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토픽]

이미지
‘스타 마취과 의사’로 불린 프레데릭 페시어(53)의 살인 혐의에 대한 재판이​ 열렸다./사진=연합뉴스
환자들을 고의로 약물에 중독시켜 사망에 이르게 한 프랑스 마취과 의사에 대한 재판이 열렸다.

지난 8일(현지시각) AFP통신 등에 따르면 ‘스타 마취과 의사’로 불린 프레데릭 페시어(53)의 살인 혐의에 대한 재판이 이날 프랑스 브장송 법원에서 시작됐다. 페시어는 4~89세 사이 어린이와 성인 환자 30명을 고의로 독살하려 한 혐의로 기소됐으며, 이 중 12명은 사망했다.

페시어의 혐의는 2017년 처음 제기됐다. 당시 그가 일하는 병원에서는 수술 도중 심정지를 겪는 환자가 비정상적으로 많이 발생했다. 수술 중 사망 위험이 낮은 환자들이 잇따라 사망하자, 당국은 그해 수사에 착수했다. 당시 36세의 환자가 척추 수술 도중 심장마비를 일으켰는데, 이후 조사에서 치명적인 양의 칼륨이 발견됐다.

수사관들은 2017년부터 8년간 환자의 예기치 못한 합병증이나 사망을 기록한 ‘중대한 이상 반응’ 보고서 70건을 검토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최연소 피해자는 2016년 편도 수술 중 두 차례 심정지를 겪은 4세 어린이였고, 최고령 피해자는 89세 노인이었다.

사건을 담당한 에티엔 만토 검사는 “페시어는 건강한 환자들을 독살해 갈등에 빚던 동료들을 곤경에 빠뜨리려 했다”며 “심정지가 발생했을 때 가장 먼저 달려온 사람은 늘 페시어였고 그는 항상 해결책을 갖고 있었다”고 말했다. 검찰은 그가 마취제 등을 오염시켜 일부러 응급상황을 만든 뒤 직접 환자를 소생시켰다고 보고 있다.


페시에는 2017년 이후 의료 활동을 중단했다. 2023년 환자를 접촉하지 않는 조건으로 업무 복귀 승인을 받았으나 실제로는 진료하지 않았다. 그는 모든 혐의를 부인하며, 대부분 중독 사건이 동료들의 의료 과실 때문이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보도에 따르면 유죄 판결 시 페시어는 종신형을 받을 수 있다.

검찰 수사 과정에서 거론된 마취제와 칼륨, 과용할 경우 어떤 위험이 있을까?

◇마취제, 과다 투여 시 심정지 위험
검찰이 언급한 마취제는 수술 중 환자의 의식과 통증을 차단하고 근육을 이완하는 필수 약물이다. 투여량이 지나치면 치명적인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어 위험하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호흡 중추 마비’다. 우리 뇌에 위치한 호흡 중추는 호흡을 자동으로 조절하는 역할을 하는데, 마취제가 이 중추의 기능을 억제하면 호흡이 느려지거나 멈추게 된다. 이로 인해 산소 공급이 중단되면 심장 근육의 기능이 저하돼 심장 박동이 불규칙해지거나, 아예 멎는 심정지로 이어질 수 있다. 실제로 나이지리아 포트하코트대 임상과학부와 리버즈주립대 약리·치료학부의 공동연구에 따르면, 전신 마취제가 심근 수축력·혈압·심박수 등에 영향을 미치며, 기저 질환이 있는 환자에게는 심각한 합병증까지 유발할 수 있다고 나타났다.

마취제를 안전하게 사용하기 위해 마취통증의학과 전문의들은 마취 전 환자의 심혈관계, 호흡기계, 간·신장 기능을 꼼꼼히 살피고, 기존 질환이나 복용 중인 약물을 확인해 적절한 약제와 용량을 정한다. 수술 중에는 심박수·혈압·산소포화도 등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며 이상 여부를 즉시 파악한다. 이처럼 철저한 관리 덕분에 전신마취는 대체로 안전하게 시행된다. 미국마취과학회(ASA)에 따르면, 전신마취 후 사망률은 약 1만 명당 21~23명 수준으로 보고됐다.

◇칼륨, 과다 사용 시 호흡근 마비되고 심실 불규칙해져
페시어의 조사 과정에서 언급된 칼륨은 체내 나트륨을 배출하고 혈압을 조절하며, 심장 근육 수축 등에 관여한다. 수술 중에는 ▲혈중 칼륨 농도가 3.0mEq/L 이하일 때 ▲심방·심실성 부정맥이 나타날 때 ▲이뇨제 사용으로 저칼륨혈증이 예상될 때 등의 경우 칼륨을 투여한다. 가톨릭관동대 국제성모병원 마취통증의학과 김영욱 교수는 “투여할 땐 희석해서 정맥 내 주입하고 100mEq/hr 이하 속도로 천천히 주입한다”며 “반드시 모니터링하면서 투여해야 한다”고 말했다. 칼륨을 과다 투여할 경우 근력이 약해져 호흡근이 마비되고 호흡부전을 겪을 수 있다. 김 교수는 “심전도가 변하고 심실세동(심실이 1분이 350~600회 정도 무질서하고 불규칙적으로 수축해 생명을 위협하는 상태)이나 심정지로 이어질 수 있다”며 “심전도를 모니터링하면서 칼륨 배설을 촉진하는 이뇨제와 수액 등을 주입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