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수의 우울증 클리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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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클립아트코리아
우울증, 조울증의 비약물적 치료 기법 중 하나로 '사회리듬치료(Social Rhythm Therapy)'가 있​다. 건강한 생활습관을 꾸준히 유지하면서, 그것이 일상의 생활 리듬으로 정착될 수 있도록 돕는 게 이 치료법의 목표다.

건강한 생활 리듬은 (1)아침에 해가 뜨면 기상해서 (2)즐거움과 성취감을 일으키는 활동을 하고 (3)적절한 수준의 대인관계를 유지하고 (4)식사와 (5)규칙적인 운동 (6)건강한 수면 습관을 이어가는 것으로 구성된다. 이것이 고유한 일상의 리듬으로 정착될 때 우울증에서 벗어나고 기분 변동성도 줄어든다.

밤새도록 스마트폰으로 유튜브 영상을 돌려 보는 일상이 반복되면 의욕이 생길리 없다. 운동을 게을리 하고 체력이 약해지면 피로가 쌓이고 새로운 일에 대한 흥미와 호기심도 사라진다. 배달 음식으로 끼니를 때우고 밤마다 술을 마시고 늦게 잠들면 기분이 나빠지고 사소한 일에도 짜증이 난다. 나쁜 생활습관은 감정 조절 문제와 기분을 저조하게 만드는 주요 원인이다.

물론 건강한 생활 리듬을 지키려고 해도 업무가 많아져서 야근을 하거나 반대로 은퇴 후 시간 공백이 너무 많이 생겨 일상의 루틴을 유지하기가 어려워지기도 한다. 이런 상황도 기분과 의욕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하루를 어떻게 보내는지가 마음 건강을 결정한다. 나는 우울증 환자들에게 아침에 일정한 시간에 일어나는 것만이라도 하라고 한다. 기상 후에 따뜻한 물로 샤워만이라도 하라고 한다. 이것도 못 하겠다는 환자라면 아침에 일어나서 외출해도 부끄럽지 않을 옷으로 갈아입고 있으라고 조언한다.

굳이 잘 차려 입고 있을 필요는 없다. 손님이 집에 찾아왔을 때 옷을 갈아입어야 할 정도만 아니면 된다. 햇빛 보고 걸으면 좋지만, 이것도 힘들다고 하면 누워있지 말고 창가에 앉아 햇빛을 쬐라고 한다. 우울하다는 주부들에게는 외출 약속이 없어도 간단한 기초 화장 정도는 꼭하라고 한다.


우울증의 완치가 건물이 완공되는 것이라면 생활습관을 재건하는 것은 ‘기초공사’와 같다. 약물 치료만으로는 우울증을 완치할 수 없다. 당뇨 환자가 탄수화물 섭취를 조절하지 않고 운동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혈당 조절에 실패하는 것처럼 우울증 환자가 생활방식을 관리하지 않으면 항우울제를 제대로 복용해도 잘 낫지 않고 재발한다.

건강증진과 질병 치료를 위해 식사, 운동, 음주, 금연, 스트레스 관리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을 ‘라이프 스타일 의학(Lifestyle Medicine)’이라고 한다. 이것은 내과 질환뿐 아니라 우울증 치료에도 매우 중요한 구성 요소다. 

​우울증은 대개 6~9개월이 지나면 서서히 좋아지지만 완전히 회복하려면 더 긴 시간이 필요하다. 잔여 증상이 남기도 하고, 우울증에 걸리기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지 못 하는 사례도 있다. ‘얼른 나아야 해!’ 하며 초조해하기 보다는 지금까지의 생활습관을 되돌아보고 무엇이 우울증에 취약하게 만들었나 확인해 본다. 우울증이라는 위기를 삶 자체를 바꿀 수 있는 기회로 활용하는 것이다.

“5분만 걸어보자”처럼 아주 작은 행동을 실천하자.

‘그까짓 행동이 치료에 무슨 도움이 되겠어?’라고 의심하면 안 된다. 우울증 환자에게는 침대 밖으로 나오고, 샤워를 하고, 꽃에 물을 주고, 강아지를 산책시키는 것이 지구를 구하는 일만큼이나 중요하다. 세속적인 성취나 타인과 사회의 평가와는 상관 없는, 오직 자신만의 즐거움을 일궈내야 우울증이 좋아진다. 단골 카페에서 차 마시기, 세상 곳곳에 흩어진 진귀한 노래들을 인터넷에서 찾아 듣기, 손글씨 쓰기, 정치가 아닌 미담이 담긴 신문 기사 읽기…. 이런 행동들을 기분이 내킬 때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루 일과에 규칙적으로 포함시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