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산화 효과 있지만 제조 과정서 생성되는 유해물질은 주의
황반변성 고위험군은 원두커피나 디카페인 섭취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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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인스턴트커피도 원두 블랙커피 못지 않은 항산화 효과가 있으나 적정량만 섭취하는 것이 좋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인스턴트커피는 저렴하고 뜨거운 물만 부으면 빠르게 우러나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마실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런데 최근 국제학술지 ‘식품과학과 영양(Food Science&Nutrition)’에 인스턴트커피 섭취가 눈 건강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가 게재되며 소비자들의 우려를 낳고 있다. 마음 놓고 즐길 수 없는 걸까?

◇인스턴트커피가 ‘황반변성’ 위험 높여
중국 후베이 의과대 타이허병원 연구팀이 영국 바이오뱅크 데이터를 활용해 80만6834명을 대상으로 커피 섭취와 황반변성 발병 위험 간 상관관계를 분석했다. 황반변성은 노화와 연관된 안과 질환 중 하나로 노인 시력 상실의 주원인이다. 참여자들은 ▲디카페인 커피 ▲원두커피 ▲인스턴트커피 섭취군으로 분류됐다. 분석 결과, 인스턴트커피를 평균보다 많이 섭취하는 사람일수록 건성 황반변성 위험이 약 6.92배 높아졌다. 특히 유전적 소인이 있는 사람들에게서 두드러졌다. 이외에 디카페인 커피나 원두커피 등 전체 커피 소비와 황반변성 위험 간에는 뚜렷한 연관성이 없었다.

연구팀은 제조 과정에서 생성되는 화학물질이 황반변성 위험을 높인다고 분석했다. 인스턴트커피는 커피를 고농도로 추출해 끓인 뒤 고온에서 말리거나 얼려서 가루로 만드는데 이 과정에서 아크릴아마이드, 최종당화산물(AGEs) 등이 생성된다. 아크릴아마이드는 눈 세포에 염증을 일으키고 산화 스트레스를 유발해 세포를 손상시키며 최종당화산물은 우리 몸의 다양한 신호 전달 경로를 자극해 마찬가지로 눈 속 산화 스트레스 및 염증을 악화한다. 결국 눈 혈관 벽이 약해지면 망막 장벽이 무너져 황반변성으로 이어질 수 있다.

생산 과정에서 추가되는 첨가물도 망막세포에 영향을 미친다. 순천향대천안병원 안과 김훈동 교수는 “건조 과정에서 설탕, 프림 등의 첨가물에 강한 열이 가해지면 마이야르 반응이 과도하게 활성화돼 망막 세포에 해로운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마이야르 반응은 식품을 섭씨 120도 이상 가열할 때 탄수화물(당)과 단백질의 아미노산이 결합하는 화학반응으로 음식 색이나 풍미를 높이지만 아크릴아마이드 등 화학물질이 생성된다.


◇인스턴트 ‘블랙’ 커피는 예외일까
인스턴트커피 중에서도 설탕, 프림 등 기타 첨가물이 들어가지 않은 블랙커피 종류도 마찬가지일까? 블랙커피는 여러 연구를 통해 항산화 기능을 통한 질환 예방 효과가 밝혀진 바 있다. 배화여대 식품영양학과 송태희 교수는 “인스턴트여도 블랙커피로 마시면 클로로겐산 등 폴리페놀, 카페인, 멜라노이딘 등 항산화 성분을 함유했기 때문에 일반 블랙커피와 마찬가지로 항산화 효과를 볼 수 있다”며 “다만 개인의 건강상태 등을 고려해 적정량을 섭취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브라질 론드리나 주립대 연구팀이 시판되는 인스턴트 블랙커피 33종의 상업용 인스턴트 블랙커피를 분석한 결과, 같은 양의 원두커피의 60~80% 수준의 항산화 효과를 보였다. 다만 제조 과정 특성상 아크릴아마이드, 최종당화산물 생성을 피할 수 없어 섭취량을 조절해야 한다.

◇인스턴트커피만의 문제 아냐… 섭취량 조절이 핵심
한편, 아크릴아마이드, 최종당화산물은 인스턴트커피에서만 생성되는 물질이 아니다. 아크릴아마이드는 빵, 감자 등 전분이 많은 음식을 굽고 튀기는 등 장시간 고온 조리하면 다량 생성된다. 마찬가지로 최종당화산물도 고지방·고단백 식품을 고온 조리할 때 다량 발생한다. 국민대학교 과학기술대학 식품영양학과 이정숙 교수는 “아크릴아마이드는 커피 외에 다양한 식품을 통해 섭취될 수 있기 때문에 식약처는 이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안전 기준을 설정한다”며 “특정 식품 하나만을 두고 과장된 위험성을 언급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이정숙 교수는 “아크릴아마이드는 이미 식품의약품안전처(이하 식약처)에서 유해물질로 관리하고 있으며 현재 시중에 유통되는 커피 제품은 기준치를 초과하지 않은 안전한 수준 내에 있다”고 말했다. 식약처는 2022년 10월부터 커피류 아크릴아마이드 함량을 0.8mg/kg 이하로 권고하고 있다. 권고 기준 초과 시, 개선조치가 시행되며 2회 초과된 경우 제품명이 공개된다. 올해 4월부터는 식품업계와 공동으로 아크릴아마이드를 비롯한 유해물질 저감화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결론적으로, 하루 두세 잔 정도 적정 섭취량을 지킨다면 인스턴트커피 위해성을 크게 우려하지 않아도 된다. 김훈동 교수는 “이번 연구는 유럽 인구를 대상으로 한 기존 통계자료 분석이며 황반변성은 가족력, 당뇨병·고혈압 등 기저질환, 흡연·음주 등 생활습관이 다방면으로 영향을 미치는 질환이라 인스턴트커피 섭취만으로 황반변성 위험이 높아진다고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단, “황반변성 고위험군은 가급적 인스턴트커피 섭취량을 줄이고 원두커피나 디카페인 커피, 차 등을 골라 마시는 게 좋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