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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분당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유희정 교수, 고려대 바이오시스템의과학부 안준용 교수/사진=분당서울대병원 제공
분당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유희정 교수팀이 한·미 자폐 가족 코호트 데이터를 분석해 자폐 스펙트럼 장애의 새로운 유전적 기전을 규명했다고 발표했다. 같은 유전자라도 변이 위치에 따라 증상이 다르게 나타나는 원인을 과학적으로 밝혔으며, 신규 자폐 연관 유전자 18개도 발굴했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Autism Spectrum Disorder, ASD)는 사회적 상호작용의 어려움, 의사소통 문제, 제한적이고 반복적인 행동 및 관심사 등을 주요 특징으로 하는 신경발달질환이다. 자폐에 관한 연구는 부모에게는 없지만, 자녀에게 새롭게 생긴 유전자 변이인 ‘새 발생 변이’를 중심으로 한 유전 연구가 활발히 진행돼 왔다.

하지만 실제 임상에서는 같은 유전 변이를 가진 자폐인이라도 증상이 크게 달라, 기존 방식만으로는 해당 변이가 미치는 영향을 정확히 평가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이에 유희정 교수팀은 가족 단위로 유전변이 효과를 측정하는 ‘가족 내 표준화 편차(Within-family standardized deviations)’라는 방법을 도입했다. 이는 가족 안에서의 상대적 차이에 주목한 것으로 부모와 형제자매의 임상 점수를 기준으로 삼고 자폐인과의 차이를 비교함으로써 변이가 미치는 영향을 정밀하게 평가하는 접근법이다.

예를 들어 키가 170cm인 남성 A씨가 속한 가족의 남성 평균 키가 185cm라면, A씨의 키는 전체적으로는 평균 수준이지만, 가족 내에서는 큰 차이를 보이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처럼 가족 배경을 고려해야 정확한 평가가 가능하다는 원리를 적용한 것이다.


연구팀은 한국과 미국 자폐 가족 코호트 총 2만 1735가구(7만 8685명)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대규모 엑솜·전장 유전체 분석을 실시했다. 엑솜 분석은 전체 유전체 중 단백질을 만드는 부분(엑솜)만 분석하는 방법으로 엑솜은 전체 유전체의 1~2%에 불과하지만 유전 질환 변이의 대부분이 이 영역에 존재한다. 반면 전장 유전체 분석은 생명체의 모든 DNA 정보를 분석하는 방법이다. 또한, 사회적 반응성 척도 등 다양한 발달·행동 지표를 결합해 분석하고, 가족 단위 임상 점수를 기준으로 유전자 변이가 실제 증상에 미치는 영향을 정량화했다.

연구 결과, 같은 유전자 변이라도 변이가 발생한 위치에 따라 자폐인의 증상, 혹은 변이 효과가 달라지는 유전자 11개를 확인했다. 예를 들어 'PTEN 유전자'는 세포 성장과 신호 조절을 담당하는 유전자인데, 일반 부위에 변이가 생긴 자폐인의 사회성 장애 점수보다 핵심 기능 부위(촉매 모티프 영역, 효소가 실제로 화학반응을 일으키는 중요한 부분)에 변이가 생긴 자폐인은 사회성 장애 점수가 두 배 가까이 높게 나타났다.

또한 연구팀은 기존 방식으로는 확인되지 않았던 자폐 관련 신규 유전자 18개를 발굴했다. 이들은 지금까지 알려진 유전자들과는 다른 특징을 보였는데, 기존 유전자들이 주로 신경세포 자체의 기능과 관련되었다면, 새로 발견된 유전자들은 단백질 변형, 신호 전달 과정, 그리고 뇌에서 신경세포를 돕는 보조 세포들의 기능과 관련이 있었다. 이는 자폐가 단순히 신경세포 하나의 문제가 아니라, 여러 종류의 세포들이 함께 작용하면서 생기는 복합적인 질환임을 보여준다.

분당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유희정 교수는 “가족 배경을 고려한 유전자 변이의 새로운 분석 방법은 자폐 연구에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이라며, “자폐인 맞춤형 예후 예측 및 정밀의학적 접근을 통해 자폐의 임상적 이질성과 발병 기전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도 큰 진전이 있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한편 이번 연구는 고려대 바이오시스템의과학부 안준용 교수와 함께 진행했으며, 유전체 분야 국제학술지 ‘게놈 메디신(Genome Medicine)’ 최근호에 게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