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

종합병원 '임종실 의무화’ 무색… 존엄한 죽음에도 차별이 있다

오상훈 기자

애매한 법 개정 탓 ‘임종실’ 설치 않는 곳 대다수
호스피스 병동선 말기 암 환자만 이용 가능
심뇌질환 등 말기 환자 위해, 일반병동에도 임종실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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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의 내용과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사진. 서울대병원의 임종실./사진=서울대병원 제공
대다수 국민이 병원 내 처치실에서 사망하고 있는 가운데, 지난해 보건당국은 의료법 시행규칙을 개정해 300병상 이상 병원의 임종실 설치를 의무화했다. 그런데도 호스피스 병동의 임종실을 보유한 국립대병원이나 보훈병원들이 일반병동 임종실을 설치하지 않고 있다. 입원형 호스피스 등록 대상인 말기 암을 제외한 수많은 환자가 임종실을 이용할 수 없을 전망이다.

◇1400병상 중앙보훈병원도 ‘일반병동 임종실’ 없어
임종실이란 사망에 임박한 환자가 가족 및 지인들과 함께 존엄한 죽음을 준비하고 심리적 안정 속에서 마지막 순간을 맞이할 수 있는 공간이다. 지속적인 치료에도 불구하고 회복하지 못해 의학적으로 임종 과정에 있다고 진단받은 환자가 이용할 수 있다. 법적으로 10제곱미터 이상의 면적을 확보해야 하며 한 명의 환자만 수용해야 한다. 우리나라 국민 4명 중 3명은 의료기관에서 죽음을 맞고 있다. 다인실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국내 의료 환경에서 환자가 삶의 마지막 순간을 가족과 함께 품위 있고 아름답게 마감하기에는 어려운 현실이다. 이에 보건복지부는 ‘의료법 시행규칙’ 개정을 통해 새롭게 개설되는 300병상 이상 종합병원과 요양병원이 한 개 이상의 임종실을 설치해야 한다는 규정을 마련했다. 해당 법안은 지난해 8월 시행됐고 이미 운영 중인 병원들은 1년간의 유예기간을 거쳐 올해 8월부터 임종실을 설치해야 한다.

그런데 헬스조선 취재 결과, 임종실 설치 의무가 있는 일부 국립대병원과 보훈병원이 임종실을 설치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1400여개 병상을 보유해 웬만한 상급종합병원보다 규모가 큰 중앙보훈병원도 임종실을 설치하지 않았다. 정확하게는 기존 ‘호스피스 병동’의 임종실이 있기 때문에 ‘일반병동’에는 임종실을 추가로 설치하지 않은 것이다. 한국보훈복지의료공단 관계자는 “임종실 설치 위치는 의료기관이 자율적으로 정할 사항이라는 복지부 의견을 근거로 기존에 있는 호스피스 임종실을 활용하기로 결정했다”며 “중앙보훈병원에 이어 부산, 광주, 대구, 대전보훈병원 모두 마찬가지고 호스피스 병동 임종실이 없는 서울요양병원만 7월 내에 일반병동 임종실을 설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실제 복지부는 호스피스 병동이 있으면 별도의 임종실을 설치하지 않아도 된다는 여지를 남겼다. 지난해 7월, ‘의료기관 내 임종실 설치 관련 Q&A’를 통해 “호스피스 전문기관으로 의료기관 내 설치된 임종실이 이미 있는데 의료법 개정으로 임종실을 추가로 설치해야 하나요?”라는 질문에 “어느 병동이든 의료법상 시설 규격을 충족한 임종실이 설치되어 있다면, 의료법 위반으로 보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다소 애매한 답변을 남긴 것이다.


◇“심장질환·뇌질환 환자는 임종실 이용 못 할 것”
문제는 현행법상 ‘호스피스 병동’의 임종실은 ‘말기암 환자’만 이용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호스피스는 입원형, 자문형, 가정형 세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연명의료결정법에 따르면 입원형 호스피스 지정을 위해서는 다른 시설과 구분되는 독립된 공간에 임종실을 설치해야 한다. 또한 입원형 호스피스는 말기암 환자만 등록할 수 있다. 즉, 병원 내에 호스피스 병동 임종실만 있다면 심장질환, 뇌질환 등 만성질환 말기 환자들은 임종실을 이용할 수 없다. 심지어 같은 병원에서 자문형 호스피스에 등록한 환자도 이용이 어렵다.

호스피스 병동을 보유했지만 일반병동 임종실이 없는 의료기관은 꽤 많다. 복지부는 의료법 개정안 발의 전 임종실 설치 의무화의 영향을 평가하기 위해 ‘규제영향분석서’를 작성했다. 해당 분석서는 국내 300병상 이상 종합병원과 요양병원 260여개 중 임종실을 설치한 기관이 70여개, 설치하지 않은 기관이 190여개소라고 명시했다. 그런데 임종실을 설치한 곳으로 분류된 70여곳 중 대부분은 일반병동 임종실이 아니라 호스피스 병동의 임종실만 가지고 있는 곳들이었다.

인천성모병원 김대균 권역호스피스센터장은 “전국 300병상 이상 병원 중 호스피스 병동과 무관한 일반병동에 임종실을 보유하고 있는 곳은 지난해 기준 10개소도 채 안 된다”라며 “이대로라면 입원형 호스피스로 지정된 상급종합병원도 임종실 설치를 안 해도 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호스피스 병동에 설치된 임종실과는 무관하게 일반병동에도 임종실이 설치돼야 입법의 취지가 무색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 종합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복지부가 1인실인 임종실을 설치함으로써 발생하는 병원의 손해를 고려한 측면도 있어 보인다”라며 “그러나 임종실은 공공 인프라로, 보호자는 물론 죽음을 지켜볼 다인실의 다른 환자들을 위한 공간이기도 하다”라고 말했다. 이어 “임종실 수가를 높여주는 등 정부가 손해를 보더라도 병원들이 임종실을 설치할 수밖에 없도록 설계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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