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논스틱 프라이팬, 플라스틱 용기 등에 쓰이는 PFAS, BPA, 프탈레이트 등 화학물질은 내분비계 교란물질로 알려졌다​./사진=클립아트코리아
영국과 미국 모두 지난해 합계출산율이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으며, 우리나라도 여전히 OECD 국가 중 가장 낮은 수준이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저출산 현상의 복합적 원인 중 하나로 ‘생활 속 화학물질 노출’을 지목한다. 이 물질들은 ‘내분비계 교란물질’로 불리며, 인체의 호르몬 작용을 방해하거나 흉내내 생식기능과 신체 균형에 영향을 미친다. 연구에 따르면 이 물질에 많이 노출된 사람은 유산 위험이 높고, 임신 성공률이 낮으며, 난임을 겪을 가능성도 크다.

대표적인 내분비계 교란물질로는 PFAS(과불화화합물), BPA(비스페놀 A), 프탈레이트 등이 있다. 문제는 이들이 바닥재, 음료수 캔, 플라스틱 용기, 화장품 등 일상적인 제품에 널리 쓰인다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임신을 시도하기 전부터 ‘집 안의 화학물질’에 주의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음식 데울 때 플라스틱 용기 피해야
런던 임페리얼칼리지의 생식내분비학 전문가 찬나 자야세나 교수는 “현대 제조 과정에서 만들어진 미세한 플라스틱과 화학물질이 우리가 먹는 음식을 통해 체내로 들어온다”며 “일부는 생식기관, 정자, 난소에 축적돼 세포 손상을 일으킬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특히 “음식이나 음료를 전자레인지에 넣을 때는 플라스틱 용기를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플라스틱 제조 과정에서 내분비계 교란물질이 첨가되는데, 가열 시 이러한 성분이 음식으로 스며들 위험이 커진다는 것이다.

미국 마운트시나이 의대 환경의학 교수 섀너 스완 역시 “플라스틱을 전자레인지에 넣는 것은 절대 금물”이라며 “뜨거운 환경에서 BPA나 프탈레이트가 용기에서 빠져나와 음식으로 옮겨간다”고 말했다. 햇빛 아래 자동차 안에 물병을 오래 두는 것도 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논스틱 프라이팬, 가공식품도 영향
전문가들은 오래된 논스틱(non-stick) 프라이팬 역시 주의해야 한다고 말한다. PFAS가 코팅재로 쓰이기 때문에, 코팅이 벗겨지거나 과열될 경우 화학물질이 음식에 스며들 수 있다. 대신 스테인리스나 세라믹 팬을 사용하는 것이 안전하다고 권장한다.


패스트푸드나 가공식품 섭취를 줄이는 것도 중요하다. 에든버러대 로드 미첼 교수는 “식습관과 운동, 금연 등 기본적인 생활습관 관리가 생식력 보호에 큰 영향을 준다”며 “가공식품 섭취를 줄이면 포장재를 통한 화학물질 노출도 함께 감소한다”고 말했다. 미국 캘리포니아대 샌프란시스코 캠퍼스의 트레이시 우드러프 교수 연구팀은 학술지 ‘국제환경(Environment Internationa)’에 발표한 논문에서 “패스트푸드나 외식, 특히 치즈버거를 자주 먹는 사람은 프탈레이트 노출이 높았다”고 보고했다. 이는 조리 과정에서 사용하는 포장재, 장갑, 조리기구 등에서 화학물질이 음식으로 옮겨갈 가능성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향이 강한 세제·화장품 피해야
화장실이나 화장대에서도 내분비계 교란물질 노출은 쉽게 일어난다. 전문가들은 ‘프탈레이트 프리’ 또는 무향 제품을 선택하고, 향이 강한 비누·섬유유연제·방향제 사용을 피할 것을 권한다. 우드러프 교수는 “무향 제품도 향을 감추기 위해 다른 화학물질을 쓸 수 있다”며 “가능하면 ‘향 프리(fragrance free)’를 고르는 것이 낫다”고 조언했다. PFAS는 화장품의 발색력과 지속력, 제형 안정성을 높이기 위해 사용되는 경우가 많아, 아이섀도·립스틱 등 메이크업 제품에서도 주의가 필요하다.

◇집 안 인테리어·생활용품도 점검을
커튼, 카펫, 요가매트, 메모리폼 매트리스 등도 프탈레이트나 PFAS가 포함돼 있을 수 있다. 전문가들은 비닐 소재 대신 패브릭 제품을 사용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한다. 예를 들어 비닐 샤워커튼을 천 소재로 바꾸거나, 욕실 미끄럼 방지 매트·아기 놀이매트를 비닐이 아닌 다른 재질로 교체하는 식이다.

야외에서는 농약이나 제초제 속 내분비계 교란물질에도 주의해야 한다. 대표적으로 글리포세이트는 호르몬 체계를 교란하는 물질로 알려져 있다. 또한 최근 연구에서는 인조잔디의 플라스틱 잎에도 PFAS가 함유돼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