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이 예술을 만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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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은 교수 그림
통증으로 얼굴에 힘든 기색이 역력한 환자분들도 “긍정적인 말을 해야 회복이 된다더라”, “가족을 사랑하자, 좋은 생각을 하자”라고 다짐하시는 모습을 많이 보여주십니다.

하지만 저는 그 말들이 때로는 환자에게 또 하나의 부담이자 스트레스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인생 모든 관계가 항상 평화로울 수 없고, 모든 순간에 늘 행복할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모두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환자분들께 아픈 중에도 억지로 좋은 감정과 좋은 말을 만들려고 애쓰기보다, 있는 그대로의 솔직한 심정을 표현해도 된다고 격려하곤 합니다.

“내가 슬프구나, 억울하구나, 화가 나는구나, 서운하구나, 외롭구나”라고 자기 마음을 알아차리고 표현할 때, 차라리 마음이 편안해지고 후련함을 느끼시는 듯 보이곤 합니다.

1주일에 몇 번 안 보는 미술치료사에게도 통증 중에서도 항상 미소 지어 보여주시는 한 환자분이 있으셨습니다. 자세가 불편하거나 체온 조절이 안 되는 상황 속에서도 저를 보면 늘 “수고한다, 감사하다”와 같은 격려의 말씀을 애써 최선을 다해 전해주셨습니다.

어느 날 환자분이 작은 종이에 그림을 그리다가 “선생님 오늘은 뭘 그려야 할지 모르겠어요”라고 하시더니 내 상황이 먹구름 같고 안개가 낀 것 같아 막막하기만 합니다”고 말씀하시며 아주 긴 한숨을 내쉬셨습니다. 저는 당연히 그럴 수 있는 감정이라는 것을 말씀드리며 그동안 그런 표현을 안 하고 어떻게 다 참고 있으셨는지 묻자, 그동안 웃음으로 감추어 놓았던 마음속 응어리를 터트리듯이 조용하지만 한참을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당일 그림을 그리지는 못했지만 환자분은 “솔직한 감정을 쏟아내고 나니 마음이 참 편안해졌다”라는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실제 ‘긍정’이라는 것은 ‘좋은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나의 모든 상황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저는 환자분의 편안해진 모습이 마치 자기 삶을 긍정하고 자신의 땅에 두 발을 딛고 안전하게 서 있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항상 좋은 말을 하고 주변 사람을 챙기던 환자분은 이제 자신을 위한 기도문을 쓰고 가족을 위한 기도문을 쓰는 것으로 병원 일과를 보내셨습니다. 종교가 없던 이 환자분의 기도문에는 아주 구체적이고 행복한 소망들로 가득 찼고, 환자분의 얼굴은 이전과 달리 생기 있게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환자분은 자신이 ‘먹구름, 안개’를 이야기했던 절망스러움을 받아들인 그 날을 투병 과정의 매우 중요한 전환점이라고 말씀하곤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날을 ‘희망의 씨앗이 심긴 날’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이렇게 다져진 땅에 심어진 감정의 씨앗은 시간이 걸려도 반드시 싹을 틔웁니다. 땅 위에서는 아무 변화가 없어 보여도, 흙 속에서는 씨앗이 뿌리를 내리고, 흙을 밀어내며 조금씩 위로 올라오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 과정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환자분들이 미술 치료에서 그려낸 그림과 나눈 이야기는 모두 씨앗이 됩니다. 분노와 원망, 슬픔과 좌절 같은 감정도 흙이 되어 씨앗을 품고, 그 속에서 싹이 자랍니다. 그리고 마침내 꽃이 되어 환자의 정원을 아름답게 채워 줍니다. 그 꽃은 환자 자신을 밝히고, 주변 사람들에게도 따뜻한 빛을 건네줍니다. 아픔을 넘어선 새로운 이야기, 이전에는 가져보지 못했던 삶의 정원이 그곳에서 피어납니다.

여러분의 투병 과정에도 희망이라는 씨앗이 땅에 잘 심어지기는 바라며 저는 두 가지를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첫째, 희망은 억지로 긍정하는 데서 나오지 않습니다. 솔직한 감정을 수용하는 순간 씨앗이 심어집니다.

둘째, 씨앗이 싹을 틔우기까지는 눈에 보이지 않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 시간이 바로 뿌리를 내리고 자라나는 과정입니다.

그러니 지금의 마음이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세요. 그 자리에서 언젠가 피어날 희망의 꽃을 함께 기대해 봅니다.

여러분의 씨앗이 싹트는 과정을 제가 옆에서 함께 기다리겠습니다. 여러분이 희망의 씨앗이 심어진 그 땅에 세상 가장 신선한 공기와 맑은 물, 그리고 반짝이는 햇살이 함께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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