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재의 음식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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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클립아트코리아
“밀가루 음식은 소화가 잘 안 된다”라는 주장이 있다. 음식평론가로서 이 문제에 대해 오랫동안 고민해온 결과 가설을 하나 세웠다. ‘덜 익은’ 밀가루 음식이라면 소화가 안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 주변에는 그런 사례가 사실 꽤 흔하다. 면류에는 손으로 뗀 수제비 반죽이 있다. 손맛이 깃들어야 제맛이라고들 하지만 손으로 반죽을 뜯으면 두께가 균일하지 않아 덜 익는 부분도 생길 수 있다.

이를 제외한 면류는 두께 혹은 굵기가 일정해 같은 비율로 익으므로 특히 소면이나 라면, 파스타처럼 포장에 딸려 나오는 레시피를 준수해 조리하면 먹고 소화가 안 될 이유가 없다. 참고로 이런 대량생산 면류는 초 단위로 끊어 시험 조리를 해 맛을 보고 질감 등등 모든 제반 요소를 평가하기 때문에 무엇을 먹더라도 소화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아니라면 속이 불편해질 이유가 없다.

면류는 대체로 간단한데, 빵은 문제가 좀 더 복잡하다. 빵의 조리는 크게 습열을 활용한 찜(steaming)과 건열로 조리하는 구이(baking)가 있다. 고추잡채에 딸려 나오는 꽃빵을 비롯, 만두의 조리법이 대체로 찜인데 습열로 조리하면 용어의 뜻 그대로 온도가 높은 습기로 조리를 하므로 아무리 오래 익히더라도 과조리되지 않고 빵이 촉촉함을 잃지 않는다. 다만 마이야르 반응이 일어나지 않아 겉면이 하얗다.


마이야르 반응은 아미노산과 환원당이 고온에서 만나 갈색 색소인 멜라노이딘을 생성하는 화학 반응이다. 1912년 처음 발견한 프랑스의 화학자 루이 카미유 마이야르로부터 명칭을 따왔다. 마이야르 반응은 섭씨 140도 이상의 고온에서 이루어지는데, 대기압에서 100도까지 밖에 올라가지 않는 수증기를 활용한 건식 조리, 즉 찜으로부터는 기대할 수 없는 것이다.

건열 조리인 오븐에서도 빵은 대체로 160도 이상의 온도에서 굽기 때문에 거의 모든 방에서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마이야르 반응을 기대할 수 있다. 겉면에 진한 갈색이 돌고 맛의 표정도 깊고 다채롭다. 마이야르 반응을 잘 활용한 빵이 맛있는 빵인데, 이를 두고 탔다고 여기는 소비자가 아직도 많다. 이런 반응을 의식해 빵을 자꾸 덜 굽다 보면 궁극적으로 덜 익어 소화가 잘 안 되는 제품이 나오고 만다는 것이 나의 가설이다.

솥밥을 잘 안 해 먹으니 귀해졌지만 누룽지도 마이야르 반응의 결과물이니 타기 직전까지 누른 것이 훨씬 맛있다. 같은 맥락에서 진한 색이 나도록 구운 빵이 맛있고 소화도 잘 되는 빵이니 오해를 풀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