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 직접 겪었을 땐 공감과 초기 치료 필수
간접 경험도 불안 불러와… 대처법 위주 설명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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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안전을 지키면서 불안을 줄이기 위해서는 부모는 극단적 경고보다 안전망·대처법을 알려 주는 것이 바람직하다./클립아트코리아
최근 전국에서 미성년자를 노린 유괴 미수 사건이 잇따르고 있다. 지난 9일 서울 관악구에서는 60대 남성이 학원을 가던 초등학생을 끌어가려다 제지당했다. 같은 날 대구 서구와 제주, 인천 서구에서도 초등생이나 중학생을 유인하려 한 남성들이 경찰에 붙잡혔다. 앞서 지난 8일 경기 광명에서는 10대 남성이 아파트에서 귀가하던 초등생을 강제로 끌고 가려다 미수에 그쳤고, 지난달 28일 서울 서대문구에서는 20대 남성 3명이 초등학생들을 차에 태우려다 적발됐다.

아동을 노린 유괴 범죄는 최근 몇 년 새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대검찰청 통계에 따르면, 약취·유인 전체 피해자 가운데 아동의 비율은 2020년 44.2%에서 2023년 58.5%로 늘었다. 사건 발생 건수만 보더라도, 13세 미만 아동 대상 약취·유인 범죄가 같은 기간 113건에서 204건으로 증가했다. 경찰청 자료 역시 비슷하다. 미성년자 대상 범죄는 2020년 210건에서 2023년 342건으로 300건을 넘어섰고, 지난해에도 316건이 발생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아이의 불안이 커질 수 있는 만큼, 부모가 심리적 충격에 어떻게 대응하느냐가 중요한 과제로 꼽힌다.

◇유괴 경험 아동, 불안·PTSD 위험… 초기 치료가 회복 좌우
유괴나 유괴 미수를 겪은 아동은 사건 직후 극도의 불안과 공포에 휩싸인다. 사건 장면이 반복적으로 떠오르거나 악몽을 꾸고, 관련 장소와 상황을 피하려는 행동이 나타난다. 부모와 떨어지기를 힘들어하는 분리불안, 작은 소리에 과민하게 놀라는 과각성, 멍해지는 해리 증상, 두통·복통 같은 신체 반응도 흔하다. 이 같은 반응이 짧은 기간 안에 회복되지 못하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로 이어져 성인이 돼서도 괴로울 수 있다. 아주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김동희 교수는 “PTSD로 굳어질 경우 불안은 쉽게 가라앉지 않고, 주의력이 떨어지면서 학업 성취 역시 낮아지며, 또래 관계에도 어려움이 생긴다”며 “아동에게 자신을 탓하는 부정적 자기 인식이 고착되면서 불안과 우울이 만성화되고, 자존감이 떨어져 건강한 성격 발달까지 방해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부모의 초기 대응이 중요하다. 사건 직후에는 아이에게 ‘이제 안전하다’는 사실을 반복적으로 확인해 주고, “무서웠겠다, 네 잘못이 아니다”와 같이 감정을 공감하는 언어를 써야 한다. 억지로 사건을 캐묻기보다는 아이가 스스로 말할 때까지 기다리며, “그 일은 묻지 않을게, 그런데 네 기분이 어땠는지는 궁금해” 같은 방식으로 감정을 살피는 태도가 바람직하다. 반대로 “괜찮아, 아무 일도 아니야”라는 말이나 부모의 과도한 불안은 오히려 아이에게 또 다른 불안을 심어줄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전문 치료를 통한 회복 지원도 받아야 한다. 김 교수는 “트라우마 초점 인지행동치료(TF-CBT)는 아동이 사건을 떠올리며 불안을 다루는 법을 배우고 왜곡된 생각을 교정하도록 돕는다”며 “놀이치료는 언어 표현이 서툰 아동에게 유용하고, EMDR(안구운동 둔감화·재처리 요법)은 외상 기억을 건강하게 처리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상황에 따라 불안·우울·수면 장애를 완화하는 약물치료가 병행되기도 한다”며 “부모는 정서적 지지를 바탕으로 아이가 일상 리듬을 되찾도록 돕고, 필요할 때는 전문가와 연결하는 가교 역할을 해야 한다”고 했다.

◇직접 겪지 않았어도 불안… 균형 잡힌 설명과 대처법 제시를
직접 피해가 없더라도 유괴 사건 소식이나 언론 보도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면 아동은 막연한 위협을 느낀다. 서울대 심리학과 곽금주 교수는 “아동은 판단력이 미숙해 사건을 과장되게 받아들이기 쉽고, 반복 노출되면 불안이 전반적인 세상에 대한 두려움으로 확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불면, 악몽, 외출·등교 거부, 대인 기피, 복통·두통·식욕 저하 같은 신체 증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연구 결과도 이를 뒷받침한다. 연세대 소아정신과 연구에서는 위협적인 사건을 접한 아동이 그렇지 않은 아동보다 PTSD, 불안장애, 우울증을 겪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했다. 미국 미시간주립대 연구에서는 아동이 뉴스를 통해 유괴 소식을 접하는 것만으로도 불안을 경험하며, 시청 시간이 길수록 안전에 대한 두려움이 커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부모의 역할은 ‘불안의 증폭’이 아니라 ‘불안의 조절’에 맞춰져야 한다. 곽금주 교수는 “막연히 ‘절대 따라가지 마, 큰일 난다더라’는 식의 경고는 아동에게 오히려 불안을 키운다”며 “대신 실제 상황에서 어떻게 도움을 청하고 어디로 피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것이 통제감을 주고 대처 능력을 키운다”고 말했다. 이어 김동희 교수는 “뉴스 반복 노출을 줄이고, 아동이 느끼는 감정을 먼저 인정한 뒤 CCTV나 주변 어른들의 도움, 경찰 신고 체계 같은 현실적인 안전망을 알려주는 균형 잡힌 설명이 필요하다”며 “핵심은 ‘세상은 언제나 위험하다’는 두려움이 아니라 ‘위험한 상황이 와도 나는 이렇게 대처할 수 있다’는 자기 효능감을 심어주는 것”이라고 했다.

실제 상황에서 도움이 되는 행동 매뉴얼은 다음과 같다. 경찰청이 발표한 아동안전지침에 따르면 ▲낯선 사람이 말을 걸거나 함께 가자고 할 때 단호하게 거절하기 ▲억지로 끌려가려 할 때 큰 소리로 ‘낯선 사람이에요’, ‘도와주세요!’, ‘경찰 불러주세요!’라고 외쳐 주변에 알리기 ▲길을 잃었을 때는 가게 주인·공공기관 직원·경찰관 등 믿을 수 있는 어른에게 도움 청하기 ▲외출 전에는 누구와 어디에 가는지, 언제 돌아올지를 부모에게 알리기 ▲가능하면 친구와 함께 다니기 ▲이름·주소·부모 연락처 같은 기본 정보 기억하기 ▲실종 예방 앱(경찰청 ‘안전Dream’)을 활용해 지문·보호자 연락망을 미리 등록하기 등을 실천하도록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