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대 초반의 직장인 A씨는 아직 결혼과 임신 계획이 없다. 자신이 자녀를 원하긴 하는지도 확신이 없지만, 나중에 아이를 가지고 싶어졌을 때 나이 때문에 임신이 어려운 것은 어쩐지 두렵다. 그런 와중 A씨는 ‘난임 가능성과 난소 건강 상태’를 알려준다는 자가 검진 키트 광고를 소셜미디어에서 봤다.
해당 키트는 AMH(항뮬러관호르몬) 수치 검사 키트로, “난소 예비력을 포함해 난임, 다낭성난소증후군, 조기난소부전(조기폐경)의 가능성을 파악하게 해 준다”고 홍보하고 있었다. 체했을 때 손을 따듯, 미량의 혈액을 손가락 끝에서 채혈한 다음 회송 박스에 아이스팩과 넣어 보내면, 협력 병원에서 분석해 어플리케이션으로 검사 결과를 알려준다고 했다. 소량의 혈액으로도 AMH 검사가 가능하다는 논문이 있는데다가, 배송 중 검체가 손상되면 무료 재검사를 해 준다는 말에 A씨는 자신도 모르게 구매 버튼을 눌렀다. 약 6만원에 달하는 이 검사, 받으면 정말 산부인과에 가 보지 않고도 가임력 수준이나 난소 건강을 파악할 수 있을까.
◇다낭성난소증후군·폐경 예측에는 쓸 수 있어
여성은 몸에 여러 개의 난포(난자가 되기 전의 세포)를 갖고 태어난다. 이중 일부가 난소 안에서 난자로 성숙한 다음, 난소 밖으로 배출돼 나팔관으로 이동한다. 이 과정이 배란이다. 난자로 배란되기 이전 단계의 성숙 난포를 동난포(Antral follicle)라 하는데, AMH(항뮬러관호르몬)은 이 동난포에서 생성된다. 이에 AMH(항뮬러관호르몬) 수치는 난자에 동난포가 많을수록 높게 나오는 경향이 있다. 서울대병원 산부인과 구승엽 교수는 “AMH는 난소 안에서 자라고 있는 난포 수와 비례 관계에 있다”며 “난자를 제공할 수 있는 기능인 ‘난소예비능(난소예비력)’이 어느 정도인지 알려줄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점에서 AMH 검사는 다낭성난소증후군 등 여성 질환이나 폐경 예측에 쓰일 수 있다. 정상적 난소에서는 여러 개의 난포가 성장하다가 그중 하나가 난자로 배란된다. 그러나 다낭성난소증후군 환자의 난소에서는 여러 개의 난포가 성장하지만, 배란이 가능할 만큼 충분히 자라지 못한다. 애매하게 성장한 난포들이 난소 안에 다량 있어 AMH 호르몬 수치가 높게 나올 수 있다. 반대로 폐경이라 난소가 노화해 성숙 중인 난포 수가 줄어들 경우, AMH 호르몬 수치가 낮게 나올 수 있다.
◇일반 여성 가임력, 임신 확률 평가는 “글쎄”
다낭성난소증후군과 폐경 예측에 쓸 만한 지표는 맞으나 이것으로 가임력을 평가하기는 어렵다. 난소예비능이 뛰어나대서 꼭 임신에 성공하는 건 아니어서다. 구승엽 교수는 “AMH 수치가 낮아도(성장 중인 난포 수가 적어도) 자연 임신이 되는 사례가 있고, AMH 수치가 높아도(성장 중인 난포 수가 많아도) 다낭성난소증후군 등으로 배란이 잘 되지 않아 자연 임신이 어려운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또한, 임신 성공에는 난포 수보다 난자의 품질이 중요한데, AMH 수치는 난자의 품질에 관련된 지표가 아니다. 에비뉴여성의원 조병구 원장(산부인과 전문의)은 “AMH 검사는 난소의 난포 기능을 측정하는 것이지, 난자의 질을 평가하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난자의 질을 평가하는 데에는 오히려 ‘나이’가 더 유의미하다. 미국 브라운대 워렌 알퍼트 의과대학 산부인과 연구팀은 올해 초 학술지 ‘산부인과 서베이(Obstetrical&Gynecological Survey)’를 통해 “임신 가능성과 생식 능력을 예측하는 더 강력한 지표는 나이”라며 “AMH 검사 등으로 난소 속 난포 양을 가늠하는 것이 불임 치료나 보조 생식술을 시행할 때 유용하지만, 이를 임신 가능성이나 생식 능력을 알아볼 목적으로 쓰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밝히기도 했다.
시판되는 검사 키트는 연령과 AMH 검사 결과에 기반해 ▲임신을 월 1회 이상 시도했을 때의 월평균 임신 확률 ▲1년 동안 12회 이상 시도했을 때 연평균 임신 확률을 퍼센트(%)로 수치화해 보여주지만, 과도한 신뢰는 금물이다. 구승엽 교수는 “AMH는 자연 임신, 특히 12개월 내 임신·출산에 대한 예측력이 미약하거나 임상적으로 유의하지 않다고 결론지은 연구 결과가 다수”라며 “미국 산부인과학회(ACOG)는 불임이 아닌 여성에게 AMH를 써서 향후 임신력을 상담하지 말 것을 권고한다”고 말했다.
