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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치매·신부전·심부전 환자도 호스피스·완화의료 대상에 포함시키는 법안이 국회서 발의됐다. 해당 질환 환자들의 고통을 줄이고 가족 돌봄 부담도 완화하려는 취지다. 그러나 비암성 말기 환자의 호스피스 이용률이 1%도 되지 않는 상태에서 질환만 추가하는 건 별 의미가 없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기존 5개 질환에 치매·신부전·심부전 추가
최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소병훈 의원은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호스피스·완화의료 적용 질환에 치매, 신부전, 심부전을 추가한다는 게 골자다. 현행법은 적용 질환을 암, 후천성면역결핍증(AIDS), 만성폐쇄성호흡기질환, 만성간경화, 만성호흡부전 등 5개로 정하고 있다. 원래는 암에만 적용됐지만 지난 2017년 4개의 비암성 질환이 추가됐다.

치매, 신부전, 심부전 환자와 보호자들도 말기 단계에서 보다 존엄한 돌봄을 받을 수 있게 하는 것이 법안의 취지다. 호스피스·완화의료 적용 대상을 암 이외 만성질환까지 확대하는 건 국제적 추세이기도 하다. 실제 미국, 영국도 심부전 환자를 호스피스 적용 대상에 포함시키고 있으며 대만은 치매까지 호스피스 적용 질환으로 본다.

◇비암성 환자 호스피스 이용률 1%도 안 되는데…
그러나 국내 현실은 법안 취지와 거리가 멀다. 비암성 질환에 대한 호스피스·완화의료 이용률이 극히 낮은 상태이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 자료를 보면 2018년, 비암성 질환으로 사망한 7638명 중 호스피스 서비스를 이용한 사람은 단 29명(0.38%)에 불과했다. 그 이후 2022년에는 1만3241명 중 68명, 2023년 1만4150명 중 72명만 이용해 1%를 넘기지 못하고 있다.

국내 호스피스·완화의료 체계가 암 환자 중심으로 설계돼 있어 비암 환자에게 적용하는 데 어려움이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대병원 완화의료·임상윤리센터 유신혜 교수는 “호스피스 의뢰 체계와 의료진의 인식, 서비스 구조가 모두 암 환자에 맞춰져 있다 보니 비암 환자들은 제도 안으로 들어오기 힘든 구조”라며 “호스피스 확대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비암 환자에 대한 호스피스 활성화 전략이 없는 상태에서 대상 질환만 늘리는 건 별 의미가 없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치매·심부전·신부전은 암과 질환의 경과가 다르다. 암은 호스피스 전환 시점이 비교적 명확하다. 적극적인 항암 치료에도 불구하고 암이 계속 진행하고 악화돼 회생 가능성이 없을 때 말기로 진단한다. 실제 말기암 환자의 사망 시점은 의료진의 예측과 맞아떨어지는 경향이 있다. 반면, 비암 환자군은 질병의 진행 과정이 다양하다. 예컨대 심부전은 증상이 악화와 완화가 반복되는 특성을 가지고 있어 말기 시점을 판단하는 게 어렵다. 치매는 평균 투병 기간이 10년 이상이다.


비암 환자군의 호스피스 이용률을 높이려면 소화기내과, 호흡기내과 등 담당 의료진들이 ‘언제, 어떻게 케어 목표를 전환할지’ 환자들에게 명확히 안내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선 호스피스 의료진과 협력해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마련해야 한다. 호스피스 기관과 간호 인력 등 인프라도 확충해야 한다. 그런데 국내는 전부 부족한 실정이다.

가톨릭대 인천성모병원 김대균 권역호스피스센터장은 “지난 2017년, 만성폐질환·간경화·AIDS를 호스피스 대상으로 추가했을 때도 해당 질환 의료진이나 호스피스 종사자와 논의조차 없었다”라며 “그 결과, 8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간경화 말기 환자의 담당 의사는 호스피스를 언제 권장해야 할지 모르고, 호스피스가 환자에게 어떤 도움을 주는지 구체적으로 알지 못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비암성 질환 말기 환자를 돌본 경험이 부족하고, 이를 위한 교육은 연 1~2회 학회 행사에서 짧은 강의가 전부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일차의료기관·지역사회가 돌봄 담당해야” 
비암 환자 말기 돌봄은 암과 달라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실제 세계보건기구(WHO)는 비암성 말기 환자의 대부분은 굳이 전문 호스피스 팀이 아니라, 기본적인 완화의료 교육을 받은 일차의료인력의 방문 진료 등으로도 충분히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설명한다. 서서히 악화와 호전을 반복하는 장기부전 환자나 치매 환자들은 의료와 요양의 통합, 그리고 지역사회의 관심과 참여가 존엄한 말기를 실현하는 데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돌봄 체계가 종합병원 중심이 아니라 지역사회로 옮겨가는 것이 핵심이다. 김 센터장은 “내년부터 시행되는 돌봄통합지원법은 이런 필요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는 기회”라며 “특히 앞으로 수와 역할이 확대될 재택의료센터가 지역사회를 기반으로 한 생애말기 돌봄의 중심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유신혜 교수는 “지역사회 돌봄은 주로 노인 정책과 관련된 쪽에서 추진이 되고 있는데 비암성 질환은 젊은 말기 환자들도 있다”라며 “이들 모두에게 병원 중심의 가정형 호스피스를 제공한다고 하면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에 재택의료 등 지역의 돌봄 체계와 연계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호스피스·완화의료
의사, 간호사, 사회복지사 등으로 이뤄진 전문팀이 통증 등 환자의 힘든 증상을 적극적으로 조절하고 환자와 가족의 심리적, 사회적, 영적 고통을 경감시켜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는 의료 서비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