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우회 탐방]
한국수포성표피박리증환우회 권영대 대외협력팀장

이미지
한국수포성표피박리증환우회 권영대 대외협력팀장이 국내 수포성표피박리증 환자들의 치료 환경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사진=김지아 헬스조선 객원기자
‘수포성표피박리증(EB, Epidermolysis Bullosa)’은 표피와 진피가 떨어지지 않도록 고정하는 7번 콜라겐이 형성되지 않아 사소한 자극에도 피부와 점막에 물집과 상처가 발생하는 유전성 희귀질환이다. 상처가 생길 때 3도 화상에 버금가는 고통이 동반된다. 손가락끼리 스치거나 바람이 불기만해도 각막이 벗겨지는 등 일상 전반에서 너무 쉽게 상처가 생긴다. 아직까지 치료제가 없어 전신 피부 및 점막에 생기는 수포와 상처 드레싱 등 대증 치료가 전부인데, 화상 환자를 위해 개발된 특수 실리콘 소재 고가의 드레싱을 사용해 경제적 부담이 크다. 한국수포성표피박리증환우회 권영대 팀장(54·경기도 남양주시)을 만나 국내 수포성표피박리증 환자들의 치료 환경에 대해 들어봤다. 그의 딸은 20여년 째 선천성 수포성표피박리증을 앓고 있다.

-자녀가 언제 어떻게 수포성표피박리증 진단을 받았나?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코 밑에 작은 물집이 있었다. 출산 후 간호사가 이물질을 세게 닦아 생긴 상처라 생각했는데 산후조리원에 있는 동안 물집 개수가 점점 늘었다. 수족구병이 의심돼 전염 위험이 있다고 3일 만에 쫓겨났다. 이후 병원을 전전했지만 아이의 병명을 정확히 진단할 수 있는 곳이 없었다. 진단 방랑을 하던 중, 강남세브란스병원 피부과 김수찬 교수를 만나 유전자 검사를 하게 됐고 수포성표피박리증 중에서도 가장 예후가 불량한 이영양형 열성 수포성표피박리증을 진단받았다. 그때부터 수포와의 전쟁이 시작됐다.”

-진단 후 어떤 치료들을 받았나?
“아직까지 근본적인 치료제가 없어 생활 중에 생기는 수포에 드레싱을 하는 게 가장 중점적인 치료다. 작은 자극에도 매일 화상이 생기다 보니 하루에 두세 시간씩 드레싱을 한다. 드레싱 과정에서도 상처가 또 발생해 아이가 아파서 우는데도 어쩔 수 없이 상처 위에 붙이기를 반복한다. 의학적으로 진피와 표피 사이에 발생하는 수포는 2도 화상으로 분류되며, 이 정도 외상이 발생할 수 있는 건 화재뿐이다. 그 고통은 3도 화상에 버금가 이를 완화하기 위해 펜타닐 패치 등 마약성 진통제를 쓰는 경우도 있다. 상처가 생길 때 고통뿐 아니라 아무는 과정에서 겪는 가려움도 괴롭다. 자는 동안 아이가 무의식적으로 상처를 긁지 않도록 만져주고 두들겨주고 비벼줘야 추가로 상처가 나는 걸 막을 수 있다. 아이로부터 한시도 떨어질 수 없는 상황이라 5분 대기조처럼 늘 준비하고 있다. 수포성표피박리증은 피부와 점막, 몸 전체에 영향을 주는 병이다. 입 안이나 식도에 상처가 생기면 음식 섭취가 어려워지고 온몸에 상처가 생기고 회복하기 위해 혈류가 돌다 보니 만성 철분 부족, 빈혈에 시달린다. 심장도 일반인보다 빠르게 뛰는데 장기적으로 수명에 영향을 미친다. 피부과, 소아과, 정형외과, 성형외과, 산부인과, 내분비내과, 안과, 치과, 심장내과 진료를 정기적으로 다니고 있다.”


-수포성표피박리증 환우들이 겪는 어려움은 무엇인가?
“매일 생기는 상처를 감당하며 하루하루를 버텨야 하는 병인데다가 학교나 사회생활 등에 큰 제약을 겪는다. 어린이집에 보낼 나이가 됐을 때 반나절을 외부에서 생활하는 것만으로도 큰 도전이었다. 대안으로 미술학원을 알아봤지만 아이의 질환에 대해 설명할 때마다 번번이 거절을 당했다. 그러던 중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교회에서 운영하는 ‘미라클 미술 음악 교실’을 찾게 됐는데 아이를 받아들여줘 첫 외부생활을 시작했다. 학교에 입학할 때는 더 어려웠다.

