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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솔병원 최영선 진료과장
“서 있거나 오래 걸으면 밑이 빠지는 느낌이 들어요.”
“항문이나 질 주변이 묵직하고, 뭔가 튀어나온 것 같아요.”

최근 이런 증상을 호소하며 병원을 찾는 중년 여성 환자들이 늘고 있다. 대개 단순 피로, 근육통, 혹은 갱년기 증상으로 여기기 쉽지만, 이는 ‘골반저질환’이라는 만성 질환의 신호일 수 있다. 골반저질환은 자궁, 방광, 직장 등 골반 장기를 지탱하는 조직이 약해지면서 발생하는 질환으로, 삶의 질을 크게 저하시킬 수 있어 조기 진단과 치료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출산·노화 이후 골반저 기능 저하… 증상 방치하지 말아야
50대 후반 직장인 A씨는 최근 들어 몸이 무겁고, 무거운 물건을 들거나 오래 서 있으면 ‘밑이 빠지는 느낌’과 함께 아랫배가 처지는 묵직함을 자주 느꼈다. 처음엔 단순한 갱년기 증상이라 여겼지만, 증상이 악화되고 배뇨·배변 시 불편감이 동반되자 일상생활이 어려워 병원을 찾았고, 골반저질환인 ‘직장탈출증’ 진단을 받았다.

골반저는 골반 장기를 지지하는 근육과 인대 구조물로 구성돼 있다. 이 지지 구조가 출산, 노화, 폐경 후 호르몬 변화, 만성 복압 증가(기침, 변비, 무거운 물건 들기), 비만 등에 의해 약화되면 방광, 자궁, 직장이 제자리를 유지하지 못하고 아래로 처지는 증상이 나타난다. 이를 골반저질환이라고 하며, 대표 질환으로는 자궁탈출증, 직장탈출증, 방광류, 직장류 등이 있다.

◇증상 있어도 지나치기 쉬워
한 연구에 따르면, 일생 동안 여성의 약 30~40%가 골반저질환 관련 증상을 경험하며, 특히 자연분만 경험이 있는 경우 골반저질환의 위험도가 2~3.5배가량 증가하는 것으로 보고된다. 골반저는 임신과 출산, 폐경을 거치며 점진적으로 약화되기 때문에 중년 여성들이 겪는 ▲만성 변비 ▲항문·질 불편감 ▲‘밑이 빠지는 느낌’ 등은 골반저질환의 경고 신호일 수 있다. 증상은 질이나 항문 쪽에 뭔가 튀어나오는 느낌, 묵직한 불편감 외에도 배뇨장애, 잔뇨감, 잔변감, 변비, 대변 실금 등 다양하게 나타난다. 초기에는 증상이 가볍고 간헐적이기 때문에 단순 피로나 노화로 오해하고 방치하는 경우가 많다.


◇비수술 치료로 증상 완화 가능
초기 또는 경증의 골반저질환은 비수술적 치료만으로도 증상의 호전을 기대할 수 있다. 대표적인 방법으로는 골반저 근육운동(케겔운동)이 있다. 골반저 근육을 반복적으로 수축하고 이완시킴으로써 근육을 강화하고 증상을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된다. 바이오피드백 요법은 센서를 이용해 근육의 수축 상태를 실시간으로 확인하면서 운동 효과를 높이는 치료법이다. 페서리는 실리콘 등으로 제작된 장치를 질 내에 삽입하여 처진 장기를 물리적으로 지지하는 방식으로, 수술을 원하지 않거나 수술이 어려운 환자에게 적합하다. 이와 함께 장 기능 개선도 중요하다. 만성 변비는 골반저 기능을 약화시키는 주요 원인 중 하나로, 변비 치료를 통해 증상 완화가 가능하다. 비수술 치료는 일상생활을 유지하면서 부담 없이 시도할 수 있으며, 특히 초기 단계에서 효과가 뛰어나다.

◇증상 심하면 수술도 고려해야
비수술 치료에도 불구하고 증상이 지속되거나, 장기 탈출이 외부로 명확히 확인될 정도로 진행된 경우에는 수술적 교정이 필요하다. 수술 방법은 질식(질을 통한) 교정술, 복부 절개 또는 복강경을 통한 교정술 등으로 나뉘며, 환자의 나이, 활동 수준, 전신 상태, 탈출 장기 및 정도에 따라 적절한 방법이 결정된다. 예를 들어, 자궁탈출증의 경우 질식 자궁절제술이나 자궁 고정술이 시행되며, 직장류나 직장탈출증은 복부 접근을 통해 메쉬나 봉합을 이용한 고정술을 진행한다. 최근에는 복강경을 이용한 수술이 널리 시행되며, 재발율이 낮고 통증이 적으며 회복이 빠르다는 장점이 있다.

◇전문가 상담과 조기 대처로 삶의 질 회복 가능
골반저질환은 생명을 위협하는 질환은 아니지만, 일상생활의 불편감과 심리적 위축을 초래하며 삶의 질을 크게 저하시킬 수 있다. 특히 ‘밑이 빠지는 느낌’, 만성 변비, 배뇨장애, 성생활 중 불편감 등은 단순한 노화 현상이 아니라 치료가 필요한 질환의 신호일 수 있다. 따라서 이런 증상을 겪고 있다면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골반저질환은 조기 진단과 적절한 치료를 받으면 충분히 증상 완화와 삶의 질 개선이 가능한 질환으로 부끄러움 때문에 치료를 미루기보다는, 관련 질환 진료 경험이 풍부한 대장항문외과 또는 여성골반장기 치료 경험이 풍부한 전문의를 찾아 조기에 진단을 받고 적절한 치료를 받는 것이 중요하다. 치료 시기를 놓치면 증상이 악화돼 수술적 치료가 불가피할 수 있는 만큼, 초기 증상이 있을 때 전문가와 상담하고 적절한 치료를 시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 칼럼은 한솔병원 최영선 진료과장의 기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