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질환
[의학 칼럼] 정신 건강 전문가가 본 실손 보험…“F코드 차별, 개선 필요하다”
사공정규 동국의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입력 2025/04/19 11:23
국제질병분류(ICD) 체계는 질병과 건강 상태를 분류하는 전 세계 공통의 기준이다. 이 체계에는 다양한 코드군이 있으며, 각 코드군은 질환의 특성에 따라 분류된다. 그중 R코드는 질병이 명확히 규명되지 않은 상태에서 증상이나 이상 소견을 기술할 때 사용하는 미확정 진단 코드 즉, 임시 진단 코드이다.
예를 들어, 복통을 호소하는 환자의 경우 원인이 불분명할 때는 R10.49(상세불명의 복통)와 같은 R코드를 사용한다. 그러나 충수염으로 확진될 경우에는 K35(급성 충수염)로 최종 진단을 내리는 것이 원칙이다.
또 다른 예로, 자폐 스펙트럼 장애는 정신건강의학과에서는 F84를 사용하지만, 일부 타과에서는 R62(발육 지연)와 같은 증상 중심 코드로 표기되기도 한다. 정신건강의학과에서는 환자의 상태를 정확히 진단하고 치료 계획을 수립하기 위해, 정신 및 행동 장애에 해당하는 정식 진단 코드인 F코드를 사용한다. 반면, R코드는 임시적인 코드이므로 가능한 한 정확한 진단명으로 전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하지만 문제는, 일부 보험사가 같은 증상임에도 R코드에는 보험금을 지급하면서, F코드가 기재되었다는 이유만으로 보험금 지급을 거부하거나 가입을 제한하는 등 부당한 관행을 지속하고 있다는 점이다.
결국 환자와 보호자는 정신의학적 진단 코드(F코드)를 받았다는 이유만으로 실질적인 불이익과 차별을 감수해야 하는 현실에 놓여 있다. 이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보험사가 자사의 이익을 우선시하며 의료적 판단과 무관한 구조적 차별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분명한 사회적 불평등이다.
보험사가 F코드를 유도해 보험금 지급을 불법적으로 거부하기 위해 과도한 검사를 요구한다면, 이는 심각한 문제다. 이는 단순히 의학적으로 필요한 검사를 시행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행위이다. 예를 들어, 어지러움을 호소하는 환자의 경우 단순히 빈혈 검사만 하는 것이 아니라, 혈압, 혈당, 전해질, 갑상선 기능, 신장 기능, 철분, 비타민, 간 기능 등 다양한 원인을 평가하는 것이 의학적 원칙이다.
언어 지연의 원인이 신경학적 문제인지, 발달적 문제인지, 감각 통합 장애인지 등을 확인하기 위해 여러 검사를 시행할 수 있다. 그러나 보험사가 이 과정을 악용해 F코드가 포함되도록 유도하고, 이를 근거로 보험금 지급을 거부한다면, 이는 명백한 비윤리이자 부도덕한 행위이다.
보험은 질병이나 사고로 인한 경제적 부담을 줄이기 위한 사회적 안전망이다. 그러나 정신건강 질환과 관련한 보험사의 태도가 보험 본연의 취지를 저버리고, 이윤만을 추구하는 비윤리적 방식으로 운영된다면, 그 보험사는 존재할 이유가 없다.
이제는 환자와 의료진이 힘을 모아, 정신건강 질환에 대한 일부 보험사의 차별을 개선하고 공정한 보험 운영을 촉구해야 한다. 보험사가 의료적 판단을 왜곡하고 환자의 권리를 침해하는 행태를 지속한다면, 이에 대한 강력한 사회적 대응과 정부 차원의 법적 규제, 정책 개선이 시급하다.
(*이 칼럼은 사공정규 동국의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의 기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