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TI를 넘어, 마음공부로 삶의 방향을 묻다

이미지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요즘 사람들 사이에서 가장 흔히 오가는 질문이 있다. “MBTI가 뭐예요?”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혈액형으로 성격을 풀이하는 것이 유행이었다. 하지만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점차 사라졌고, 그 빈자리를 MBTI가 채웠다. 이제 MBTI는 단순한 유행을 넘어, 자기소개와 관계의 문을 여는 열쇠가 되었다. 왜 이렇게 빠르게 우리 일상 깊숙이 자리 잡게 된 걸까?

정신의학적 관점에서 보면 이유는 분명하다. 오늘날 젊은 세대는 급변하는 사회와 불안한 미래 속에서 살아간다. 안정된 일자리와 관계, 미래의 청사진이 흔들릴수록 사람들은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누구인가?” 그 물음은 곧 정체성을 확인하려는 강한 욕구로 이어진다.

SNS와 온라인 문화도 한몫한다. 온라인 세계에서 소통의 핵심은 짧고 간단한 언어다. 긴 설명보다 네 글자로 요약되는 MBTI가 훨씬 빠르고 편리하다. “나는 ENTJ다”라는 말 한마디로 상대방이 곧바로 나를 이해한 것 같은 착각이 생긴다.

MBTI는 단순한 놀이가 아니다. 불확실한 시대를 사는 청년들에게 정체성의 코드이자 정신적 안전망이 된다. 자기 이해의 출발점이 될 수도 있다. 검사 결과를 계기로 “나는 이런 특성이 있구나” 돌아보게 하고, 타인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언어로도 쓰인다. 대화의 빙벽을 깨는 소재가 되거나, 서로 다른 성향을 존중하게 하는 긍정적 효과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과몰입은 자기 인식을 흐리게 하고 관계를 단순화한다. 복잡한 인간을 몇 가지 유형으로만 설명하면 관계는 피상적으로 변한다. 사람은 틀에 갇힌 존재가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고 성장하는 존재다. 따라서 결과에 자신을 가두지 않고 열린 태도로 활용할 때 건강한 자기 이해와 타인 이해가 가능하다.


더 큰 문제는 진단 도구의 신뢰성이다. MBTI는 기업 현장이나 교육·상담에서 참고 도구로 활용되기도 하지만, 학문적으로는 신뢰성과 타당성에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온라인에서 유통되는 검사 상당수는 검증조차 거치지 않았다. 누군가 재미삼아 만든 간이 테스트가 순식간에 퍼져, 마치 전문 도구처럼 사람들의 성격을 규정하기도 한다.

이는 낡은 체중계로 몸무게를 재고 그 숫자 하나로 건강을 단정하는 것과 같다. 진단이나 처방처럼 받아들이는 것은 위험하다. 오히려 가벼운 대화 소재나 자기 성찰의 작은 단초로 활용하는 편이 바람직하다.

더 깊은 자기 이해가 필요하다면 접근은 달라져야 한다. 그때 필요한 것이 바로 마음공부다. 마음공부란 마음·세상·관계가 작동하는 원리를 이해하는 과정이다. 뭉툭한 도끼날로 나무를 베는 것이 아니라, 날을 가는 준비 과정을 충분히 하고 나무를 베는 것이다.

그리고 그 준비에는 행복이라는 방향성을 먼저 세우는 일이 포함된다. 많은 사람이 불행을 향해 달리면서도 자각하지 못한 채 ‘열심히만’ 살아간다. 쉽게 말해, 마음공부란 ‘어떻게 살아야 행복할지’를 먼저 묻는 공부다.



이미지
사공정규 동국의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전문가 상담이나 검증된 심리검사를 병행하면 자기 성찰은 더 안전하고 깊어진다. MBTI는 입구일 뿐, 결코 종착지는 아니다.

결국 MBTI는 답안지가 아니라, 우리의 삶을 성찰하게 하는 작은 질문지다.


(*이 칼럼은 사공정규 동국의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의 기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