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립: 희귀병을 앓는 사람들] <3> 중증근무력증 환자 박지민(가명·42세) 씨

<편집자 주>
희귀질환을 앓는 환자와 그 가족들은 삶을 ‘외딴 섬’에 비유하곤 합니다. 분명 같은 세상에 살고 있지만, 자신들만 외따로이 떨어져 고립된듯하다는 의미입니다. 실제 그들의 삶은 절해고도(絕海孤島)에 갇힌 것처럼 외롭고 힘겹습니다. 누구보다 관심과 도움이 절실하지만, 실상은 대부분의 문제를 환자와 가족들이 온전히 짊어지고 있습니다. 간혹 단지 소수라는 이유로 다수를 위한 희생의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고립]이 그들의 아프고 쓸쓸한 투병기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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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민(가명·42세) 씨는 중증근무력증 진단 전까지 원인을 알 수 없는 눈꺼풀 처짐 증상을 겪어왔다. 실제 눈꺼풀 처짐과 복시(사물이 겹쳐 보이는 증상)는 근육 약화로 인해 나타나는 중증근무력증의 대표적인 증상들이다. / 박지민 씨 제공
“가족조차 이해를 못해요.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니까. 그래서 더 외롭고 지칩니다. 중증근무력증은 그런 병이에요.”

걷다가 갑자기 온몸에 힘이 빠져 주저앉는다. 수시로 눈꺼풀이 내려앉고 손에 든 물건을 놓치는가 하면, 호흡근이 약해져 이따금 호흡곤란이 찾아오기도 한다. 그런데도 주변 사람, 심지어 가장 가깝다고 여기는 가족조차 아프다는 사실을 알아주지 않는다. ‘겉모습만 보면 티가 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중증근무력증 환자 박지민(가명·42세) 씨가 자신의 병을 ‘겉으로 보이지 않는 병’이라고 표현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아픔을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는 건 겪어본 사람만 알 수 있는 고통이고 상처다.

◇“눈이 짝짝이라고만 생각했지, 희귀병일 줄은…”
20여년 전 결혼사진 속 지민 씨는 왼쪽 눈과 오른쪽 눈의 크기가 다르다. 당시엔 그저 ‘눈이 짝짝이이겠거니’ 생각했다고 한다.

그러다 안검하수(윗눈꺼풀이 아래로 처진 상태)와 복시(사물이 겹쳐 보이는 증상) 증상이 심해져 병원을 찾았다. 처음 내려진 진단은 ‘시신경염’. 치료를 받으면 증상이 호전됐지만, 잠시뿐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안검하수·복시 증상은 물론, 숨을 쉬고 음식을 삼키는 데도 어려움이 생겼다. 손에 쥔 물건을 수시로 떨어뜨리는가 하면, 이유 없이 넘어지는 일도 잦았다.


신체적 무력감은 이내 심리적 무기력감이 돼 그를 옥좼다. 지민 씨는 “몸에 있는 모든 힘이 빠져 일상이 거의 불가능했다”며 “몸이 마음처럼 따라주지 않는다는 게 무력하게 느껴졌다”고 말했다.

원인 모를 이상 증세에 시달리던 어느 날, 지민 씨는 기존에 당뇨병 진료를 위해 다니던 내과 의료진으로부터 신경과 진료를 권유받았다. 평소 그의 증상을 유심히 듣던 의사가 신경과 검사를 권한 것이다. 이후 찾아간 지역 대학병원에서 처음으로 ‘중증근무력증’ 의심 소견을 받았다고 한다. 수년 동안 자신을 괴롭혀온 증상들이 왜 나타났는지 비로소 알게 된 순간이었다. 지민 씨는 “처음엔 당황스러웠다. 인터넷에 찾아보니 호흡곤란 때문에 죽는다는 말도 있더라”며 “그래서 ‘내가 죽는 건가’하는 생각도 들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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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박지민 씨가 복용 중인 약들. 중증근무력증을 치료하기 위한 증상완화제, 면역억제제 외에도 우울증치료제, 갑상선저하증 치료제, 당뇨병 치료제 등을 함께 먹고 있다. / 박지민 씨 제공
◇의심 1년 만에 최종 진단 “스테로이드제 안 쓰고 싶었지만…”
처음 찾아간 신경과에서 중증근무력증을 의심했으나 최종 확진을 받은 것은 아니었다. 증상은 분명 중증근무력증이 맞았지만, 검사에서 ‘음성’이 나왔기 때문이다(중증근무력증 환자 중 일부는 검사에서 음성 판정이 나오기도 한다). 이로 인해 전문적인 치료 또한 받기 어려웠고, 국내에서 진행하는 임상시험에도 참여할 수 없었다.

얼마 후 지민 씨는 같은 질환을 앓던 지인에게 병원과 의료진을 소개 받았고, 그곳에서 최종적으로 중증근무력증 진단을 받게 됐다. 처음 신경과 검사 권유를 받은 지 약 1년만이었다.

