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던 곳도, 먹는 것도, 운동복도 다 변했다”

“운동 좀 하세요?”라는 질문의 답은 시대마다 달랐다. 1970년대 운동은 공원에서의 국민체조로 시작했지만, 1990년대에는 헬스클럽과 다이어트 열풍으로 이어졌고, 지금은 손목의 스마트워치와 앱을 통해 건강을 관리하는 시대다. 운동 문화의 변화는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 건강에 대한 사회적 인식 변화를 보여주는 거울이다. 전문가들은 “운동 문화 역시 사회·경제적 환경 변화에 따라 발전해왔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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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년 우리나라 최초의 보디빌딩 행사./사진=온라인 커뮤니티 갈무리
◇1950~1960년대: 군사 훈련식 단련과 바디빌딩
전쟁 이후 국가적 과제는 체력 증진이었다. 2차 세계대전과 산업화가 많은 변화를 가져오면서, 남성은 군사 훈련식 단련과 바디빌딩을 중심으로 운동했으며, ‘건강=튼튼한 몸’ 이라는 개념이 확산했다. 여성은 가정에서 맨손체조를 중심으로 건강을 관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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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체조./사진=헬스조선 유튜브 캡처, 국민생활체육회 제공
◇1970~1980년대: 국민체조와 에어로빅의 시대
아침마다 울려 퍼지던 라디오 ‘국민체조 음악’은 시대의 상징이다. 주민들은 운동복이 아닌 일상복 차림으로 운동장이나 공원에 모여 몸을 풀었다. 건강의 기준은 단순했다. “잘 먹고 많이 움직이면 건강하다”는 인식이 지배적이었고, 공원의 철봉·평행봉이 대표적인 운동 기구였다. 헬스클럽은 일부 체육관과 호텔에만 있었으며, 건강기능식품이나 체계적인 식단 개념은 없었다.

경제 성장과 소비문화 확산은 운동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국립한국교통대 스포츠의학과 정제순 교수는 “TV와 비디오 보급으로 에어로빅과 재즈댄스가 유행했고, 날씬한 몸매가 사회적 성공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며 “헬스산업이 본격적으로 상업화된 것도 이 시기”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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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90년대 헬스클럽의 모습, (우)90년대 인기를 끌었던 모델 이소라의 다이어트 비디오./사진=tvN '유 퀴즈 온 더 블럭' 캡처, 온라인 커뮤니티 갈무리
◇1990년대: 헬스클럽 시대의 개막과 다이어트 열풍
90년대는 경제 성장과 함께 헬스클럽이 대중에게 확산된 시기다. 웨이트 트레이닝과 러닝머신이 보편화됐고, 잡지와 TV에는 ‘몸짱 스타’가 등장하며 근육질 몸매가 선망의 대상이 됐다. 건강 관리가 ‘멋진 몸 만들기’로 확대됐다. 정제순 교수는 “특히 사회∙경제적인 글로벌화에 따른 사무직 인구 증가로 만성질환 관리 필요성이 커지면서 헬스장과 건강보조식품 시장이 함께 성장했다”고 말했다.

다이어트 열풍도 거셌다. 바나나·고구마·사과만 먹는 ‘원푸드 다이어트’가 유행했고, 홍삼·비타민 등 건강기능식품이 서서히 시장에 자리 잡았다. 이때부터 건기식을 일상적인 선물로 주고 받는 게 흔한 광경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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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라테스./사진=클립아트코리아
◇2000년대: 웰빙과 요가·필라테스 전성기
‘웰빙(Well-being)’이 시대의 화두였다. 건강은 단순히 병이 없는 상태를 넘어, ‘몸과 마음의 균형’을 의미하게 됐다. 균형 잡힌 몸매가 유행하면서, 요가·필라테스 스튜디오가 전국적으로 늘었다. 매일 집에서 따라할 수 있는 TV 홈트레이닝 프로그램과 DVD가 붐을 이뤘다. 식단에도 변화가 왔다. 유기농 채소, 저탄고단(저탄수·고단백) 식단, 채식주의가 주목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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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대에는 바디프로필 촬영과 운동 인증이 유행했다./사진=클립아트코리아, 게티이미지뱅크
◇2010년대: 바디프로필과 SNS 챌린지
스마트폰과 SNS가 헬스 문화를 뒤흔들었다. 정 교수는 “디지털 기기가 활용되면서 SNS를 통해 자기 건강 관리 문화가 크게 확산됐다”며 “크로스핏, HIIT 같은 고강도 운동이 유행한 것도 이 시기 특징”이라고 말했다. 운동 인증샷, 식단 인증이 일상이 됐고, ‘보여주는 몸’이 목표가 되며 자기 관리 열풍이 거세졌다. 특히 바디프로필 촬영이 유행했고, PT(퍼스널 트레이닝) 시장도 급성장했다. 식단은 닭가슴살·브로콜리·고구마의 ‘3종 세트’가 표준처럼 자리 잡았다.

