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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일본 오사카대 사카구치 시몬 석좌교수, 미국 시애틀 시스템생물학연구소 메리 브런코 박사, 미국 샌프란시스코 소노마 바이오테라퓨틱스 프레드 람스델 박사./사진=노벨위원회 홈페이지 캡처
올해 노벨 생리의학상은 '정밀면역치료' 시대를 연, 사카구치 시몬(일본), 메리 브런코(미국), 프레드 람스델(미국) 세 박사에게 돌아갔다. 이들은 스스로를 공격하는 면역 세포를 억제하는 면역 안전장치 '조절 T 세포'의 존재와 기능을 밝혀냈다. 이 분야는 향후 암과 이식 치료에서 새로운 패러다임을 열 것으로 평가받는다. 우리나라에서는 얼마나 연구되고 있을까?

◇조절 T세포, 정상 세포 공격 못 하게 막아
T세포는 흉선에서 성숙하는 백혈구의 일종이다. 외부 병원체를 직접 제거하고, 다른 면역 세포를 활성화하는 역할을 한다. 흉선에서 이 T세포가 정상 세포를 침입자로 오인하지 않도록 '면역관용'이라는 체내 작용을 형성하는데, 간혹 제대로 조절되지 않으면 질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를 면역 세포가 정상 세포를 공격하는 '자가면역질환'이라고 하는데, 루푸스, 크론병, 류머티즘성 질환 등이 대표적이다.

'조절 T세포'는 말초에서 정상 세포를 공격하는지 감시하고, 제어하는 역할을 하는 세포다. 흉선과 골수에서 형성되는 '중추 면역 관용'이 제 역할을 못 해도, 조절 T세포 작용으로 더 큰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막을 수 있다. 서울성모병원 류마티스내과 주지현 교수는 "예전에는 면역반응을 ‘켜거나 끄는’ 단순한 개념으로 봤다면, 조절 T세포가 발견된 후에는 섬세하게 유지·조절되는 시스템으로 바라보게 됐다"며 "자가면역질환 등 면역 질환 치료를, '면역을 억제하는 치료'에서 '면역을 조절하고 균형을 회복시키는 치료'로 개념을 확장했다"고 했다.

사카구치 박사가 1995년 '조절 T세포'를 발견했다. 흉선을 절제한 쥐에 다른 쥐로부터 배양한 T세포를 주입했고, 자가면역질환이 발병하지 않았다고 보고했다. 중추 면역 관용 외에 다른 면역시스템이 있다는 사실을 밝혀낸 것이다.

브런코와 람스델 박사는 조절 T세포를 작동시키는 핵심 유전자가 'Foxp3'라는 사실을 규명했다. 이 유전자에 이상이 생기면 인간에서도 'IPEX'라는 치명적인 자가면역 질환이 생길 수 있다는 점을 밝혀냈다. 이후 2003년 사카구치 박사는 'Foxp3'의 조절 T세포 발달 조절 능력을 발견했다.


스웨덴 왕립 카롤린스카연구소 노벨위원회는 "세 수상자는 면역계가 제어되고 억제되는 원리를 발견했다"며 "암이나 자가면역질환 등에서 새로운 치료법을 개발할 가능성을 열었다"고 했다.

◇아직은 임상 활용 초읽기
아직 조절 T세포를 이용한 보편적인 치료제는 나오지 않았다. 다만. 암 면역 요법, 자가면역치료, 장기이식 시 거부반응 치료법을 개발하는 데, 조절 T세포를 활용한 여러 연구 성과가 이어지고 있다. 람스델 박사는 "2000년 무렵 이미 조절 T세포를 활용하면 자가면역질환 치료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당시 유전자 치료나 세포 치료를 자가면역질환에 적용하는 건 불가능했다"며 "하지만 이제는 실제 약으로 전환할 길이 보이고, 임상시험이 진행 중"이라고 했다.

조절 T세포를 체외에서 늘린 후, 환자에게 다시 주입해 과도한 면역을 억제하는 임상 연구가 크론병 등에서 진행되고 있다. 장기 이식자에서도 조절 T세포를 활용해 면역억제제 함량을 줄이는 임상 연구가 여러 개 진행 중이다. 암 치료에서는 항암 면역을 억제하는 조절 T세포를 미세하게 조절해, 항암 치료 효과를 높이는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또 조절 T세포가 특정 표적에 접근하도록 하는 방법도 개발되고 있다.

주지현 교수는 "일정한 품질의 조절 T세포를 생산하기 매우 어렵고, 체내 투여 후 다른 세포로 변화돼 예상치 못한 반응을 일으킬 수 있고, 제조 표준화, 규제, 비용 등에서도 문제가 있어 아직 여러 장벽이 있다"면서도 "앞으로 10년 안에 실험적 단계에서 임상 치료 플랫폼의 하나로 개발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했다. 이어 "특히 유전자공학기술과 줄기세포 기반 대량 생산 기술이 결합해 일정한 품질의 조절 T세포를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게 된다면 가능성이 더 커질 것"이라고 했다.

◇"국내 활용 유망해"
우리나라에서도 조절 T세포 개념은 오래전부터 연구되고 있다. 주지현 교수는 "최근에는 국내에서도 환자에게 적용하기 위한 임상 연구가 시도되고 있다"며 "특히 루푸스, 류마티스 관절염 등 자가면역질환이나 장기이식 분야에서 환자 자신의 조절 T세포를 분리·증식해 다시 투여하는 세포치료 연구가 진행 중이다"고 했다. 다른 사람에게 이식하거나, 유도만증줄기세포를 활용해 조절 T세포를 대량으로 만들어내는 연구도 이뤄지고 있다. 주 교수는 "아직 대규모 임상 시험이 시작된 단계는 아니지만, 우리나라는 줄기세포·면역세포 치료제 개발기술이 발달해 있어 조절 T세포 분야에서도 빠르게 응용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