브라운대 연구팀의 말처럼 AMH 검사는 이미 난임을 진단받은 사람이 임신 전략을 세울 때 쓸모가 있다. 체외 수정에 쓸 난자를 얻으려, 난소를 일부러 자극해 난자가 과배란되도록 유도할 때다. 이때 AMH 수치를 검사하면 난자가 과도하게 자극됐는지 의도한 것보다 덜 자극됐는지 가늠하고, 난자가 어느 정도 얻어질지를 대략적으로나마 예측할 수 있다.
◇AMH vs 초음파 중 하나만? “초음파가 우선”
난소 건강이나 가임력이 걱정돼 이미 AMH 검사를 집에서 했더라도 한 번은 산부인과에 가 보는 게 좋다. 다양한 여성 질환과 난임 원인 중 AMH 수치를 통해 간접적으로 유추할 수 있는 것은 일부다. ▲나팔관 관련 요인(골반염, 수술, 자궁 외 임신 등) ▲자궁 안의 혹(폴립, 근종) ▲배란 장애(호르몬 문제, 갑상선 질환 등) ▲중등도 이상의 자궁내막증 또는 골반 유착 등은 AMH 검사로 확인할 수 없다. 남성 쪽 요인 때문에 난임인 경우도 마찬가지다. 구승엽 교수는 “AMH 수치가 정상이어도 임신이 안 되거나 진료가 필요한 경우가 있다”며 “특히 35세 이상이면서 6개월 이상 임신을 시도했는데도 소식이 없거나, 생리가 불규칙하거나, 심한 생리통·골반통이 있는 경우에는 의사 상담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가임력 유지를 위한 정부의 ‘임신 사전 건강 관리 지원 사업’은 AMH 검사와 자궁·난소 등 부인과 초음파 검사를 지원한다. 가능하다면 두 검사를 같이 받는 게 좋지만, 하나만 받는다면 초음파를 우선으로 하는 게 합리적이다. 구승엽 교수는 “초음파를 이용하면 자궁내막종 같은 문제를 자궁과 난소를 직접 보면서 발견할 수 있어 임신 가능성에 직결되는 정보를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조병구 원장은 “초음파와 AMH 검사 중 하나만 받는다면 초음파로 난소 크기와 자궁 부속기 상태를 보는 것이 더 도움된다”며 “AMH 검사는 30대 이상에서나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해당 키트는 AMH(항뮬러관호르몬) 수치 검사 키트로, “난소 예비력을 포함해 난임, 다낭성난소증후군, 조기난소부전(조기폐경)의 가능성을 파악하게 해 준다”고 홍보하고 있었다. 체했을 때 손을 따듯, 미량의 혈액을 손가락 끝에서 채혈한 다음 회송 박스에 아이스팩과 넣어 보내면, 협력 병원에서 분석해 어플리케이션으로 검사 결과를 알려준다고 했다. 소량의 혈액으로도 AMH 검사가 가능하다는 논문이 있는데다가, 배송 중 검체가 손상되면 무료 재검사를 해 준다는 말에 A씨는 자신도 모르게 구매 버튼을 눌렀다. 약 6만원에 달하는 이 검사, 받으면 정말 산부인과에 가 보지 않고도 가임력 수준이나 난소 건강을 파악할 수 있을까.
◇다낭성난소증후군·폐경 예측에는 쓸 수 있어
여성은 몸에 여러 개의 난포(난자가 되기 전의 세포)를 갖고 태어난다. 이중 일부가 난소 안에서 난자로 성숙한 다음, 난소 밖으로 배출돼 나팔관으로 이동한다. 이 과정이 배란이다. 난자로 배란되기 이전 단계의 성숙 난포를 동난포(Antral follicle)라 하는데, AMH(항뮬러관호르몬)은 이 동난포에서 생성된다. 이에 AMH(항뮬러관호르몬) 수치는 난자에 동난포가 많을수록 높게 나오는 경향이 있다. 서울대병원 산부인과 구승엽 교수는 “AMH는 난소 안에서 자라고 있는 난포 수와 비례 관계에 있다”며 “난자를 제공할 수 있는 기능인 ‘난소예비능(난소예비력)’이 어느 정도인지 알려줄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점에서 AMH 검사는 다낭성난소증후군 등 여성 질환이나 폐경 예측에 쓰일 수 있다. 정상적 난소에서는 여러 개의 난포가 성장하다가 그중 하나가 난자로 배란된다. 그러나 다낭성난소증후군 환자의 난소에서는 여러 개의 난포가 성장하지만, 배란이 가능할 만큼 충분히 자라지 못한다. 애매하게 성장한 난포들이 난소 안에 다량 있어 AMH 호르몬 수치가 높게 나올 수 있다. 반대로 폐경이라 난소가 노화해 성숙 중인 난포 수가 줄어들 경우, AMH 호르몬 수치가 낮게 나올 수 있다.
