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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6학년인데 커피 마시는 딸… 괜찮을까요?” [요즘 사람들]
신소영 기자
입력 2025/06/13 08:30
'건강이 최고'라고들 말하지만, 정작 건강을 우선순위에 두고 살기란 쉽지 않습니다. 바쁘고 지친 일상 속에서 제대로 건강을 챙기지 못하고, 설령 챙기려 해도 잘못된 방법을 선택하는 경우도 흔합니다. [요즘 사람들]은 현대인들의 건강 행태를 돌아보고, 그 속에 감춰진 위험 신호를 짚어봅니다. 전문가들의 조언을 바탕으로, 지금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건강한 방향'을 제시합니다.(편집자주)
피곤한 직장인들에게 커피는 '생명수'로 여겨진다. 요즘은 아이들에게도 커피가 필수가 됐다. 학원가 앞만 가도 학생들이 손에 커다란 커피를 들고 지나가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워킹맘 최모(44·서울 종로구)씨는 "딸이 초등학교 6학년인데 커피를 마신다"며 "매일 친구들과 카페에서 아샷추(아이스티+에스프레소 샷 추가)를 사 먹는다는데, 그렇게라도 공부한다니 말리기 어렵다"고 말했다. 고등학생 안모(18·경기 남양주시)양도 밤새 공부할 때면 에너지음료에 의존한다. 그는 "카페인이 필요한데 커피는 맛이 없고, 몸에 안 좋을 것 같긴 하지만 잠을 깨야 하니 에너지음료를 마시는 것"이라며 "이틀에 한 번꼴로 마신다"고 했다. 성장이 다 끝나지 않은 청소년 시기부터 커피나 에너지음료 등 고카페인 음료를 섭취하는 습관, 괜찮은 걸까?◇중고생 20%, “고카페인 음료 주 3회 마신다”
청소년들의 카페인 섭취 실태는 심각한 상황이다. 질병관리청이 지난 2022년 중고등학생 6만 명을 대상으로 한 청소년 건강 행태조사에 따르면, 커피·커피음료·에너지음료 등 고카페인 음료를 주 3회 이상 마시는 중고생 비율은 22.3%로 나왔다. 이는 5명 중 1명꼴이다. 과거에는 콜라나 커피우유처럼 비교적 카페인 함량이 낮은 음료가 주를 이뤘다면, 최근엔 저가 커피전문점과 에너지음료의 보편화로 청소년들의 카페인 섭취량도 급격히 늘고 있다.
문제는 청소년이 하루에 커피 한 잔이나 에너지음료 한 캔만 마셔도 하루 섭취 권고량을 초과할 수 있다는 점이다. 식약처의 어린이·청소년의 카페인 일일섭취 권고량은 체중 1㎏당 하루 2.5㎎ 이하로, 체중 50kg을 기준으로 할 때 125mg이다. 그러나 시중 커피전문점의 아메리카노는 한 잔(354~591mL)당 150~237mgm의 카페인을, 고카페인 음료는 한 캔(250~330mL)당 60~120mg의 카페인을 함유하고 있어 한 캔이면 권고량을 채우는 수준이다.
◇아이들에겐 부작용 더 커… 성인 돼서도 의존 가능
적당한 카페인은 각성과 집중력 향상에 도움을 줄 수 있지만, 과도한 섭취는 불면, 불안, 심장 두근거림, 신경과민 등 다양한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 특히 이는 성인보다 소아·청소년에서 더 크게 발생한다. 중앙대광명병원 가정의학과 오윤환 교수는 "성장기 아동과 청소년은 체중이 가볍기 때문에 성인과 같은 양의 카페인을 섭취해도 더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다"며 "카페인이 수면을 방해해 성장기 아동의 수면 패턴이나 신경회로 발달을 교란시킬 수 있다는 연구도 있다"고 말했다.
30kg 미만의 어린이가 콜라 두 캔의 카페인만 섭취해도 구역, 구토, 불안, 심계항진 등의 증상을 겪을 수 있다. 전문의들에 따르면, 특히 에너지음료의 경우 카페인이 커피보다 몇 배 더 들어있어 에너지음료를 마시고 심장이 빨리 뛰어 응급실에 오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있다. 에너지음료는 용량 조절이 어려워 성장기 아이들에게 철분·칼슘 흡수를 방해하고 뼈 성장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다. 청소년의 경우, 고카페인 섭취는 분노와 폭력 행동뿐 아니라 알코올, 흡연, 마약 등 위험 행동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 주의가 필요하다.
장기적으로도 좋지 않다. 가천대길병원 소아청소년과 류일 교수는 "어릴 때부터 카페인을 많이 섭취하면 미래의 에너지를 빚내서 쓰는 것과 같다"며 "점차 피로가 누적되고, 집중력도 오히려 더 떨어진다"고 말했다. 내성도 생길 수 있다. 오윤환 교수는 "카페인을 지속적으로 섭취하면 뇌에서 이에 적응하려고 아데노신(수면 유도 물질) 수용체 수를 늘린다"며 "그럼 비슷한 각성 효과를 얻기 위해 점점 더 많은 카페인을 필요로 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로 인해 카페인을 끊었을 때 두통, 피로, 집중력 저하 같은 금단 증상을 겪게 된다. 결국 어릴 때부터 카페인을 습관적으로 섭취하면 성인이 되어서도 의존적으로 마시게 될 가능성이 크다.
◇부모 역할 중요… 습관 잘 형성해줘야
청소년에게 커피 음료 정도는 간혹 괜찮을 수 있으나, 그 이상의 섭취는 전문가들 모두 권장하지 않는다. 류일 교수는 "특히 에너지음료는 일반 커피보다 카페인 함량이 매우 높기 때문에 피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카페인 섭취를 줄이기 위해서는 부모의 역할도 매우 중요하다. 오윤환 교수는 "청소년들이 카페인을 찾는 주된 이유는 수면 부족, 학업 스트레스인 경우가 많다"며 "근본 원인을 먼저 파악하고 해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또한 커피뿐만 아니라 커피우유나 다양한 가공음료에도 고함량의 카페인이 포함된 경우가 많아, 부모들이 제품 라벨을 꼼꼼히 확인하고, 자녀와 함께 카페인 섭취 기준을 인지하며 조절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카페인이 건강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충분히 설명해주고, 카페인이 들어간 음료를 마시더라도 하루 권장 섭취량을 넘기지 않도록 한다.
핵심은 습관 형성이다. 오 교수는 "카페인을 자주 섭취하는 습관은 장기적으로 강화되기 쉽다"며 "어릴 때부터 단맛 음료를 제한하듯 건강한 물이나 우유를 습관적으로 마시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가정에서 부모가 건강한 수면과 식습관을 실천하며 모범을 보이는 것도 효과적인 방법이다. 부모의 생활 방식이 아이들에게 자연스럽게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실제로 과거 한국소비자원보호원 식의약안전팀의 설문조사 결과, 커피를 마신다고 응답한 초·중학생의 53%는 "어른들이 마시는 커피를 호기심에서 조금씩 마시다"가 커피를 마시게 됐다고 응답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