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인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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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세 국내 가정의학 창시자 윤방부 박사​(왼쪽)와 92세 정신의학계 거장 이시형 박사(오른쪽)./사진=출판사 깸 제공
지금의 중년층인 40~60대는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100세 시대를 사는 세대, 이른바 ‘호모헌드레드(Homo-hundred)’다. 60세 은퇴 이후에도 최소 40년은 더 살아가야 하기에 인생의 2막을 어떻게 설계해야 하는지가 화두에 올랐다. 92세 정신의학계 거장 이시형 박사와 83세 국내 가정의학 창시자 윤방부 박사는 약과 병원에 의존하지 않은 채 현역 의사이자 지식인으로서 활발히 활동하는 대표적인 인물이다. 이들은 지난달 25일《평생 현역으로 건강하게 사는 법》을 출간하며 100세 시대를 준비하는 인생 후배들에게 경험과 조언을 건넸다. 평생 현역으로 살고 있는 두 원로 박사에게 그 비결을 물었다.

- 이 책을 쓰게 된 계기는?
(이시형 박사) “불과 수십 년 전만 해도 인생은 60세쯤에 마무리되는 것으로 여겨졌다. 그런데, 오늘날 세상은 100세를 바라본다. 100세 시대는 전혀 다른 삶의 자세를 요구한다. 먼저 그 길을 걸어온 사람으로서 호모헌드레드들은 중년 이후 인생의 2막을 어떻게 설계하고 어떻게 건강을 지켜야 하는지 경험을 나누고자 책을 썼다.”

(윤방부 박사) “우리 세대, 80~90대는 이렇게 오래 살 줄 모르고 느닷없이 100세 시대를 맞이했다. 그러니 준비가 턱없이 부족해 100세 시대가 축복이 아니라 오히려 불행으로 느껴지는 경우가 많다. 지금의 호모헌드레드 세대가 우리 세대가 겪었던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경험과 지혜를 공유하고 싶었다.”

- 책에서 ‘순노화’라는 개념을 썼다. 요즘 유행하는 ‘저속노화(천천히 나이 듦)’와 어떻게 다른가?
(이시형 박사) “노년의학 분야에서는 ‘저속노화’라는 표현을 쓴다. 노화를 최대한 늦추고 속도를 완만하게 하자는 뜻이다. 그런데, 책에서 조금 더 철학적인 의미를 담고 싶었다. ‘순노화’는 말 그대로 ‘순한 노화’, 즉 자연스러운 노화다. 나이가 들면 누구나 늙는다. 이를 억지로 막으려 하거나 두려워하기보다는 몸과 마음을 잘 관리하면서 순하게 받아들이는 노화를 강조한다.”


- 책에서 세로토닌을 많이 강조했다. 오늘날 자극적인 콘텐츠를 소비하면서 ‘도파민’에 대한 언급도 많은데, 어떤 차이가 있나?
(이시형 박사) “도파민은 ‘쾌락의 호르몬’이다. 새로운 자극, 강한 자극을 받을 때 순간적으로 뿜어져 나온다. 문제는 금세 사라지고, 더 큰 자극을 찾아야 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도파민에 의존하면 점점 강한 자극을 갈망하고, 중독으로 이어지기 쉽다. 뇌가 지치고 피로해진다. 반면, 세로토닌은 ‘행복호르몬’이다. 도파민처럼 강렬하지는 않지만, 잔잔하고 오래가는 만족과 안정감을 준다. 햇볕을 쬐고 산책하거나, 좋은 사람과 대화를 나누고, 맛있는 음식을 천천히 즐길 때 세로토닌이 분비된다. 세로토닌은 중독되지 않고, 오히려 마음을 차분하게 해 뇌를 회복하게 한다. 도파민을 좇지 말고, 세로토닌을 키워야 한다. 이것이 건강하게 오래 사는 길이다.”

- 윤방부 박사의 경우, 술·담배도 하지 않고 운동도 꾸준히 하는데 협심증이 왔다고 했다. 책에 따르면 원인이 스트레스다. 현대인에게 스트레스를 뗄 수 없는 존재다. 건강하게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방법은 뭘까?
(윤방부 박사) “스트레스를 해소하지 못하면 혈압 상승, 수면 장애, 면역력 저하 같은 문제로 이어진다. 개인적으로 운동하면서 스트레스를 푼다. 40~50분 정도 뛰면서 속에 쌓였던 것을 다 털어내면 속이 시원하다. 억지로 참지 않고, 내 방식대로 스트레스를 내보내는 거다.

스트레스는 억지로 없앨 수 있는 게 아니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흘려보내고 내 방식대로 소화해야 한다. 힘들 때마다 ‘이 정도 스트레스는 살아있으니까 자연스럽게 오는 거다’ ‘세상 모든 일은 지나가기 마련이다’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훨씬 가벼워진다.”

