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재의 음식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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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클립아트코리아
인스타그램 광고를 보고 떡을 샀다. 깊은 밤, 침대에 누워 잠이 들락말락하는 상태에서 하는 떡 쇼핑이야 말로 나의 요즘 지극한 즐거움인데, 맹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절반쯤 잠이 들려고 하는 상태에서 모든 정보를 꼼꼼하게 읽어보지 않고 사다 보면 받아보고 ‘아, 이건 아니었다’라고 후회하는 것도 나온다.

이번에 산 게 그랬다. 카스텔라 고물을 묻힌 호박떡이라고 해서 잠결에 군침까지 삼키며 샀는데 고물이 별도로 포장돼서 왔다. 떡은 냉동되어 있으니 해동을 시켜야 고물에 버무려 먹을 수 있다. 핵심 공정을 소비자에게 전가한다 싶어 약간 기분이 상했는데, 이왕 이렇게 된 거 고물이 없으면 어떨까 싶어 열 점 들이 한 봉지를 해동시켜 그냥 먹어 보았다.

상당히 심심했지만 이해할 수 있는 맛이었다. 시중의 떡이 식사도 디저트도 아닌, 좀 어중간한 지점에서 단맛을 내고 있어서 못마땅했는데 철저하게 식사와 밥을 대신한다는 명분으로 만든 제품임을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브라질의 유기농 비정제 설탕을 썼다는 사실은 이해하기 힘들었다. 소비자들이 믿고 싶어하는 것 만큼의 장점이 없기 때문이다.

사탕무로 쓰지만 대부분의 설탕은 사탕수수로 만든다. 수숫대를 눌러 즙을 짜 불순물을 걷어낸 뒤 졸여 설탕을 결정화하면 당밀과 섞인 원당이 된다. 여기에서 원심력으로 검고 끈끈한 액체인 당밀을 분리하면 백설탕이 완성된다. 원래 흑설탕은 이론상 이 공정의 어딘가에서 정제를 멈추고 당밀을 남기면 되는 것이긴 한데, 요즘은 일단 백설탕을 완성한 뒤 당밀을 일정 비율 다시 섞는 방식으로 대량 생산한다.


그래서 백설탕과 흑설탕, 또는 그보다 덜 정제한 소위 비정제 설탕은 무엇이 다른가? 맛이 가장 다르다. 당밀은 씁쓸하고도 한편 구수하며 특유의 향을 지녔으므로, 이를 조금이라도 함유한 설탕 또한 백설탕과는 다른 맛과 향을 낸다. 거기에다가 당밀 또한 수분이므로 촉촉함의 정도 또한 다르다. 그래서 서양의 제과제빵 레시피를 보면 백설탕과 흑설탕을 엄격히 구분해 쓰는 경우가 많다.

이런 맛과 향의 차이에 비해 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이렇다 말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 항산화 성분이나 섬유질을 함유하고 있으며, 백설탕에 비해 혈당지수(Glycemic Index)나 낮아 체내에 천천히 흡수되며 혈당을 덜 올린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애초에 세계보건기구(WHO)의 설탕 기준 섭취량이 성인 여성 25그램, 남성 36그램 미만으로 소량이라 무엇이 다르든 큰 영향을 안 미칠 가능성이 높다.

더군다나 소비자 입장에서는 건강을 이유로 많이 동원되는 비정제(유기농) 설탕들이 제품의 가격에 미치는 영향 또한 무시할 수 없다. 참고로 내가 산 떡에 쓰인 브라질산 비정제 설탕을 검색해보니 소매가가 1킬로그램당 2200원 수준이었다. 반면 일반 백설탕은 같은 양 1333원으로 거의 절반 수준.

물론 이런 제품에는 어차피 소량만 쓰니 그게 그거 아니냐 반론할 수 있겠지만 그렇다면 건강에 미치는 영향 또한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오랜 연구를 거쳐 드디어 설탕이 인류 건강 최대의 적임이 밝혀졌는데, 그렇다고 덜 정제한 설탕이 모두가 환상을 품고 있는 것 만큼 더 건강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또한 맛의 차원에서도 중립적인 단맛은 어떤 설탕이나 감미료도 아닌 백설탕만이 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