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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시 효과나 반복 강박이 있는 사람은 자신에게 상처를 주는 이성에게 끌리는 경우가 있다./사진=챗GPT 생성 사진
소위 말하는 ‘나쁜 남자(여자)’에게 끌리는 사람이 있다. 자신을 함부로 대하고 상처를 주는 사람에게 이성적 매력을 느끼고, 연인 관계를 맺으려는 경우다. 이러한 관계가 자신에게 해가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매번 같은 실수를 반복하곤 한다. 나쁜 이성에게 매력을 느끼는 이유는 무엇이고, 이런 관계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착시 효과·반복 강박 때문에 나쁜 연인에게 끌려
나쁜 연인이란 상대방에게 정서적 상처와 불안감을 주면서도 간헐적인 애정과 관심을 줘 이성적 끌림을 유발하는 사람을 말한다. 나쁜 연인이 끌리는 이유는 ‘착시 효과’와 ‘반복 강박’ 때문이다. 착시 효과는 공격이나 상처로 인해 긴장감이 높아졌을 때 심장이 뛰는 생리 반응을 사랑으로 착각하는 현상이다. 반복 강박은 과거의 상처나 트라우마를 무의식적으로 재현하려는 심리로, 해로운 관계임을 알면서도 비슷한 관계를 반복하게 만든다.

단국대 심리치료학과 임명호 교수는 “특히 피학증 성향이 있는 사람들이 고통을 받는 관계에서도 삶의 의지와 자극을 느껴 쉽게 벗어나지 못한다”고 했다. 피학증이란 신체적·정신적 고통이나 굴욕을 당하는 것을 통해 만족·쾌감을 느끼는 성향을 뜻하며, 어린 시절 부모와의 불안정한 애착 관계에서 비롯된다.


서울청정신건강의학과 정동청 원장은 “부모가 예측 불가능하게 화를 내거나 드물게 칭찬하는 환경에서 자란 경우, 아이는 ‘간헐적 보상’에 민감해진다”고 말했다. 간헐적 보상이란 보상이 일정하지 않고 가끔 주어져 오히려 집착을 강화하는 현상으로, 도박 중독의 원리와 비슷하다. 이렇게 형성된 성향은 성인이 된 후에도 이어져, 평소에는 냉담하다가 가끔 다정하게 대해주는 나쁜 연인에게 강하게 끌리게 만든다.

◇관계 지속되면 우울증·불안장애 이어질 수도
나쁜 연인과 장기적으로 관계를 이어가면, 만성적인 스트레스 반응이 과도하게 활성화돼 신경계에 손상을 입을 수 있다. 이런 상태가 이어지면 뇌의 편도체가 과민해져 불안·경계심이 높아지고, 전전두엽 기능이 저하돼 감정 조절 능과 판단력이 떨어진다. 편도체는 뇌에서 공포·분노·불안 등 정서적 반응을 처리하고 위협을 감지하는 역할을 하는 기관이며, 전전두엽은 뇌에서 계획·의사결정·문제해결·충동조절 등을 조율하는 역할을 한다. 동시에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이 장기간 분비되면서 수면 장애, 기억력 저하, 만성 피로가 나타날 수 있다. 이는 우울증,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불안 장애, 공황 장애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

나쁜 연인과의 관계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정동청 원장은 “먼저 대인 관계 패턴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자신이 반복적으로 이어가는 대인 관계의 유형과 그 안에서 나타나는 감정·행동 반응을 객관적으로 파악해야 문제의 원인을 찾고 변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고 했다. 이를 위해 지금까지 사귀었던 연인 관계를 되짚어 갈등 원인, 상대방 성향, 나의 반응을 기록한다. 연인이 상처 주는 행동을 했다면 ‘하지 말아달라’는 의사 표현을 분명히 하고, 지켜지지 않으면 거리를 둔다. 또 취미·운동·공부 등을 하면서 성취와 즐거움을 느끼는 시간을 늘리자. 연인에 대한 의존도를 줄일 수 있다. 정 원장은 “자신의 의지만으로 관계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면 전문가와의 상담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