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토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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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의 한 10대 등반가가 에베레스트의 ‘죽음의 지대’에서 겪었던 증상과 변화에 대해 밝혔다./사진=비앙카 애들러 틱톡 캡처
호주의 한 10대 등반가가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의 ‘죽음의 지대(Death Zone)’에서 겪은 극한의 생존기를 공개해 화제다. ‘죽음의 지대’는 해발 8000m 이상 구간으로, 공기 중 산소가 평지의 30% 수준에 불과해 인간이 장시간 생존하기 어렵다.

지난 21일(현지시간) 미국 뉴욕포스트에 따르면, 호주 출신 청소년 등반가 비앙카 애들러(17)는 최근 에베레스트 등정 도중 해발 약 8400m 지점까지 올랐다가 정상을 불과 400m 남기고 하산해야 했다. 그는 혹한과 강풍 속에서 4일 가까이 ‘죽음의 지대’에 머물며 산소 부족, 동상, 탈수 증상을 겪었다.

하산 후 애들러는 SNS에 올린 영상에서 “너무 끔찍하다”며 “목이랑 폐가 다 아프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너무 아프고 지쳐서 회복하는 데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영상 속 그의 얼굴은 바람과 추위로 멍이 들고 입술이 갈라진 상태였다. 애들러와 함께 올랐던 아버지는 ‘설맹’ 증세로 먼저 하산했다. 설맹은 눈 덮인 설원에서 반사된 강한 자외선에 의해 망막이 손상되는 시력 장애다. 부녀는 결국 고산 폐부종(HAPE)과 탈수 증세 진단을 받았다.

◇“죽음의 지대, 인간이 생리적으로 버티기 어려운 구간”
미국 뉴욕주의 노스웰헬스(Northwell Health) 병원의 호흡기·중환자·수면의학과장 할리 그린버그 박사는 뉴욕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죽음의 지대는 인간이 생리적으로 버티기 어려운 환경”이라며 “저산소증이 인체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했다. 저산소증은 신체 조직이 충분한 산소를 공급받지 못해 세포 에너지 생산과 장기 기능이 무너지는 상태를 말한다.

평지에서 혈중 산소포화도는 보통 95% 이상이지만, 죽음의 지대에서는 60% 이하로 급감한다. 이로 인해 두통, 피로, 현기증, 구토, 불면증 등이 나타나며, 심할 경우 급성 고산병(AMS)으로 발전한다.


특히 산소 의존도가 높은 뇌세포가 손상되면 뇌혈관이 팽창해 두통과 구토를 유발하고, 체액이 뇌로 스며들면 뇌부종(HACE)으로 악화된다. 그린버그 박사는 “체액이 뇌로 스며들면 의식 혼란, 졸림, 판단력 저하가 생기며, 심하면 혼수상태에 이를 수 있다”고 말했다.

◇고산 폐부종, 에베레스트 사망의 주된 원인
애들러 부녀가 진단받은 고산 폐부종은 저산소 상태에서 폐혈관이 수축하며 혈압이 상승해 발생한다. 이때 혈관에서 액체가 새어 나와 폐포(공기주머니)를 채우면 산소 교환이 어려워져 호흡이 곤란해진다. 그린버그 박사는 “지속적인 기침, 숨이 차는 느낌, 청색증(피부가 푸르게 변함)” 등이 주요 증상이라며 “2~3일 이내에 발생할 수 있고, 제때 하산하지 않으면 사망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 외에도 에베레스트 정상 부근의 기온은 영하 30℃ 이하로 떨어지는데, 이 같은 환경에서는 몇 분 만에 손가락, 코, 귀 등이 얼어붙는 동상이 생긴다. 혈액 순환이 저하되고, 근육 단백질이 분해되며 체중이 급격히 줄어드는 현상도 보고됐다. 실제로 일부 등반가는 정상 도전 중 10kg 이상 체중이 줄어든 사례도 있다. 또한 산소 농도가 낮으면 망막 혈관이 확장돼 출혈이나 부종이 발생하는데, 이를 ‘고산 망막병’이라 부른다. 대부분 하산 후 회복되지만, 심할 경우 영구적인 시력 손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

◇“고산 등반, 철저한 대비 없이는 위험”
그린버그 박사는 “고산 등반 전에는 반드시 건강 상태를 점검해야 한다”며 “심장질환, 폐질환, 고혈압, 수면무호흡증, 겸상적혈구 빈혈이 있는 사람은 특히 위험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서서히 고도를 올리며 신체가 적응할 시간을 줘야 한다”고 했다. 등반 초기에 심박수가 증가하고, 신장이 에리트로포이에틴(EPO)을 분비해 적혈구 생성을 촉진하지만, 이런 생리적 적응 과정은 며칠에서 여러 주가 걸린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저산소 훈련실에서 고산 환경을 미리 체험하며 적응력을 높이는 방법도 활용된다. 낮은 산소 농도 속에서 수면이나 운동을 반복하면 적혈구 생성이 증가해 산소 운반 능력이 향상된다는 원리다. 다만 그린버그 박사는 “이 같은 훈련이 실제로 고산병 예방에 효과가 있다는 과학적 근거는 아직 충분하지 않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