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글로벌의약산업협회(KRPIA) 창립 25주년 기념 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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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법무법인 화우 김태경 전문의원, 데일리팜 어윤호 기자, 성균관대 약학대학 이의경 교수, LG화학 마켓 엑세스 여동호 담당, 한국릴리 대외협력부 조재민 상무/사진=정준엽 기자
새로운 기전을 보유한 '혁신 신약'이 환자의 생존율과 삶의 질을 크게 끌어올리고 있지만, 국내에서는 도입과 급여 과정이 더뎌 환자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전문가들은 신약 가치 평가에 ‘중증도’ 개념을 반영하는 등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급여 한 건에 2~3년 소요… 접근성 개선해야"
한국글로벌의약산업협회(KRPIA)는 24일 서울 반포한강공원 채빛섬에서 ‘창립 25주년 기념 포럼’을 개최했다. KRPIA는 국내에서 활동 중인 50여개의 다국적 제약사(한국 지사)들을 대표하는 단체다.

국내 환자들의 기대수명과 생존율, 삶의 질은 혁신 신약의 도입 이후 크게 개선됐다. 기대수명의 경우 신약 도입 이전 대비 35% 이상 연장됐으며, 암으로 인한 사망률도 25% 감소했다. 암의 경우 5년 생존율이 기존에는 30~40%였다면, 면역항암제·표적 치료제·세포 치료제 등 신약의 등장 이후 일부 암종의 5년 생존율이 최대 70~80%까지 향상됐다. 신약 덕분에 연간 126조원 규모의 사회·경제적 비용 절감 효과도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그러나 국내에 신약이 도입되는 속도는 다른 OECD 국가 대비 느린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제약 연구·제조사 협회의 '글로벌 신약 접근 보고서'에 따르면, 신약이 미국·유럽 등 글로벌 시장에서 처음 출시된 이후 1년 이내에 한국에도 출시된 사례는 약 5%였다. 이는 OECD 평균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수치다. KRPIA 최인화 전무는 "모든 국가가 혁신 신약이 국민에게 빨리 도입되도록 노력하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신약 하나가 급여를 받기까지 2~3년이 걸리기도 한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의 건강보험 재정 지출 상황에 대한 문제도 제기됐다. 동덕여대 약학대학 유승래 교수가 건강보험 재정 지출을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최근 6년간 우리나라의 총 약품비 대비 신약의 지출 비중은 13.5%로, OECD 평균인 33.9% 대비 절반 이하 수준에 그쳤다. 최인화 전무는 "정부도 부단히 제도 개선을 위해 노력해 오고 있지만, 여전히 국내 환자의 신약 접근성은 제한적이다"며 "환자 접근성을 최우선으로 하는 보다 근본적인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중증도 기반 가치 평가 필요… 국내 업계에도 의미 있을 것"
이날 가장 활발하게 언급된 개선 방안은 국내 신약 가치 평가에 '중증도' 개념을 도입하는 것이었다. 중증도란 질병 발생 시 나타나는 건강의 절대적·상대적 손실 정도를 따져 신약의 가치를 평가하는 개념으로, 평가 과정에서 치료의 긴급성·형평성 등을 모두 다층적으로 고려한다. 영국·노르웨이·네덜란드 등 국가들이 이 기준을 채택해 약가를 책정하고 있다. 영국의 경우 이 개념에 기반해 신약 가치에 대한 가중치를 최대 1.7배까지 부여하며, 노르웨이와 네덜란드는 각각 3·4배까지 가중치를 부여하기도 한다.

다만, 현재 우리나라에서 질병의 중증도는 신약 가치 평가의 우선순위 기준이 아니다. 2019~2023년 급여 평가 결과를 분석한 결과, 일반 약제 대비 항암제의 ICER(점증적-비용 효과성 지표) 비율이 일반 약제 대비 1.3배(최댓값 기준)로 나타났다. ICER란 환자에게 신약을 사용하면 생존 기간이 1년 늘어난다고 가정했을 때 국가가 이를 위해 추가로 부담할 수 있는 비용을 말한다. 강동원 교수는 "절대 손실·상대 손실 등 정량적이고 예측 가능한 기준을 적용한다면, 중증도에 대한 사회적 선호를 더 잘 반영하고 형평성 제고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삼육대 약학대학 김혜린 교수 또한 "기존 의료기술 평가(HTA)는 QALY(삶의 질을 보정한 생존 기간)를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지만, 혁신 신약의 사회적·임상적 가치를 충분히 다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는 문제가 제기돼 왔다"며 "다층적 가치 평가 개념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국내 제약업계 또한 신약 약가 제도 개선 방안에 대해 동의했다. 국내 기업 중에는 아직 혁신 신약이 많지는 않지만, 현재 계열 내 최초 기전의 신약을 개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만큼 추후 신약 개발 성공 시 개선된 제도가 도움이 될 수 있어서다. LG화학 마켓 액세스팀 여동호 담당은 "현재 업계가 삼고 있는 선도 기업들이 신약의 적절한 가치를 인정받으면, 결국 국내사와의 가치와도 연결된다"며 "다양한 형태의 가중치를 고려해 가치 평가 결과를 좀 더 긍정적으로 전망할 수 있다면 큰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