- 책에서 운동 습관에 대해 많이 강조했다. 평소 어떤 운동을 하고, 어떤 운동을 추천하나?
(윤방부 박사) “하루 두세 시간 러닝머신에서 5~6km 걷고 뛰면서 유산소 운동을 하고 아령, 체스트프레스 머신, 숄더프레스 머신 등 다양한 기구로 근력 운동을 한다. 어떤 운동이 좋은지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는데, 사실 운동 종류보다 꾸준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 운동을 심하게 한다고 무조건 좋은 것도 아니다. 하버드대 연구에 따르면, 운동을 안 하는 그룹과 하는 그룹 사이에는 건강 상태와 수명 차이가 있었지만, 운동을 조금 하는 그룹과 많이 하는 그룹 사이에는 차이가 없었다. 자전거를 타든, 걷든, 헬스장을 가든 중요한 건 꾸준히 즐겁게 하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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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형 박사와 윤방부 박사./사진=출판사 깸 제공
- 건강하게 나이 들기 위해 꼭 추천하고 싶은 생활습관은?
(윤방부 박사) “자연스러운 생활습관이 중요하다. 먹을 때 먹고, 잘 때 자고, 놀 때 놀아야 한다. 식사는 음식 종류를 따지는 것보다 골고루 먹느냐가 핵심이다. 탄수화물 5, 지방 3, 단백질 2 비율로 먹으라고 하는데, 그게 사실 쉽지는 않다. 고기와 밥, 채소를 골고루 적당히 먹으면 된다. 중년 이후에는 혈압, 콜레스테롤, 중성지방, 당뇨 같은 수치들을 조절해야 한다. 가장 좋은 건 평소에 생활습관을 잘 관리하는 거다. 건강검진도 습관처럼 해야 한다. 고가의 검진보다 기본적인 검진을 정기적으로 받는 게 진짜 건강을 지키는 방법이다. 운동도 습관적으로 해야 하는데 매일 조금만 꾸준히 몸을 움직여도 혈관 건강에 큰 도움이 된다.”

- 요즘 현대인이 꼭 고쳐야 할 생활습관이 있다면?
(윤방부 박사) “우리나라 사람들은 특효약과 정답을 원한다. 건강은 단편적인 지식이나 한두 가지 행동으로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특별한 음식이나 약보다는, 평소 생활습관을 점검하고 기본을 잘 지키는 게 훨씬 중요하다. 유전은 바꿀 수 없지만, 생활습관은 스스로 조율할 수 있다. 이게 바로 ‘자기주도적’ 건강관리이면서 진정으로 건강한 삶을 사는 법이다.”


- 오늘날 디지털 시대에서는 스마트폰 등으로 모든 일상을 혼자 보내는 경향이 크다. 과거 세대보다 고독과 외로움 문제가 더 심해질 수 있다. 이에 대한 조언은?
(이시형 박사) “외로움은 담배보다 위험하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중년 이후에는 인간관계가 곧 건강이다. 혼자 사는 시대라고 해도, 결국 사람은 함께 살아갈 때 가장 건강하게 늙는다. 나이 들수록 함께 있으면 편안한 사람 한 명이 약보다 낫다. 노후의 정서 안정이나 인지 기능, 면역력까지도 인간관계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오래된 친구 한 명만 있어도 인생이 훨씬 덜 외롭다. 같이 웃고, 소소한 일상을 공유할 수 있는 존재가 있다는 것 자체가 정신 건강에 큰 힘이 된다.”

- 지금의 중년이 아닌, 그 다음 호모헌드레드 세대가 될 2030에게 해줄 수 있는 조언이 있나?
(이시형 박사) “지금 30대라면 앞으로 70년 이상을 더 살아야 한다. 그 긴 시간을 버티고 누리려면 무엇보다 건강이라는 자산이 중요하다. 건강은 나중에 챙기는 것이 아니라 지금부터 쌓아둬야 한다. 기본적으로 운동, 식습관, 수면을 소홀히 하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삶의 속도를 조절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우리 사회는 ‘빨리, 많이, 크게’를 강조해왔다. 하지만 호모헌드레드 시대는 오래 달려야 하는 마라톤이다. 순간의 성과보다 꾸준함과 균형이 더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관계와 마음의 힘을 길러야 한다. 인생 2막에 들어선 선배 세대들이 가장 크게 느끼는 것은 결국 사랑의 소중함이다. 젊은 시절부터 좋은 관계를 맺고, 더불어 살아가는 힘을 기르는 것이야말로 100세를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가장 확실한 준비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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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현역으로 건강하게 사는 법》
-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이시형 박사) “건강한 노화란 결국 몸과 마음의 균형을 잘 유지하는 것이다. 단순히 병이 없다는 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안정되고 삶의 태도와 목적이 분명한 상태를 말한다. ‘나는 늙었다’고 생각하는 순간부터 쇠퇴가 시작된다. 나이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면역력과 신체 기능을 저하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노화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마음이야말로 중년 이후의 가장 강력한 건강 비결이다.”


(윤방부 박사) “‘그럭저럭’ 철학을 제안하고 싶다. 그럭저럭은 대충 사는 삶을 말하는 건 아니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스스로 등을 토닥일 줄 아는 지혜다. 그럭저럭 건강을 챙기고 그럭저럭 사람을 만나며 그럭저럭 나이 들어가는 삶에 진짜 행복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