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를 보시나요?” 지난해 8월 언론진흥재단이 국민 3000명을 대상으로 물었다. 72.1%가 “아니오”라고 답했다. 또 뉴스를 회피하자 ‘스트레스가 줄고’, ‘피로·불편함을 덜어 편안해졌다’고 했다. 뉴스를 회피하든, 회피하지 않든 응답자 절반 이상이 ‘정치적인 사건·이슈가 너무 많을 때’ 뉴스를 가장 보기 싫다고 응답했다. 정치를 비추는 미디어는 독자의 감정을 건들여, 정신건강에 분명히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 뉴스를 회피하는 사람은 늘어나고, 보는 사람의 감정은 더 격해질 수 있다. 기자는 어떻게 써야하고, 독자는 어떻게 봐야 할까.
서강대 레메디아 연구단은 지난 11일 ‘정치 위기 보도와 시민 정신건강: 분열과 연대의 광장에서 회복의 길을 찾다’를 주제로 기획세미나를 열고, 그 답을 찾고자 했다. 한국정치커뮤니케이션학회가 공동 주최하고, 방송문화진흥회가 공동 후원했다. 이번 행사에는 학계·의료계·정치권 인사 13명이 패널로 참여해, 감정과 직결되는 정치 뉴스는 차분하게 해법을 제시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의견을 나눴다.
◇정치 갈등 뉴스, 부정적인 감정 키워… 특히 ‘유튜브’에서
‘12·3 계엄’은 보도가 시민의 정신건강에 얼마나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최선영 교수와 게임과학연구원 고은지 연구원은 계엄 전후 6개월간 60개 언론사 유튜브 영상 31만개, 댓글 2545만 개등을 분석했다. 그 결과, 정치 갈등 뉴스는 부정적인 감정을 키웠고, 특히 유튜브와 같은 뉴미디어에서 혼란을 가중시키는 경향이 확인됐다.
최선영 교수는 “TV 뉴스와 달리 유튜브 뉴스에선 계엄 관련 뉴스가 여러 채널을 통해 동시·반복 재생돼 착란이나 혼란 상태를 유발할 가능성이 커졌다”며 “감정 변동 결과에 따라 사회의 정치적 분열도 유추할 수 있었다”고 했다. 유튜브 뉴스 영상은 생중계인지 아닌지 판단이 어렵고, 썸네일 ‘속보’ 표기로 혼란을 가중할 수 있었다. 한 예로 유튜브 내 첫 계엄 선포 담화 영상인 SBS 뉴스 영상은 11시간 동안 반복됐다. 계엄 해제 후에도 보도된 것이다. 또 계엄 전후 평균 댓글이 77.4% 증가했는데, 그중 증오와 혐오, 화남과 분노 등 부정적 감정 표출이 크게 늘었다.
국민의힘 이성권 의원은 “국민의힘 안에서나 민주당 안에서나 어디서든 여러 이해관계와 정치적인 견해는 충돌 하기 마련인데, 그 갈등이 미디어를 통해 증폭되며 국민 정신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인 것 같다”며 “레거시 미디어보다 뉴미디어인 소셜 미디어의 새로운 질서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형성해 내는 게 중요할 것”이라고 했다.
한편, 서울대 보건대학원 유명순 교수는 “높은 스트레스가 유발되면 상대적으로 사람은 감정 표출 등이 중요해진다”며 “계엄과 같은 정치위기에는 어떤 뉴스가 보도되면 평소보다 감정이 촉발되므로, 이게 보도의 문제인지 사안의 문제인지를 구별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정치 유튜브 보고 느끼는 안정감, 공감의 착각일 수도
오히려 정치적 상황이 악화될 때, 평소보다 더 뉴스를 찾아보며 앞서 언급한 것과 반대로 안도감을 느낀 적이 있을 것이다. 실제로 정치 위기 상황에서 미디어 사용이 단기적으로는 정신건강에 오히려 긍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다만, 전문가들은 장기적으로 보면 자신의 의견이 더 공고해져, 국내 분열로 이어질 것으로 봤다.
이화여대 커뮤니케이션·미디어학부 윤호영 교수는 미디어 사용이 오히려 정신건강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고 발표했다. 윤호영 교수는 “‘내란 신경안정제’, ‘계엄 신경안정제’를 키워드로 조회수 10만 이상인 유튜브 영상 39개의 댓글과 대댓글 6만여개를 수집·분석해봤는데, 공감의 내용이 많았다”며 “향후 미래에 대한 전망과 현 상황에 대한 토론·내용을 들으면서 현재의 스트레스 요인을 견딜 수 있는 회복 탄력성 역할을 유튜브 영상이 수행하고 있었다”고 했다.
다만, 시민은 ‘같은 생각’을 공유하고 있는 콘텐츠에서만 공감을 얻었다. 카이스트 김정남 교수는 “미디어가 국지적 관점에서는 좋은 효과가 있어 보일 수 있다”면서도 “생각의 방향과 강도에 영향을 미치는 미디어는 자기 확신을 더 강화하므로, 전반적 관점에서는 국내 분열을 촉진시킬 수 있다”고 했다.
