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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마포구에 있는 가챠샵/사진=뉴스1
최근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가 10대 청소년들의 랜덤 박스 소비가 중독 수준에 이르렀다고 경고하며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랜덤 박스는 장난감 피규어나 트레이딩 카드 등이 무작위로 들어 있는 작은 상자다. 상자에 물건이 포장된 형태의 ‘뽑기 놀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희귀 아이템을 얻고 싶은 마음이나 무엇이 나올지 모른다는 기대감을 자극함으로써 소비자들의 수집 욕구를 유도한다.

해외만의 문제가 아니다. 국내에도 일본식 뽑기 기계인 ‘가챠’를 여럿 진열한 가챠샵이 여기저기에 들어서 있다. 가챠에 돈을 넣고 레버를 돌리면 무작위로 미니어쳐나 캐릭터 피규어 등 장난감이 나와 짧은 쾌락을 즐기기 좋다. 타깃 고객이 10~20대라는 점에서 국내 청소년들도 중독 위험에 노출돼 있다.

◇해외도 국내도 ‘뽑기’ 열풍… 월매출 2억 원 넘긴 곳도
중국 정부는 랜덤 박스 구매 중독을 우려해 2023년부터 8세 미만 어린이에게 랜덤 박스 판매를 금지하고 있다. 8세 이상도 보호자 동의가 필요하다. 하지만 처벌 규정이 없어 사실상 제재가 어려운 상황이다. 양푸웨이 서남대 법학과 교수는 중국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랜덤 박스 소비는 미성년자의 자기 통제력을 악용한 구조”라고 지적했다. 인민일보에 따르면 일부 청소년은 한 번에 수천 위안을 쓰기도 한다.


국내 가챠샵에서 사람들이 쓰는 돈도 만만치 않다. 서울 용산구 한강대로에 있는 HDC아이파크몰 용산점(아이파크몰)에는 작년 9월 국내 최대 가챠샵 ‘가챠파크’가 들어섰다. 가챠 기기 150여 대가 갖춰져 있다. 가챠파크는 오픈 첫 달 방문객 수 4만여 명을 달성했고, 월 매출은 2억 원을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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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 아이파크몰에 있는 가챠샵/사진=뉴스1
◇소액이라도 가챠에 계속 쓴다면 ‘중독’ 상태
가챠샵 주고객층인 10대는 충동을 억제하는 뇌 전두엽 발달이 미숙해, 태생적으로 중독에 취약하다. 게다가 자신이 원하는 보상이 언제 주어질지 예측할 수 없는 ‘간헐적 보상 시스템’이, 보상이 주어지는 패턴이 겉으로 드러나 있는 시스템보다 더 많은 도파민 분비를 유도한다. 아이들이 자신이 원하는 미니어쳐나 캐릭터 피규어가 나올 때까지 계속 가챠에 돈을 쓸 가능성이 큰 이유다. 가챠를 한 번 이용하는 데 드는 돈은 적게는 5000원 내외, 많게는 1만 원 이상이다. 그러나 커피 한 잔이나 영화 표 하나 값 정도로 생각하고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니다. 총신대 중독상담학과 조현섭 교수는 “가챠 중독 기준을 ‘가챠에 쓴 돈의 액수’로 정할 수는 없다”며 “푼돈이라도 돈이 생길 때마다 가챠에 쓰고 있거나, 용돈이 떨어졌을 때 어떠한 방식으로든 돈을 구해서 가챠를 하려 든다면 이미 중독된 상태”라고 말했다.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정확히 모르는 아이들이 많고, 청소년이 또래와 즐길 만한 놀이 문화가 없는 현실도 문제다. 조현섭 교수는 “입시 공부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해소할 곳이 필요한데, 즐길 만한 것으로 가까이 있는 게 소셜미디어(SNS), 게임, 텔레비전, 가챠 같은 것밖에 없는 게 문제”라며 “정신 건강에 해로울 수 있는 것들을 다 제외하고 나면 아이들이 스트레스를 풀 곳이 없는 현실”이라고 말했다.


◇건전한 취미 만들어주고, 사용 금액 합의해야
무작정 자녀의 용돈을 끊고, 가챠샵에 출입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근본적 해결책이 아니다. 아이가 자신의 어떤 욕망을 해소하려다가 가챠에 빠지게 됐는지부터 파악해야 한다. 자녀가 평소 무엇을 좋아하는지 대화를 통해 파악한 다음, 취미로 삼을 수 있을 만하면서 정신 건강에도 이로운 것을 즐길 수 있도록 부모가 도와야 한다. 아이가 친구 관계를 유지하려면 가챠를 이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분명 존재한다는 것도 이해해줘야 한다. 조현섭 교수는 “자녀가 가챠에 쓴 돈을 부모와 함께 계산해보고, 생각보다 ‘큰돈’을 사용했다는 것을 인지하도록 유도하라”며 “친구들과 놀다가 가챠샵에 가면 돈을 얼마까지 쓸 것인지 자녀와 합의하고, 그 한도 안에서만 가챠를 이용함으로써 소비 욕구를 스스로 통제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