◇일반 여성 가임력, 임신 확률 평가는 “글쎄”
다낭성난소증후군과 폐경 예측에 쓸 만한 지표는 맞으나 이것으로 가임력을 평가하기는 어렵다. 난소예비능이 뛰어나대서 꼭 임신에 성공하는 건 아니어서다. 구승엽 교수는 “AMH 수치가 낮아도(성장 중인 난포 수가 적어도) 자연 임신이 되는 사례가 있고, AMH 수치가 높아도(성장 중인 난포 수가 많아도) 다낭성난소증후군 등으로 배란이 잘 되지 않아 자연 임신이 어려운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또한, 임신 성공에는 난포 수보다 난자의 품질이 중요한데, AMH 수치는 난자의 품질에 관련된 지표가 아니다. 에비뉴여성의원 조병구 원장(산부인과 전문의)은 “AMH 검사는 난소의 난포 기능을 측정하는 것이지, 난자의 질을 평가하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난자의 질을 평가하는 데에는 오히려 ‘나이’가 더 유의미하다. 미국 브라운대 워렌 알퍼트 의과대학 산부인과 연구팀은 올해 초 학술지 ‘산부인과 서베이(Obstetrical&Gynecological Survey)’를 통해 “임신 가능성과 생식 능력을 예측하는 더 강력한 지표는 나이”라며 “AMH 검사 등으로 난소 속 난포 양을 가늠하는 것이 불임 치료나 보조 생식술을 시행할 때 유용하지만, 이를 임신 가능성이나 생식 능력을 알아볼 목적으로 쓰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밝히기도 했다.
시판되는 검사 키트는 연령과 AMH 검사 결과에 기반해 ▲임신을 월 1회 이상 시도했을 때의 월평균 임신 확률 ▲1년 동안 12회 이상 시도했을 때 연평균 임신 확률을 퍼센트(%)로 수치화해 보여주지만, 과도한 신뢰는 금물이다. 구승엽 교수는 “AMH는 자연 임신, 특히 12개월 내 임신·출산에 대한 예측력이 미약하거나 임상적으로 유의하지 않다고 결론지은 연구 결과가 다수”라며 “미국 산부인과학회(ACOG)는 불임이 아닌 여성에게 AMH를 써서 향후 임신력을 상담하지 말 것을 권고한다”고 말했다.
브라운대 연구팀의 말처럼 AMH 검사는 이미 난임을 진단받은 사람이 임신 전략을 세울 때 쓸모가 있다. 체외 수정에 쓸 난자를 얻으려, 난소를 일부러 자극해 난자가 과배란되도록 유도할 때다. 이때 AMH 수치를 검사하면 난자가 과도하게 자극됐는지 의도한 것보다 덜 자극됐는지 가늠하고, 난자가 어느 정도 얻어질지를 대략적으로나마 예측할 수 있다.
◇AMH vs 초음파 중 하나만? “초음파가 우선”
난소 건강이나 가임력이 걱정돼 이미 AMH 검사를 집에서 했더라도 한 번은 산부인과에 가 보는 게 좋다. 다양한 여성 질환과 난임 원인 중 AMH 수치를 통해 간접적으로 유추할 수 있는 것은 일부다. ▲나팔관 관련 요인(골반염, 수술, 자궁 외 임신 등) ▲자궁 안의 혹(폴립, 근종) ▲배란 장애(호르몬 문제, 갑상선 질환 등) ▲중등도 이상의 자궁내막증 또는 골반 유착 등은 AMH 검사로 확인할 수 없다. 남성 쪽 요인 때문에 난임인 경우도 마찬가지다. 구승엽 교수는 “AMH 수치가 정상이어도 임신이 안 되거나 진료가 필요한 경우가 있다”며 “특히 35세 이상이면서 6개월 이상 임신을 시도했는데도 소식이 없거나, 생리가 불규칙하거나, 심한 생리통·골반통이 있는 경우에는 의사 상담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가임력 유지를 위한 정부의 ‘임신 사전 건강 관리 지원 사업’은 AMH 검사와 자궁·난소 등 부인과 초음파 검사를 지원한다. 가능하다면 두 검사를 같이 받는 게 좋지만, 하나만 받는다면 초음파를 우선으로 하는 게 합리적이다. 구승엽 교수는 “초음파를 이용하면 자궁내막종 같은 문제를 자궁과 난소를 직접 보면서 발견할 수 있어 임신 가능성에 직결되는 정보를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조병구 원장은 “초음파와 AMH 검사 중 하나만 받는다면 초음파로 난소 크기와 자궁 부속기 상태를 보는 것이 더 도움된다”며 “AMH 검사는 30대 이상에서나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