이렇게 얻은 공감은 오히려 사회에 대한 신뢰와 안전감은 떨어뜨릴 수 있다. 국가트라우마센터 심민영 센터장은 "위기 상황엔 연결을 추구하면서 내집단에 대한 공감의 깊이는 높아지지만 반경은 좁아진다"며 "좁아진 시야 속에서는 일시적으로 안전하고 연결된 것처럼 느끼지만, 내집단이 점점 좁아지다보면 결국 내가 속한 큰 사회에 대한 신뢰와 안전감은 감소하게 된다"고 했다.
◇위기 상황 속 언론보도, “차분하게 해결방안 제시해야”
전문가들은 두 발표를 통해 '올바른 보도 방법'에 대한 토론을 진행했다. 위기 상황일 수록 긴박하기 보다, 차분한 보도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주를 이뤘다. 성균관대 글로벌융합학부 이창준 교수는 “최근 학생들과 감정적인 챗봇과 이성적인 챗봇 중 어떤 게 더 사용자의 불안을 줄일 수 있는지 연구하고 있는데, 의외로 이성적인 챗봇이 훨씬 사용자의 불안도를 낮췄다”며 “정치위기 상황, 특히 계엄 같은 상황에선 오히려 감정적인 보도보다 차분하게 정보를 전달하는 보도가 사람들의 불안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서강대 커뮤니케이션학과 서수민 교수는 “극단적이고 긴박한 상황에서 얼마나 언론이 평정심을 유지하면서 보도하는가는 중요하다”며 “과연 특히 유튜브라는 매체에서 언론이 그런 부분을 얼마나 실천했는가 고민”이라고 말했다.
보도 수를 줄이는 방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고은지 연구원은 “계엄 후 보도량이 급격히 증가한 것으로 확인됐다”며 “큰 재난이나 정치적 사건이 있을 땐 보도량을 크게 증가시키기보단 정확한 보도를 하는데 초점을 두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계엄 직후부터 지난 4월까지 언론사 유튜브 영상은 계엄 전보다 12.7% 증가한 것으로 확인됐다. 종합지는 약 44%로 가장 크게 증가했고, 인터넷 언론사도 32%의 증가율을 보였다. 유명순 교수는 “잘못된 정보를 정정하는 효과도 어떻게 높일 수 있을지 고민해봐야 한다”고 했다.
언론이 단지 상황만 보도하는 게 아닌, 방향성을 잡아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심민영 센터장은 “정치 뉴스를 보고 부정적인 감정이 느껴지는 건 본능적이고 1차원적으로 벌어지므로, 미디어가 견제하고, 방향성을 잡아주는 역할을 해주면 좋겠다”며 “위기를 이겨내는 롤모델 역할도 해줄 수 있을 것이다”고 했다.
미디어에서 이런 제안을 받아들이도록, 분위기를 조성하는 게 중요하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광운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정일권 교수는 “학계에서 가이드라인을 세우고 지키라고 이야기할 수 있어도, 미디어가 모든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책임요구가 가능한 전통 미디어가 아닌 유튜브에 대해 오늘 이 자리에서 어떤 기준을 만들다고 해도 유튜브는 그 기준에 따라서 변할 수가 없고, 유튜브에서 개인이 지닌 자율권이 침해되므로 변해서도 안된다”고 했다. 한양대 에리카 언론정보대 백혜진 교수는 “언론실무적으로는 타자가 규제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기 때문에 자율적인 규제와 책임성이 강조되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부분이 중요하다”며 “정치 유튜버는 사회적으로 지속적인 압박과 여론 형성을 통해 자정되는 과정을 거치는 식으로, 이 부분이 사실 제일 어려울 것 같다”고 했다.
◇정치권 반성과 국민 리터러시 교육도 함께 진행돼야
궁극적으로 정치권 등 미디어 외에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시선도 공감을 얻었다. 정의당 장혜영 전 의원은 “정치 위기를 만들어내고 있는 최대의 주체가 다름아닌 정치인”이라며 “진영논리를 강화하는 정치인들의 발언·기획들이 점점 더 정치 양극화 상황을 조장하고, 없는 위기를 만들며 그 위기를 자신의 정치적인 동력으로 삼는 문제가 근본적으로 개선되지 않은 채 정치인들이 정치보도를 문제삼거나 미디어의 책임을 더 크게 얘기하는 것은 양심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국민도 자기 확신 강화를 위해서가 아닌, 옳은 이야기를 듣기 위한 뉴스를 봐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정일권 교수는 “내 마음에 위로가 되는 말을 찾아서 이용하는 사람들에 대한 비판도 필요하다”며 “학자들은 미디어가 이용자에게 안 좋은 평을 받더라도, 해당 미디어가 본연의 가치관과 규범을 따르도록 지원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