다만, 극단적 다이어트와 요요현상 같은 부작용이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기 시작한다. 정 교수는 “당시 바디프로필 챌린지 등이 목표를 세우고 관리 습관을 만드는 데 동기부여를 하는 건 긍정적이었지만, 일시적인 극단적 다이어트가 요요를 불러 근육은 줄고 체지방은 늘어나는 ‘저근육형 비만’을 만든다는 문제점도 있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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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시기, 마스크와 스마트 워치를 착용하고 뛰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2020년대: 데이터와 맞춤형 헬스케어
코로나19 팬데믹은 헬스문화를 비대면으로 옮겨놨다. 집에서 앱이나 유튜브로 운동하는 ‘홈트족’이 늘었고, 줌(Zoom)으로 실시간 수업을 받는 풍경도 일상이 됐다. 스마트 워치와 건강 앱은 심박수, 수면, 칼로리 소모를 기록하며 ‘데이터 기반 건강관리’를 가능하게 했다. 유전자 분석·마이크로바이옴 검사 등 맞춤형 헬스케어도 보편화됐고, 운동 목표는 다이어트에서 ‘건강수명 연장’과 ‘컨디션 최적화’로 확장됐다. 코로나 이후에는 러닝크루, 클라이밍 동호회 등 다양한 모임이 활성화되고 있다. 식단은 ‘저속노화’ 트렌드 속에서 고단백·저당 식단, 대체육·비건까지 폭넓게 확산되고 있다.

기술 발전은 비만치료제 시장도 키웠다. 그러나 약물 남용에 대한 우려도 크다. 정제순 교수는 “약물은 일시적으로 체중을 10~15% 줄여주지만, 복용을 중단하면 요요현상이 나타난다”며 “근육은 줄고 지방은 늘어난다는 점에서 극단적 다이어트와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체중 감량의 1차 치료는 여전히 운동과 식이조절이며, 장기적으로 유지 가능한 생활습관 변화가 핵심”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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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년대 이후 헬스 문화는 맞춤형 피트니스·영양 관리가 본격화될 것으로 전망된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2030년대 이후 전망: 초개인화 시대
미래의 운동 문화는 한층 더 개인화될 전망이다. 자신의 체질·데이터·취향에 맞춘 관리가 주류다. 정 교수는 “2030년대에는 유전자와 생체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맞춤형 피트니스·영양 관리가 본격화될 것”이라며 “학회에서는 장내 미생물 연구를 바탕으로 음식·보조제를 추천하는 프로그램이 등장하고, AI 트레이너가 실시간 피드백을 제공하는 방식이 보편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개인의 운동 데이터는 건강검진·보험료와 직접 연계되며, 운동이 질병 예방 효과를 인정받는 흐름도 강화될 전망이다. VR·AR·메타버스를 활용한 ‘게임형 운동’ 역시 새로운 시장을 열 것으로 기대된다.


한편, 운동은 시대를 막론하고 유행을 따르기보다 ‘나에게 맞는 방식’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정제순 교수는 “병이 생기면 의사를 찾듯, 운동도 전문가의 지도가 필요하다”며 “SNS에 떠도는 검증되지 않은 운동법보다는 ‘건강운동관리사’ 같은 자격을 갖춘 전문가와 상담해 자신에게 맞는 프로그램을 설계하는 것이 안전하고 효과적일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