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민의 크리미널 마인드]

때는 1979년. 미국 일리노이주 노스웨스턴 대학교에 교수 연구실로 소포 하나가 도착했다. 연구실 대학원생은 지도 교수에게 온 선물이라 생각하며 소포를 뜯었다. “펑!” 그 순간 안에 감춰져 있던 폭탄이 터졌지만, 다행히 폭발이 크지 않아 큰 부상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같은 해, 이번에는 시카고에서 워싱턴으로 향하던 아메리칸 항공 여객기 수화물에서 화재가 일어났다. 배달 중이던 소포에서 불이 난 채 비행기는 인근 공항에 긴급 착륙했고, 조사 결과 기압계를 이용한 폭탄이 발견됐다. 다행히 불발이라 화재로만 그쳤지만 제대로 폭발했다면 참사로 이어질 뻔한 사건이었다.
다음 해 유나이티드 항공 본사로 온 소포가 폭발했다. 수취인이었던 사장은 큰 화상을 입었다. 그 이후 약 15년에 걸쳐 미국 각지에서는 소포를 통한 폭발물 사건이 지속됐다. 목표 대상이 대학과 항공사였기에 조사를 맡은 FBI는 범인을 ‘University’와 ‘Airline’의 앞 글자를 따 ‘유나바머(Unabomber)’라 불렀다.
1978년부터 1995년까지 17년 이라는 긴 시간 동안 총 16건의 폭발물 사고가 있었고 3명이 사망하고 23명이 다쳤다. 즉, 미국 각지에서 폭발물 테러가 이어졌고 폭발물의 정교함과 위력은 점점 더 커졌다. 범행 장소도 광고업과 임업으로 확장됐다.
FBI는 다급해졌다. 범행 수법이 유사했기에 동일인의 범행으로 추정됐지만 FBI는 어떤 단서도 잡지 못했다. 폭발물에서는 그 어떤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 재료는 모두 누구나 쉽게 구할 수 있는 물건이나 폐기물이었고 화약도 불꽃놀이 등에서 재활용한 재료였다. 지문도 없었다. 결국 이 사건은 FBI 역사상 가장 많은 인력과 비용을 사용하면서도 가장 오랜 기간 범인을 잡지 못한 사건으로 기록에 남았다. 결국 FBI는 100만 불에 달하는 현상금을 걸기에 이르렀다.
그러던 와중 1995년 미국 주요 언론사에 3만5000단어에 달하는 에세이 한 편과 편지가 도착했다. 내용인즉 스스로를 ‘FC(Freedom Club의 약자)’라고 표현한 단체가 자신들이 유니바머이고, 자신들의 성명문이자 사회학 논문인 ‘산업사회와 그 미래(Industrial society and its future’를 주요 언론사에 게재해 주면 이후 추가적 테러를 멈추겠다고 주장했다.
이들이 실어달라고 요구한 에세이는 이렇게 시작한다. “산업 혁명과 그 결과는 인류에게 있어 재앙이었다.”
같은 해, 이번에는 시카고에서 워싱턴으로 향하던 아메리칸 항공 여객기 수화물에서 화재가 일어났다. 배달 중이던 소포에서 불이 난 채 비행기는 인근 공항에 긴급 착륙했고, 조사 결과 기압계를 이용한 폭탄이 발견됐다. 다행히 불발이라 화재로만 그쳤지만 제대로 폭발했다면 참사로 이어질 뻔한 사건이었다.
다음 해 유나이티드 항공 본사로 온 소포가 폭발했다. 수취인이었던 사장은 큰 화상을 입었다. 그 이후 약 15년에 걸쳐 미국 각지에서는 소포를 통한 폭발물 사건이 지속됐다. 목표 대상이 대학과 항공사였기에 조사를 맡은 FBI는 범인을 ‘University’와 ‘Airline’의 앞 글자를 따 ‘유나바머(Unabomber)’라 불렀다.
1978년부터 1995년까지 17년 이라는 긴 시간 동안 총 16건의 폭발물 사고가 있었고 3명이 사망하고 23명이 다쳤다. 즉, 미국 각지에서 폭발물 테러가 이어졌고 폭발물의 정교함과 위력은 점점 더 커졌다. 범행 장소도 광고업과 임업으로 확장됐다.
FBI는 다급해졌다. 범행 수법이 유사했기에 동일인의 범행으로 추정됐지만 FBI는 어떤 단서도 잡지 못했다. 폭발물에서는 그 어떤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 재료는 모두 누구나 쉽게 구할 수 있는 물건이나 폐기물이었고 화약도 불꽃놀이 등에서 재활용한 재료였다. 지문도 없었다. 결국 이 사건은 FBI 역사상 가장 많은 인력과 비용을 사용하면서도 가장 오랜 기간 범인을 잡지 못한 사건으로 기록에 남았다. 결국 FBI는 100만 불에 달하는 현상금을 걸기에 이르렀다.
그러던 와중 1995년 미국 주요 언론사에 3만5000단어에 달하는 에세이 한 편과 편지가 도착했다. 내용인즉 스스로를 ‘FC(Freedom Club의 약자)’라고 표현한 단체가 자신들이 유니바머이고, 자신들의 성명문이자 사회학 논문인 ‘산업사회와 그 미래(Industrial society and its future’를 주요 언론사에 게재해 주면 이후 추가적 테러를 멈추겠다고 주장했다.
이들이 실어달라고 요구한 에세이는 이렇게 시작한다. “산업 혁명과 그 결과는 인류에게 있어 재앙이었다.”
