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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이미지./사진=클립아트코리아
고산에서의 극한 환경이 인체의 폐나 심혈관뿐 아니라 장내 미생물(마이크로바이옴)에도 뚜렷한 적응 반응을 일으킨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장내 미생물은 우리 몸의 소화기관 안에 사는 수십조 개의 세균과 곰팡이, 바이러스 등을 말한다. 이들은 단순히 음식을 분해하는 역할을 넘어서, 면역 조절·영양 흡수·에너지 대사에까지 관여한다. 최근 연구에서는 장내 미생물이 신체의 스트레스 반응과 운동 능력, 심지어 정신 건강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보이지 않는 장기’로 불리기도 한다.

폴란드 야키엘론스키대 연구팀은 3000m 이상 고산 환경이 장내 미생물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알아보기 위한 연구를 진행했다. 연구팀은 평균 연령 30세 안팎의 남성 등반가 17명을 대상으로, 고산 등반 전과 후의 장내 미생물 구성·식이일지·혈액지표·운동능력 변화를 종합 분석했다. 참가자들은 평균 34일 동안 등반을 진행했으며, 그 중 약 26일은 해발 3000m 이상 고지에서 머물렀다.

분석 결과, 장내 미생물의 전체 종류에는 큰 변화가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포도당을 분해해 에너지를 만드는 장내 미생물의 대사 기능이 등반 후 눈에 띄게 활성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고산에서는 산소가 부족해 인체가 에너지를 생산하기 어렵기 때문에, 장내 세균이 스스로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방향으로 적응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게 연구팀의 설명이다.

또한 장내 미생물 구성 변화 폭이 컸던 그룹일수록 트레드밀 운동이나 윙게이트(Wingate) 테스트에서 운동 성능이 더 향상되는 경향을 보였다. 즉, 장내 미생물이 활발하게 변화할수록 고산 스트레스에 더 잘 적응한 것이다.

식이와 미생물 기능 사이의 연관성도 확인됐다. 등반 전에는 비타민 B6, 비타민 C 섭취량이 특정 미생물 대사경로와 밀접하게 연관됐다. 등반 후에는 총 칼로리와 탄수화물, 단일불포화지방(MUFA), 비타민 C, B12, B6 섭취량으로 바뀌었다. 이는 등반 중 섭취하는 영양소의 질이 장내 미생물 대사활동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음을 시사한다.

연구팀은 “고산 등반 전 충분한 영양 준비와 장내 미생물 다양성 확보가, 신체 적응과 운동 성과 향상에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며 “향후 탐험가나 고산 스포츠 선수 대상의 장내 미생물 맞춤 영양 전략 개발로 이어질 가능성”을 말했다.

이번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사이언티픽 리포츠(Scientific Reports)’에 최근 게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