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훈의 이것도 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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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클립아트코리아
매우 난감한 상황에 처한 사람에게 ‘동공 지진났다’, ‘동공이 흔들린다’는 표현을 쓴다. 정말 마음이 난처하고 불안하면 동공이 흔들릴까?

우선 동공 지진을 말하기 전에 정확한 정의부터 내리고 가야할 듯 싶다. 동공과 눈동자, 그리고 홍채의 관계에 대해서.

일단 눈을 보면 흰자위와 검은자위가 있다. 검은자위의 한 가운데에 있는 검은 구멍이 동공이고, 이를 둘러싼 색 있는 부분이 홍채다. 여기까지는 간략하고 깔끔한데, 눈동자가 끼어들면 복잡해진다. 이유는 원래 눈동자는 동공을 가리키지만 우리가 관습적으로 눈동자라고 하면 동공과 홍채를 아울러 칭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눈동자라는 단어는 표현에 따라 어느 때에는 동공으로, 어느 때에는 동공과 홍채를 아우르는 말로 사용된다.

이런 측면에서 말꼬리 잡듯이 깐깐하게 이야기하면 일단 동공 지진이라는 말은 어폐가 있다. 일단 동공은 실체가 있는 구조물이 아니다. 홍채로 둘러싸인 구멍이기 때문에, 동공은 흔들릴 수 없다. 동공은 비유하자면 카메라의 조리개 역할을 하는 곳으로 빛의 밝기에 따라 그 크기를 확장하거나 축소할 뿐, 위치를 움직일 수 없다.

그럼, 동공이 포함된 넓은 의미의 눈동자, 즉 검은자위는 불안하면 심하게 떨리는 것이 맞을까? 사실 맞다고 할 수 있다. 불안하면 시선이 매우 불안정해진다. 즉, 한 곳을 지속적으로 응시하는 대신 시선을 자주 옮기게 되고, 응시를 하고 있어도 불수의적 안구 운동이 더 많아진다. 관찰자의 입장에서 안구의 움직임은 흰 자위를 배경삼아 눈 한 복판에 있는 검은자위가 움직이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니 동공 지진은 실제로 발생하는 현상을 잘 관찰해서 기술한 표현인 셈이다.

그런데 이때 궁금한 것 한 가지. 동공, 정확히는 안구가 움직인다는 사실은 맞는데, 그 작은 움직임을 우리는 어떻게 알아보고 ‘동공 지진’이라고까지 이름을 붙인 걸까?

불안한 경우 동공이 확장되는데, 이런 측면이 안구의 움직임을 인식하는 데 도움이 될 수는 있다. 동공은 빛의 밝기에 따라 그 크기가 변화하지만, 이와 같은 광학적인 역할 이외에도 다양한 장면에서 그 크기가 달라진다. 대표적인 예로, 호감 가는 대상을 보면 동공이 커진다. 실제로 한 연구에서는 풍경 사진과 매력적인 이성의 사진을 제시하고 동공의 크기를 측정해봤는데, 매력적인 이성 사진을 볼 때 동공의 크기가 더 확대됐다고 한다.


그 외에도 동공 크기 변화에 대한 다양한 연구들이 진행됐고, 긍정 뿐 아니라 부정적인 감정의 정도가 강할 때, 인지적으로 처리해야 하는 내용이 많았을 때, 주의 집중을 요할 때 동공이 확장됐다. 따라서 불안한 감정을 느꼈을 때도 동공은 확대되고, 이는 안구의 움직임을 더 도드라지게 보이게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굳이 동공이 확장되지 않아도, 우리는 타인의 안구 움직임을 쉽게 알아차린다. 인간이 원래 그렇다. 혹시 인간에게만 흰 자위가 있다는 주장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정확하게 말하면 인간에게만 흰 자위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인간처럼 흰 자위가 눈에서 넓은 면적을 차지하고, 검은자위와 이렇게까지 대비가 강한 동물은 없다. 사실 동물의 세계에서 흰 자위는 그렇게 유리하지 않기 때문이다.

보통 시선은 뒤따라올 다음 행동을 예측하게 한다. 만일 내가 테이블 위에 있는 커피잔을 봤다면, 대부분의 경우 뒤따라오는 행동은 손을 뻗어 커피잔을 잡는 것이다. 그래서 시선은 ‘의도를 나타내는 정보’라고 간주된다. 흰 자위와 검은자위가 명확하게 잘 구분되고 잘 보인다는 말은 상대의 시선이 쉽게 파악되고 더 나아가 상대의 의도가 쉽게 간파된다는 의미가 된다. 서로 먹고 먹히는 관계가 자연스러운 자연의 세계에서 포식자든 피식자든 스스로의 의도가 발각된다는 것은 사냥에 실패하거나, 생존에 실패하는 것과 동일한 의미이다. 그래서 동물들은 흰 자위를 잘 보여주지 않는 방식으로 진화해 간 것이다.

그렇다면 왜 인간은 굳이 흰 자위를 노출시키도록 진화됐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그렇게 하는 것이 더 생존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나의 의도가 발각되는 것이 더 유리한 이유? 인간은 공동체 생활을 하고, 협업을 하는 종족이기 때문이다. 나의 의도를 눈빛만 봐도, 아니 시선만 봐도 알 수 있는 파트너와의 협업이 사냥에 더 유리한 법이다.

실제로 우리 인간은 타인의 시선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한다. 만화 ‘슬램덩크’를 보면, 유명 농구 선수인 정우성이 시선만으로 수비수를 제치는 방법이 있는데, 근거 없는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들은 타인의 시선이 향하는 곳으로 스스로도 모르게, 자동적으로 주의를 주게 된다. 그렇게 진화해 온 결과다.

눈빛으로 말한다는 표현이 있다. 눈을 통해 많은 정보를 주고받는다는 점에서 틀린 말이라고 할 수 없다. 하지만 눈 맞춤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한 연구에서 정면으로 타인의 시선을 마주했을 때 언어 생성 과정에서 반응이 느려진다는 결과를 보고했다. 정서적인 측면을 넘어서 인지적인 측면에서까지 부담이 된다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겠다.

그래도 우리는 눈을 마주해야 한다. 그 속에서 서로 마음을 읽고 함께 길을 찾는 것이 인생이지 않을까? 동공 지진은 불안의 신호지만, 동시에 우리가 타인의 시선에 반응하며 관계를 맺으려는 존재임을 보여준다. 눈은 연결의 출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