짧은 거리를 혼자 걷는 것도 어려워 매일 직접 등하교를 시키고 학교에 있는 시간에는 혹시 다쳤다는 연락이 오진 않을까 걱정하며 전화기를 붙들고 살았다. 중고등학교에 진학할 때는 희귀질환 환자인데도 선배정 제도에 해당되지 않아 원하는 학교에 보내기 위해 병원 진단서, 학교 진술서 등을 챙겨 교육청에 찾아가 사정했다. 그 과정에서 아이를 직접 데려오라고 요구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자기가 얼마나 아픈지를 아이 스스로 증명하게 만드는 현실의 냉정함이 힘들었다. 상처에 고름이 생기고 드레싱 재료 특성상 냄새가 날 수 있어 학급 친구들에게 놀림을 받는 문제도 있다. 외모로 드러나는 질환이라 학교나 대중교통에서 ‘화상이냐’, ‘아토피냐’ 등 무례한 질문을 받는 경우도 빈번하다.”



이미지
한국수포성표피박리증환우회 권영대 대외협력팀장./사진=김지아 헬스조선 객원기자
-요즘은 어떻게 지내고 있나?
“다행히 아이가 공부를 좋아하고 잘해준 덕분에 대학교 행정학과에 입학했다. 수포성표피박리증 환자들은 우리 아이처럼 학교를 무사히 마치는 경우가 드물다. 드레싱 때문에 시간이 부족하고 상처로 인한 통증과 사회적인 배제와 따돌림 등이 겹쳐 학교를 그만두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건강 문제로 휴학이나 중퇴를 하면서 학업이 끊기기도 한다. 우리 아이도 예외는 아니었다. 최소한 등교 세 시간 전에 일어나 드레싱을 하고 등교 준비를 했다. 밤에는 가려움, 통증 등으로 숙면을 취하지 못하는 날이 대부분이었다. 그런 몸 상태로 매일 학교에 가 수업을 듣고 공부를 한다는 게 보통 아이들보다 훨씬 더 많은 에너지를 요구하는 일이다. 예전에는 아이의 꿈이 한 사람 한 사람 따뜻하게 치료해주는 소아과 의사였는데, 지금은 제도를 바꿔 많은 사람들의 삶을 바꿀 수 있는 행정가가 되겠다고 한다. 그 꿈을 품고 공부를 좋아하며 잘해준 덕분에 결국 행정학과에 진학해 잘 다니고 있다. 너무 감사하고 기적 같은 일이다.”

-지금까지 한국수포성표피박리증환우회의 성과는?
“한국수포성표피박리증환우회는 2002년 일곱 명의 환우와 환우 가족이 모여 자조 모임 형태로 시작해 현재는 39명의 환우와 가족들이 함께 목소리를 내고 있다. 무슨 질환인지조차 알지 못한 채 진단 방랑을 이어가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수포성표피박리증에 대해 알고 있던 강남세브란스병원 피부과 김수찬 교수를 만나 한데 모이게 됐다. 같은 질환으로 병원을 찾아오는 환자들이 늘어나면서 2023년에 민간단체 등록을 해 공식 단체로 발전했다. 정관, 체계 등을 만들고 각종 SNS에 질환에 대해 알리는 활동을 펼치고 있다. 한국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와 함께 희귀질환복지법 제정을 위해 꾸준히 노력 중이다. 최근에는 교육부와 협력해 학교에 수포성표피박리증 학교생활 가이드북을 배포했다.”


-환우회의 다음 목표는 무엇인가?
“법적·제도적 장치 마련에 힘쓸 것이다. 수포성표피박리증 환자뿐 아니라 대부분의 희귀질환자가 장애인도 비장애인도 아닌 애매한 존재로 분류돼 제도적 사각지대에 있다. 희귀질환자의 권리를 명확히 하려면 국가적으로 제도가 제정돼야 본격적인 변화가 나타난다. 그동안 내부 활동에만 머물렀지만 2022년 집행부 교체 이후 SNS 홍보, 토론회 등을 본격 시작했다. 일반 시민들의 인식 개선을 위해 함께 참여할 수 있는 걷기, 마라톤 등의 이벤트도 계획 중이다. 내년부터는 본격적인 사회 인식 개선 활동도 추진 예정이다.”

-마지막으로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많은 사람들이 희귀질환이 나와 관계없는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희귀질환의 90% 이상이 유전자 변형에 의해 발생하는 유전질환이다. 즉,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나 역시도 아이가 생기기전까지 우리 가족에게 이런 일이 생기리라고 상상조차 못했다. 희귀질환에 대한 사회적 안전망이 일부 소수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언제든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우리 모두를 위한 시스템이 돼야 한다. 뒤늦은 지원보다 선제적인 예방과 투자가 더 효율적이다. 희귀질환자들이 건강한 사회 구성원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시스템이 구축되면 장기적으로 사회에 더 큰 이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