중증근무력증 초기에는 증상완화제를 쓰며 상태를 지켜본다. 곧바로 스테로이드제를 사용하기엔 환자가 감당해야 하는 약물 부작용이 심해서다. 그래도 증상이 조절되지 않을 땐 결국 스테로이드제를 사용해야 한다.

지민 씨도 처음엔 스테로이드제 사용을 최대한 피했다. 당뇨병이 있는 그는 과거 다른 질환으로 인해 스테로이드제를 복용했다가 당 수치가 400mg/dL까지 치솟은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1년을 증상완화제로 버텼지만, 악화되는 증상을 막아내기엔 역부족이었다. 지민 씨는 “힘 빠짐이 너무 심해서 스테로이드 치료를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부작용으로 체중 50kg 증가… 우울증까지
스테로이드제를 쓰기 시작하자 예상대로 부작용이 나타났다. 몸이 붓고 수면장애가 생겼으며, 체중도 50kg 가까이 증가했다.


무엇보다 당뇨병이 가장 큰 문제였다. 스테로이드제를 복용한 뒤로 혈당 조절이 더 어려워져 인슐린 주사 치료를 병행했고, 기존에 먹던 당뇨약도 복용량을 늘려야 했다. 그런 와중에 중증근무력증과는 별개로 갑상선암이 생겨 수술까지 받았다.

강인한 성격을 가진 그였지만, 병 앞에선 속수무책이었다. 지민 씨는 “이런 문제들을 겪다보면 신체적·정신적으로 지치는 면이 있다”며 “갑상선암 수술 후에는 우울증이 생겨 하루종일 울기만 하며 멍하게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고 말했다.

우울감과 무기력의 늪에서 그를 건져 올린 건 그와 같은 질환을 앓는 사람들이었다. 지민 씨는 “중증근무력증을 앓고 있는 지인이 ‘너 이러다 정말 죽을 것 같다’며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를 강하게 권유했고, 그 계기로 치료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다행히 이후론 몸도 마음도 많이 나아졌다. 현재도 여전히 스테로이드제를 복용 중이긴 하나 증상이 호전되면서 약 용량을 줄였고,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를 받으며 우울 증세도 완화됐다. 꾸준히 운동한 덕에 체중 또한 스테로이드제 복용 전 수준으로 돌아왔다. 그는 “처음엔 매일 여덟 알 정도 스테로이드제를 먹다가, 지금은 증상이 완화돼 한두 알씩 먹는다”며 “증상완화제와 면역억제제도 함께 복용하며 관리하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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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로이드제 부작용으로 인해 체중이 50kg 가까이 증가했을 당시 모습. 현재는 운동을 통해 체중을 감량한 상태다. / 박지민 씨 제공
◇“겉으로 보이지 않는 병… 관심·지원 확대되길”
자가면역질환인 중증근무력증은 완치 개념이 없다. 지민 씨 역시 병이 호전됐다곤 해도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괜찮다가도 불쑥불쑥 증상이 나타난다. 걷다가 힘이 빠져 주저앉는가 하면, 아무 일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심한 피로감이 급작스럽게 찾아온다. 면역억제제를 복용하다보니 가벼운 감기마저 쉽게 낫지 않고, 다른 약을 복용하는 것도 조심스럽다. 설상가상으로 음성 환자인 그는 산정특례 적용이 되지 않아, 장기간 치료에 따른 경제적 부담 또한 만만치 않다.

그러나 이런 문제들보다 더 그를 힘들게 하는 건 주변에서 자신의 병을 이해해주지 않는 것이다. 지민 씨는 “정말 힘들고 숨이 차는데 사람들은 이해해주질 않더라”며 “길을 걷다가 힘이 없어 주저앉거나 기다려달라고 하면 ‘엄살 피운다’고 이야기하고, 집에서는 ‘힘들어서 잔다’고 하는데 가족조차 이해해주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중증근무력증이 가장 힘든 건 겉으로 잘 보이지 않는 병이라는 점”이라며 “주위 사람들이 병의 어려움을 잘 이해하지 못할 때 더 지치고 외롭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말했다.


끝으로 그는 중증근무력증 환자에 대한 관심과 지원을 당부했다. “중증근무력증은 정말 힘든 질환이다. 모든 사람들이 꼭 좋아질 수 있다고 믿고 끝까지 치료에 잘 임했으면 하고, 이들을 위한 지원과 관심도 확대되기 바란다.”

