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

無수익·無지원·無규제… ‘소아 약 부족’, 제약사 탓만 할 수 없는 이유

전종보 기자

[소아 무약촌(無藥村)] ④제약사들의 항변
“소아 약, 안 만드는 게 아니라 못 만드는 것”

인근에 약국이 없는 지역을 흔히 ‘무약촌(無藥村)’이라고 합니다. 한자를 직역하면 ‘약이 없는 마을’이라는 뜻입니다. 한국에선 많은 아이들이 무약촌에 살고 있습니다. 약국이 없어서만은 아닙니다. 약이 개발되지 않았거나, 개발은 됐지만 허가·급여적용이 안 돼서, 공급이 중단돼서 등 여러 이유가 얽혀 있습니다. [소아 무약촌]은 국내 소아의약품 부족 문제를 살피고, 원인과 해결방안에 대해 알아볼 예정입니다. 아픈데 약이 없는 아이와 아이의 어머니, 그런 아이들을 치료하는 의사의 이야기도 전합니다. (편집자 주)



약이 부족한 이유는 제약사가 약을 만들지(개발 또는 생산하지) 않아서다. 그렇다면 약을 만들지 않는 이유는 뭘까. 이 질문에 대한 제약사들의 답변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개발이 어려워서. 둘째, 허가·급여가 까다로워서. 셋째, 적은 수요와 약가 등의 문제로 수익성이 떨어져서. 특히 소아 약의 경우 위 세 가지 요건을 모두 갖출 가능성이 더욱 높다. 소아 약 생산·개발 관련 지원과 규제가 필요한 것도 이 때문이다. 수익성은 떨어지는데 지원·규제마저 부족하다면 한국 아이들은 앞으로도 ‘무약촌’에 방치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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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게티이미지뱅크
◇개발 어렵고 수익성 낮은데… 지원·규제도 부족
“소아 약 개발과 관련된 지원이 적고 강제적인 규제도 부족하다보니, 제약사 입장에선 굳이 만들 필요성을 못 느끼는 것이다.”
흔히 신약 개발을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사업이라고 이야기한다. 많은 비용과 시간이 들고 실패 위험이 큰 대신, 개발·상업화에 성공하면 그에 준하는, 혹은 그 이상으로 많은 돈을 벌 수 있어서다.

그러나 소아 약은 예외다. 어렵사리 개발해도 수익성이 낮다고 평가된다. 성인에 비해 인구 수가 적기 때문이다. 지금도 적은데 앞으로 더 줄어든다고 하니, 제약사들로부터 ‘돈 안 되는 약’ 취급을 받는다. 노인, 고령화와 관련된 약들이 매년 유망 신약으로 꼽히는 것과 대비된다. A제약사 관계자는 “사회적으로 소아 중증 질환에 대한 관심도는 높아진 반면, 낮은 수익성 등의 이슈로 소아 대상 의약품 개발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의약품 사업은 철저하게 시장논리로만 접근할 수 없다는 점이다. 인간의 생명과 직결된 산업인 만큼, 책임감이나 사명감 등도 이윤 추구 못지않게 중요시된다.

그렇다고는 해도 아무런 지원도 혜택도 없이 무작정 사명감만 강요할 순 없다. 기업 입장에서는 공익을 위해 사익을 일정 부분 포기한다면, 누군가는 그에 따른 보상을 보장해줘야 한다.

미국과 일본, 유럽 등에서는 정부가 그 역할을 하고 있다. 소아 약을 개발하면 일정 기간 시장 독점권을 주고, 관련 연구소·네트워크를 통해 지원하는 식이다. 지원뿐 아니라 규제도 하고 있다. 예컨대 미국에서는 식품의약국(FDA) 규정에 따라, 성인 약을 개발할 때 소아에 대한 효능·용량 평가도 함께 진행해야 한다.


한국 역시 희귀의약품 소아 적응증 추가 시 시장 독점권을 1년 연장하는 등의 제도가 있다. 다만, 미국, 일본, 유럽 등에 비해서는 관련 지원·규제가 여전히 부족하다는 것이 제약업계와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제약산업전략연구원 정윤택 원장은 “허가 과정에서 혜택이 없으면 약가 측면에서라도 인센티브가 있어야 한다”며 “혜택도 규제도 없으니 기업들이 동기 부여가 안 된다”고 지적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이 같은 의견에 대해 “어린이용 용법·용량 임상시험은 4년 간 시장독점권을 부여하고 있다”면서 “앞으로도 희귀질환, 소아 사용 의약품 개발과 정보 제공 지원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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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글로벌의약산업협회 설문조사에 따르면, 한국에서 혁신 신약이 식약처 허가를 받은 후 건강보험에 등재되기까지 평균 608일(약 20개월, 2022년 기준)이 소요됐다. 이는 대부분 의료진이 꼽은 적정 기간(10개월)의 두 배며, 같은 시기 독일(281일), 일본(301일), 프랑스(311일) 등 해외 주요 국가와도 크게 차이난다. / 그래픽 = 김민선
◇국내 도입 시급한 소아 약, 높은 급여 문턱에 ‘발목’
“보험 급여 등재의 어려움으로 한국에서 등재를 포기하는 경우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높은 급여 문턱은 국내 소아 약 도입·출시를 가로막는 또 하나의 장벽이다. 소아 약의 경우 임상에 대한 위험 부담이 크고 환자 모집 또한 어려워, 성인에 비해 대규모 임상이 잘 진행되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급여 등재에 필요한 비용효과성 등을 입증할만한 임상적 근거가 부족할 때가 많다. 이는 소아 약 급여가 지연되거나 등재에 실패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

