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만체형

비만 극복 어려운 이유? '비만도 병'이지만 진단·치료 지원 부재

최지우 헬스조선 기자

비만의 사회적 과제 좌담회

환자 스스로 病 인지하고 적극 치료 받아야
의지만으로 해결 어렵고, 지속적 관리 필요

"경제적 이유로 치료 중도 포기하는 환자 많아"
낙인 걷어내 누구나 치료 받는 사회 분위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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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6일 열린 좌담회에서 이대서울병원 가정의학과 전혜진 교수(오른쪽)가 비만 환자들을 만나 체중 관리 때 겪는 어려움에 대해 논의했다. /김지아 헬스조선 객원기자
비만은 당뇨병, 고혈압, 암 등을 유발하는 질환이지만 아직까지 사회에서는 미용적인 기준이나 개인의 의지 부족으로 치부하는 경향이 짙다. 이러한 '비만 낙인'으로 의료적 접근 대신 유행 다이어트나 자가 관리에 의존하며 반복적인 체중 감량 실패와 정신적 고통에 이르는 복합적인 어려움을 겪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이에 헬스조선은 비만에 대한 사회적 인식 변화와 실질적인 방안 마련의 필요성을 촉구하기 위한 시민 좌담회를 개최했다. 조선일보 본지를 통해 참여자를 모집했으며 체질량지수(BMI)가 25 이상인 비만 환자 네 명을 선발했다. 이들은 일상에서 체중 감량을 위한 여러 시도를 했지만 매번 실패로 이어져 비만 관리에 어려움을 겪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좌담회에는 이대서울병원 가정의학과 전혜진 교수가 함께 참석해 환자들이 겪는 어려움과 해결해야 할 사회적 과제 세 가지에 대해 이야기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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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비만학회 ‘2025 국내 비만 진료 및 관리 현황’조사 결과, 비만이 질환이라는 인식이 아직 낮다는 결과가 나왔다. /그래픽=김경아, 자료=대한비만학회
비만 환자들은 비만을 질환으로 인식하고 있는가?

세계보건기구(WHO)는 비만을 '과도한 지방 축적으로 건강을 해칠 수 있는 만성 복합질환'으로 정의한다. 대한비만학회에서도 비만을 건강에 악영향을 미치는 만성질환으로 보며, '비만병'이라는 명칭으로 변경해 질병 인식을 도와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참여자들은 비만을 '질병이 아닌 개인이나 주변 환경의 문제'로 인식하고 있었다. 좌담회에 참여한 비만 환자 박모(31·BMI 31)씨는 "가족들이 대식가인데다가 조부모님까지 함께 사는 대가족이라서 식사량 조절이 어려웠고, 결국 체중이 많이 증가해 병치레가 잦아졌다"고 말했다. 또 다른 비만 환자 이모(39·BMI 32)씨는 "전문의인 아버지도 '덜 먹고 더 뛰라'고만 조언하셨을 뿐 병원 치료를 권하는 않았다"며 "자연스레 비만을 스스로의 의지와 노력이 좌우하는 문제로 여기게 됐다"고 말했다. 황모(65·BMI 27)씨 역시 "평생을 꾸준히 운동을 했지만 날씬해 본 적은 없다"며 "비만이 질병이라는 생각도 해본 적 없다"고 했다.

전혜진 교수는 "국내 비만 치료 환경의 가장 큰 문제는 환자 본인부터가 비만을 치료가 필요한 질병으로 인식하지 못한다는 것"이라며 "비만이 건강에 전반적으로 악영향을 주는데도 적절한 치료와 관리를 놓치게 된다"고 말했다. 비만은 여러 복합적인 요인에 의해 발생한다. 원인에 따라 크게 1차성 비만과 2차성 비만으로 나뉘는데, 1차성 비만은 과도한 칼로리 섭취와 활동량 감소, 연령, 유전적 요인 등 복합적 원인으로 발생하는 비만이다. 2차성 비만은 질환이나 약제 등이 주원인이다.

스스로의 힘으로 비만을 극복할 수 있었는가?

참여자들은 식단 관리, 운동, 약 복용 등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지만 요요현상이나 체중 정체 등으로 좌절을 반복했다고 고백했다. 박씨는 "허리디스크 수술 후 다이어트를 결심했지만 정체기가 오면 식욕이 폭발해 체중이 도로 늘었다"고 말했다. 황씨는 "식사량을 줄여도 살이 잘 빠지지 않아 다이어트 식품을 꾸준히 사 먹었고, 식욕억제제까지 처방받은 적이 있지만 원하는 만큼 살을 빼서 유지해본 적은 없다"고 했다.


전혜진 교수는 "대개 비만을 단기간에 해결해야 할 숙제로 여기고, 살이 빨리 안 빠지면 포기한다"며 "비만은 지속해서 관리하고 생활 속에서 조절해 나가야 하는 '만성질환'이라는 인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식이·운동·행동 요법으로 효과가 없거나, 비만 관련 질환이 동반됐거나, 체중 감량 실패가 반복되는 경우라면 약물이나 수술 등 보다 적극적인 치료 접근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어 "병원에 내원하면 정확한 원인을 파악한 후, 개별화된 체중 감량 목표를 설정해 관리함으로써 신체 건강을 넘어 정신 건강을 개선하는 등 삶의 질 향상으로 연결될 것"이라고 말했다.

비만 환자 정모(64·BMI 32)씨는 연령대에 비해 비교적 마른 체형이었지만 유독 복부비만이 심하다고 고민을 토로했다. 그는 "TV에서 뱃살 빼준다는 추출물 제품 광고가 나올 때마다 혹해서 찾아보게 된다"며 "다이어트 제품을 믿어도되는 건지 반신반의한 심정이다"라고말했다. 이에 대해, 전 교수는 "환자 입장에서는 절박하기 때문에 그런 제품에 기대고 싶은 마음이 생길 수 있다"며 "하지만 광고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보다는 본인에게 필요한 치료가 무엇인지 의료진과 함께 판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적절한 치료를 받기 위해 어떤 변화가 필요할까?

비만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과 정책적 지원 부족에 대한 아쉬움의 목소리도 나왔다. 박씨는 "비만 치료가 비급여이기 때문에, 치료가 필요하더라도 선뜻 병원에 가기 힘들겠다"고 말했다. 황씨는 "비만이 질병으로 분류된다면 진단 검사부터 건강보험 지원이 돼야 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실제로 대한비만학회 조사에 따르면, 비만 치료 환자 중 약 44%가 중도에 약물 복용을 중단했으며 주된 이유로는 '비용 부담'을 꼽았다. 전혜진 교수는 "진료 현장에서 보면, 환자들이 치료를 지속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가 경제적 문제"라며 "비만이 질병으로 분류된 만큼 건강보험 적용이 시급해 보인다"고 했다. 그는 이어 "최근에는 효과적인 치료제들이 많이 개발되고 있는데, 비만 치료가 하루빨리 급여 적용돼 비만 환자들의 선택의 폭이 넓어지길 희망한다"며 "비만 낙인을 걷어내 누구나 치료받을 수 있는 사회 분위기 조성도 필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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