<의사 인터뷰>
“효과 좋은 신약, 국내서도 초기부터 쓸 수 있어야”

중증근무력증은 19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사망률이 80% 이상이었다. 1990년대 이후 아세틸콜린에스터분해효소 억제제를 비롯한 치료법들이 도입됐고, 이때부터 사망률이 크게 떨어졌다. 다만, 여전히 10~15%에 해당하는 난치 중증근무력증은 치료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최근 FcRn 억제제와 같이 기존 치료제의 한계를 극복한 신약이 나왔지만, 국내에서는 보험급여가 적용되지 않아 제대로 쓰지 못하는 실정이다. 고려대 안암병원 신경과 김병조 교수는 “‘스테로이드로 조절되는데 왜 새로운 치료제가 필요하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환자 중 기존 약제로는 치료가 어려워 신약이 필요한 이들도 존재한다”며 “임상 후 바로 신약을 쓸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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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안암병원 신경과 김병조 교수 / 사진 = 전종보 기자
-중증근무력증은 스테로이드제 사용이 필수인가?
“초기에 가벼운 증상이 있는 정도면 증상을 개선하는 약제를 사용해볼 수 있다. 이후 증상이 조절되면 스테로이드제를 쓰지 않아도 되지만, 일상생활이 불편한 정도로 증상이 심해지면 스테로이드제를 사용해야 한다. 가능하면 소량을 쓰거나 끊어야 하는데, 쉽지 않다. 증상으로 인해 계속 불편함이 심해질 경우 비스테로이드면역억제제를 같이 사용한다.”

-스테로이드제는 부작용이 심한 것으로 아는데?
“스테로이드제를 계속 쓰다보면 얼굴이 붓고, 혈압·혈당이 상승한다. 피부가 손상되고 멍이 생기는가 하면, 팔다리가 가늘어지면서 배가 나오는 쿠싱증후군이 발생할 수도 있다. 문제는 중증근무력증은 자가면역질환 특성상 완치가 없다는 점이다. 스테로이드제를 계속 써야 한다. 치료를 중단하면 계속 눈이 처지고 호흡이 악화되며, 걷는 것도 힘들어진다. 때문에 스테로이드제를 쓰되, 고용량으로 쓰지 않기 위해 여러 약제를 병합해 사용하는 방법을 선택한다.”

-난치중증근무력증은 그마저도 효과가 없는 건가?
“현재로서는 치료 방법이 없다. 호흡이 어려워지는 등 증상이 심해지면 입원해서 면역글로불린 주사 치료나 혈장교환술을 실시하지만, 급한 위기를 넘기기 위해 시행하는 치료이지, 장기적인 치료법은 아니다. 혈장교환술의 경우 항체를 만드는 B세포가 남아있어 시간이 지나면 효과가 떨어지고, 이뮤노글로블린 정맥 주사도 3주 정도 지나면 효과가 없다. 결국 기존 치료제의 용량을 늘리게 된다.”

-신약을 기대해 봐도 될까?
“앞으로 나올 중증근무력증 치료제들은 효과가 좋다. 성공적인 연구결과가 나왔고, 미국에선 이미 출시된 경우도 있다. 국내에서도 에프가티지모드를 포함해 라불리주맙, 질루코플란, 로자놀릭시주맙 총 4개 신약이 허가를 받았다. 다만 아직 급여가 되지 않았다.”


-효과 좋은 신약들을 초기부터 사용해야 하는 이유는?
“중증근무력증은 아세틸콜린 수용체를 망가트리는 항체가 덜 생성되게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항체를 줄이거나 항체를 만드는 B세포를 조절하는 치료가 필요하다. 특히 중증으로 넘어가는 환자를 줄이려면 근육을 공격하는 항체가 더 많아지기 전에 치료를 시작해야 한다. 임상에서도 초기 중증근무력증 환자들을 적극적으로 치료할 경우 증상이 잘 조절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 해외의 경우 학계 권고에 따라 효과 좋은 신약을 초기에 먼저 사용한다.”

-국내 치료 여건 개선을 위해서는?
“우리나라는 보험 급여의 장벽이 높아 증상이 재발하면 그 다음에 단계에 신약을 쓴다. 이 과정에서 환자에게 장애가 남을 수 있다. 장애를 갖는 환자가 늘어나면 결국 사회적 비용도 더 발생한다. 20대에 발병한 환자는 앞으로 60년은 이 병으로 치료를 받아야 할 텐데, 스테로이드제 부작용을 겪지 않으면서 초기부터 효과적인 치료를 받으면 의료비용을 낮출 수 있다. 역학연구에 근거를 두고, 특정 조건의 환자들에게는 초기부터 유효성이 높은 약제를 쓸 수 있어야 한다.”

☞ 중증근무력증
신경과 근육의 연결부위인 신경근육접합부에서 정상적인 체내 단백질을 공격하는 자가항체가 생기면서 발생하는 질환. 신경에서 근육으로 전달되는 신호가 약해져 근육에 힘이 빠지고 쉽게 피로해지는 증상이 나타난다. 근력 약화가 매우 심해지면 호흡마비로 인해 보조적인 인공호흡치료가 필요할 수도 있다. 미국·캐나다·이스라엘 연구에 따르면, 5년 사망률 약 14%, 10년 사망률 약 21%로, 장기적으로 5명 중 1명이 사망에 이르는 높은 사망률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