A제약사 관계자는 “소아 대상 적응증에 대해 보험 등재 검토 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허가를 받았거나 임상을 통해 허가외의약품으로 사용할 수 있게 돼도, 많은 치료제들이 급여가 되지 않아 비급여로 사용되고 있다”고 말했다. B제약사 관계자는 “특히 희귀질환치료제는 초기 연구·개발부터 막대한 투자와 시간이 소요돼 다수 제품이 고가로 출시되는데, 이로 인해 급여 심사 과정에서 가격 협상과 비용 대비 효과 평가 등에 어려움이 발생한다”며 “급여 결정까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현재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하 심평원)은 소아 약의 특수성을 고려해 건강보험 등재 여부를 결정할 때 성인 약과 다른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 예를 들어 신규 등재 시 소아 약의 약가 협상 생략 기준 금액은 대체 약제 가중평균가의 95%로, 보통 성인에 사용되는 약제(90%)보다 높다. 소아 약제가 임상적으로 의미 있는 삶의 질 개선을 입증하는 등 요건을 충족하면 경제성 평가를 생략하기도 한다. 심평원 관계자는 “소아 약제는 임상 수행이 어려워 성인 약제보다 임상적 유용성 관련 근거가 불충분한 경우가 많으나, 소아 질환의 특성 등을 고려해 평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이 같은 제도 개선의 효과가 제약사에는 크게 와닿지 않는 분위기다. 현행 경제성평가 생략 제도를 확대하고, 별도 기금 조성, 선별급여제도 활용과 같은 실질적인 방안들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제기된다. C제약사 관계자는 “신약 접근성 확대를 위해 제도 개선이 있었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급여 등재까지 기간이 더 길어진 느낌”이라며 ​“급여 등재 기간 축소에 대한 획기적이고 구체적인 대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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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문에 참여한 의료진 94%는 한국의 신약 접근성이 해외보다 낮다고 지적했으며, 97%는 다국적 제약사들이 국내 의약품 관련 규제로 인해 혁신 신약 출시를 포기하는 ‘코리아 패싱’ 현상을 막기 위해 정부가 적절하고 합리적인 약가를 책정해야 한다고 답했다. / 그래픽 = 김민선
◇약값 저렴한 한국, 신약 출시 時 ‘후순위 국가’로 밀려
“해외에서 신약을 개발하면 약가가 낮은 우리나라를 일부러 후순위로 둔다. 기준점이 낮아져버리니까.”
국내 제약 시장의 고질적인 문제로 언급되는 ‘낮은 약가’ 또한 제약사들이 소아 약 도입·출시를 꺼리는 이유 중 하나로 지목된다. 우리나라의 경우 국가가 약가 결정권을 갖고 있으며, 약가가 계속해서 떨어지는 구조다. 제약사들은 이로 인해 신약을 출시할 때 한국이 뒤 순서로 밀리는 ‘코리아 패싱’ 현상이 반복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C제약사 관계자는 “약가가 낮아서 한국을 일부러 후순위로 둔다”며 “무리하게 낮은 약가를 책정하기에 앞서 명확한 규정과 기준을 제정하고, 제약사가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한 후 규정을 적용하는 방향으로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제약사와 약가 협상을 진행하는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이 같은 의견에 대해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건보공단 관계자는 “신약의 약가 결정은 각국 보험정책과 약가제도에 따라 다르므로, 국내 약가를 외국의 약가와 직접 비교하는 것은 불확실성이 존재한다”며 “소아암, 소아희귀질환 관련 치료제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별도 기금 조성은 타 질환과의 형평성 문제, 재원 조성과 지속가능성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선제돼야 하는 중장기적 검토가 필요한 사안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소아 암‧희귀질환 치료제는 상대적으로 치료비용이 고가인 경우가 많아 건강보험 재정영향을 고려해 제약사와 적정 약가 설정을 위한 균형점을 찾는 데 주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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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내용과 무관한 사진 / 사진 = 클립아트코리아
◇“약 개발부터 사후관리까지 전주기 개선 필요”
전문가들은 국내 소아 약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전주기에 걸쳐 개선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약 개발뿐 아니라, 허가, 약가 책정, 사후관리 등의 단계에서도 개선이 요구된다는 설명이다. 정윤택 원장은 “제약사들이 적극적으로 소아 약을 개발할 수 있도록 개발 지원과 허가 혜택, 약가 우대 등의 정책을 고민해야 할 때”라며 “안전관리 측면에서 출시 후 부작용 또한 철저히 관리·감독해야 한다”고 했다.

제약사들 또한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B제약사 관계자는 “앞으로 연구 활성화에 따라 더 많은 고가의 치료제들이 도입될 것으로 예상된다”며 “한정된 예산 내에서 효율적으로 자원을 분배하기 위한 제도와 환경 정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선 허가·심사 당국이 하나가 돼, 보다 유기적으로 움직일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C제약사 관계자는 “신약 등재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진행하다보면 심평원, 건보공단, 보건복지부가 분절적으로 각자 자기 일만 한다는 생각이 든다”며 “서로 소통하면서 큰 흐름에 맞춰 흘러갔으면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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