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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클립아트코리아
헌법재판소가 지난해 2월 태아 성별 고지를 금지한 의료법 조항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리면서 태아의 성별을 알 임신부의 권리는 보장됐다. 그러나 의료인이 태아의 성을 알기 위해 직접 검사하는 행위는 여전히 불법으로 남아 있어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해, 헌법재판소는 의료법 제20조 제2항(임신 32주 이전 태아 성별 고지 금지)에 대해 “부모의 알 권리와 의사의 직업 수행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한다”며 위헌 결정을 내렸다. 이로써 의료인은 임신 주수와 관계없이 진찰·검사 과정에서 알게 된 성별을 산모에게 알려주는 것이 가능해졌다.

그런데 의료인이 태아의 성을 감별하기 위해 검사를 하는 건 위법이다. 의료법 제20조 제1항은 의료인이 태아의 성 감별을 목적으로 임부를 진찰하거나 검사하는 행위 자체를 금지한다. 이를 위반하면 1년의 범위에서 면허 자격이 정지될 수 있다. 즉 ‘알려줄 수는 있지만, 알아내기 위한 검사는 안 된다’는 모순적인 법 구조가 현장을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다.

의료 현장에서 태아 성별을 구분하기 위해 가장 널리 쓰이는 방법은 초음파 검사다. 빠르면 12주부터 알 수 있지만 태아의 생식기를 정확히 구분하려면 15~16주가 돼야 한다. 임신 16주 정도에 실시하기도 하는 양수 검사는 염색체를 직접 분석하기 때문에 정확도가 100%에 가깝다.


최근에는 임신 10주 전후 간단한 혈액검사(NIPT)가 활용되고 있다. 임신부의 혈액으로 태아의 염색체 이상 여부를 확인하는 비침습적 선별 검사지만 태아의 성별까지 확인할 수 있다. 성 감별을 위한 별도 검사와 질병 진단을 위한 검사의 경계가 사실상 모호해진 것이다. 서울의 한 산부인과 전문의는 “NIPT 검사 결과 중 성별을 가장 궁금해 하는 부모들이 많아서 알려주지 않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고 말했다.

현행법이 태아 성 감별을 제공한 의료인에 대해서만 처벌을 규정하고 있어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게 의료계의 주장이다. 대한의사협회는 “태아 성별 확인은 대부분 부모의 요구에 의해 이뤄지므로 이를 요구한 부모에 대한 처벌 규정 없이 의료인만을 처벌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며 “또 혈우병과 같은 유전 질환의 진단, 치료, 분만 계획 수립을 위해 태아의 성별 확인이 필수적인 경우가 있지만 법적 제재 때문에 의료인이 합리적인 의료 행위를 수행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고 말했다.

국회에서는 의료법 제20조 제1항을 삭제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의료법 개정안이 발의된 상태다. 개정안을 대표 발의한 국민의힘 박정훈 의원은 “부모의 성별 정보 접근권이 헌법상 기본권으로 인정됐음에도 제1항이 여전히 존치됨으로써 부모의 자기결정권과 의료인의 직업수행권이 불필요하게 제한되는 모순적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이어 “의료법 제20조 제1항을 삭제함으로써, 성별 고지와 성감별 검사 금지 사이의 상충 문제를 해소하고, 의학적 필요에 따른 합리적 의료행위가 위축되는 부작용을 방지하려는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