중 같은 큰 고통과 어려움 앞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어느 순간 포기하고 멈추게 된다. 하지만 나처럼 양손으로 피아노를 다시 칠 수 있을 때까지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사람이 있다는 걸 기억했으면 좋겠다. 사람마다 상황은 다르겠지만, 포기하지 않고 계속 도전하는 마음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나 또한 목표를 모두 달성할 때까지 절대 포기하지 않고 계속 도전할 계획이다. 죽음이 가까웠던 경험을 한 사람으로서, 모두가 매 순간을 행복하게 즐기며 살아가길 진심으로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