기술사회의 폐해로 인해 인간성은 파괴될 것이며 재앙을 막기 위해서는 기존의 사회질서를 무너뜨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이러니하게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장문의 글을 게재한 언론사는 성인 잡지인 ‘펜트하우스’였다. 여기에 유나바머는 해당 게재로는 한 번의 테러만 유예할 수 있다며 정규 언론사에 게재를 요구했고, FBI는 고심 끝에 워싱턴포스트지에 해당 에세이를 게재하기로 결정한다.
테러리스트와 협상을 하는 것 자체가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혹여 그 글을 보고 누군가 범인의 단서를 제보할 수 있다는 전략이 포함돼 있었다. 그리고 그 결과 에세이에서 자기 형의 특징적 문체를 알아챈 동생의 제보로 18년에 걸친 유나바머에 대한 수사는 1996년 범인 체포로 마무리된다.
유나바머의 정체는 테오도르 카잔스키(Theodore Kaczynski)로 체포 당시 54세였다. 몬테나주 링컨 외곽 아주 시골 오두막에 살고 있었다. 세상과는 거의 담을 쌓고 지낼 정도로 사회적으로 철저하게 고립된 오두막 안에는 수학과 과학 등 어려워 보이는 책들과 폭탄 제조에 사용되었을 여러 재료들, 그리고 결정적으로 ‘산업사회와 그 미래’ 에세이 원본 원고가 발견됐다.
유나바머가 평균 이하의 지능을 가진 노동자 계급일 것이라 추정했던 FBI는 테오도르의 정체를 확인하고 화들짝 놀란다. 그는 IQ 136 이상의 천재로 초등학교와 고등학교를 월반하며 16살에 장학생으로 하버드대 수학과에 입학한 수재였다. 이후엔 미시간대학교 석박사를 받고 UC버클리에서 대학 역사상 최연소 교수까지 한 인물이었다. 1967년 25살의 나이로 교수가 된 테오도르는 2년 뒤 돌연 대학을 사직하고 몬테나 시골로 가 전기도 수도시설도 없이 은둔생활을 하며 유나바머로서 범행을 저지르고 있었다.
무엇이 천재 수학자를 폭탄 테러범으로 만들었을까?
첫번째 요인은 ‘조기 영재교육의 부작용’이다. 테오도르는 폴란드계 노동자 부모님 사이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시기까지 또래들과 다를 바 없는 아이였다. 차이점이라면 뛰어난 두뇌를 가졌다는 점이었다. 단순측정 지능지수에서 167로 나왔고 6학년을 월반했는데 이후 또래 관계가 어려워졌다. 갑자기 같은 학년이 된 형들이 그를 따돌리고 괴롭혔다. 조기졸업과 영재교육으로 최연소 교수가 되며 지식면에서는 충분한 성장 발달을 했을 지 모르지만 사회적 측면과 정서적 측면에서는 정체되고 은둔형 외톨이까지 퇴행해 버렸다.
두번째 요인은 ‘지나치게 가혹한 사회적 압박’이다. 어린 시절부터 높은 성취도에 대한 기대 압박을 받았던 그는 하버드대 재학 시절 극도의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당시 하버드대 심리학과에서 재학생을 대상으로 시행됐던 연구가 있었는데, 테오도르도 그 연구 참여자 중 한 명이었다. 그 심리 연구 자체가 지금으로써는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가혹한 내용이었다. 내용인즉, 연구 참여자인 재학생이 작성한 에세이를 훈련된 학생집단이 그저 맥락 없이 일방적으로 비난하는 걸 반복하는 방식이었다. 이 과정에서 어떤 심리적 세뇌가 가능한지에 대한 연구였는데, 테오도르는 이 가혹한 실험의 결과 사회에 대한 불신과 타인에 대한 의심을 마음 깊이 품게 됐다.
세번째 요인은 ‘극단적인 고립’이다. 사회적으로 그나마 적응을 하며 살아가던 테오도르였지만, 대학 교수를 그만두면서 그는 극단적인 은둔형 외톨이 생활을 하게 된다. 대학 교수 시절까지만 하더라도 그는 여러 우수한 논문을 쓰며 학자로서 뛰어난 업적을 이루었지만, 교육에는 능력이 없었는지 교육 평가는 형편 없었다고 한다. 이런 사회적 부적응은 그를 더욱 위축시켰고 모든 걸 포기하고 외딴 지역에서 사회와 격리된 채 생활하게 만들었다. 인간의 판단은 극단적인 고립상황에서 더 왜곡되는 법인데, 결과적으로 테오도르는 사회에 대한 분신이 분노로 바뀌어 가고, 기술 문명에 대한 자신의 범행이 오히려 사회적 혁명이라는 과대망상에까지 이르게 된다.
유나바머의 범죄를 천재 정신병자의 사이코패스적 광기로 볼 것인지, 사회의 과도한 압박에 상처 받은 천재의 반항으로 볼 것인지 해석은 여러가지가 있다. 그럼에도 이 사건이 지금 우리 사회에 던지는 메세지는 지금도 유효하다. 우리 사회가 자녀를 키우면서 성과지향적으로만 바라보며 사회성이나 정서적 측면은 간과하고 있지는 않은지, 과도한 사회적 압박으로 몰아세우며 마음의 상처와 사회적 불신을 만들고 있는 건 아닌지 바라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스스로 선택했든, 상처로 내몰렸든 간에 지금 홀로 외로이 사회적으로 고립된 채 어떻게 이 환경을 어떻게 벗어나야 할지 막막함을 느끼고 있을 이들에게 우리가 어떻게 공동체 안으로 손을 내밀지에 대한 것 역시 우리 사회가 여전히 풀어나가야 할 숙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