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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혈병 재발·이식술 부담 높은데… '블린사이토'가 대안 될까? [이게뭐약]

정준엽 기자

[이게뭐약] 면역항암제 블리나투모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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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역항암제 '블린사이토'/사진=암젠코리아 제공
면역항암제 '블린사이토(성분명 블리나투모맙)'가 지난 2월 적응증을 확대했다. 기존에는 병이 재발했거나 다른 약에 효과가 없는 경우에 한해 사용했는데, 이번 승인으로 최초 진단 시 초기 치료 후 완치율을 높이기 위한 단계까지 투여 가능 시기가 당겨졌다. 의료진들은 향후 이 적응증까지 급여가 확대되면 환자들의 치료 성적을 크게 개선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의료진 "블린사이토, 재발률 낮출 것으로 기대"
공고요법은 백혈병 환자에게 관해 유도요법을 시행한 후 완치율과 장기 생존율을 높이고자 실시하는 치료다. 관해 유도요법으로 많은 암세포를 죽이더라도, 현미경으로도 확인하기 어려운 '미세잔존질환'이 남아 있을 수 있어 이를 모두 제거해 재발 가능성을 최소화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기존 공고요법은 관해 유도요법에 사용된 약과 다른 세포독성항암제를 사용했으나, 치료 효과가 충분하지 않았다. 실제 전구 B세포 급성림프모구성백혈병 환자들의 1차 치료 후 5년 무재발 생존율(RFS)은 40%였으며, 미세잔존질환 음성 판정을 받은 환자 중 25%가 3년 이내에 재발을 겪었다.

의료진은 임상 3상 시험 'E1910'을 근거로, 1차 공고요법에서 블린사이토를 사용하면 재발률을 유의미하게 낮춰 치료 성과를 개선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해당 연구에 따르면, 화학요법 후 공고요법에서 블린사이토를 교차 투여한 환자 112명의 3년 전체 생존율(OS)은 85%였으며, 3년 무재발생존율 또한 80%였다.


서울성모병원 혈액내과 윤재호 교수는 "처음에 완치가 됐다고 잘못 생각하고 치료를 충분히 받지 않다가 재발되면, 1차 치료 때보다 2~3배의 노력을 기울여도 반응률이 반의반 이하로 떨어진다"며 "의료진들 사이에서 블린사이토를 1차 공고요법 단계까지 끌어당겨도 괜찮을 것이라는 가설이 있었는데, E1910은 이 가설을 최초로 입증한 연구"라고 말했다.

◇화학요법 대비 독성 낮아… "치료 중 사망 줄어들 것"
전문가들은 그동안 1차 공고요법 도중 환자가 사망하는 사례가 잦았던 것도 문제였다고 지적했다. 관해 유도요법보다 세포독성항암제의 용량을 높여 투여한 것이 원인으로, 실제 세포독성항암제의 독성을 견디지 못하고 치료 도중 사망하는 환자가 많았다.

블린사이토의 적응증 확대를 반기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블린사이토는 백혈병 세포의 항원(CD19)과 면역 T세포 표면 항원(CD3)을 동시에 연결하는 이중항체(BiTE) 기전을 가졌다. 쉽게 말하면 항체에 두 개의 머리가 있는데, 각각의 머리가 백혈병 세포 항원과 면역세포 항원에 연결돼 서로 가깝게 위치하고, 면역이 활성화된 T세포는 백혈병 세포를 표적해 사멸을 유도한다. 이 기전 덕분에 블린사이토는 정상세포의 사멸을 최소화하면서 종양세포를 사멸할 수 있어 일반 항암제보다 독성이 낮다고 평가받는다.
윤재호 교수는 "과거에는 공고요법에서 너무 강한 항암 치료를 반복하다 보니 환자가 사망하는 사례가 많이 생겼다"며 "블린사이토가 공고요법에 도입되면 독성이 높은 항암제 사용을 줄이면서 효과는 그 이상으로 가져갈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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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와 무관한 사진/사진=헬스조선DB
◇조혈모세포 이식술 부담 줄어들 수도
의료진은 블린사이토가 조혈모세포 이식술에 대한 부담 또한 덜어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조혈모세포 이식술은 다른 사람의 몸에 있는 T 림프구를 환자 몸에 이식하는 수술이다. 관해 유도요법-공고요법으로 암세포를 사멸한 후 정상 기능을 가진 면역세포를 다시 심기 위해 사용된다.

다만, 조혈모세포 이식술은 두 가지 한계가 있다고 알려졌다. 첫 번째는 이식 후 몸에서 거부반응이 생길 수 있다는 점이다. 조혈모세포 이식술은 면역학적 부작용을 막기 위해 면역 체계를 완전히 바닥낸 상태에서 이뤄진다. 이 때문에 수혈된 림프구가 면역 기능이 떨어진 환자의 정상세포를 공격해 여러 부작용을 일으키는데, 이를 ‘이식편대숙주반응’이라고 한다.

화순전남대병원 혈액내과 정성훈 교수는 "이식편대숙주반응을 겪는 환자들은 숨을 제대로 못 쉬거나, 간 수치가 조절되지 않거나, 설사가 조절되지 않는다"며 "눈이나 입에 반응이 생길 경우 눈이 안 보이거나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하며, 심할 경우 백혈병이 재발하지 않더라도 사망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두 번째로, 일시적으로 면역 체계가 완전히 바닥난 만큼 감염으로 인한 합병증이 빈번하게 발생한다. 이로 인해 70세 이상 고령자는 치료 과정에서 조혈모세포 이식술을 고려하지 않으며 ▲당뇨 합병증 ▲고혈압 ▲간질환 ▲뇌졸중 ▲콩팥병 등이 있는 환자들 또한 조혈모세포 이식술을 잘 진행하지 않는다.

물론 블린사이토 공고요법을 받는다고 해서 100% 조혈모세포 이식술을 받지 않아도 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임상시험에서 블린사이토 공고요법을 받은 환자들이 조혈모세포 이식술을 받은 환자와 비슷하거나 더 높은 치료 성적을 보여준 만큼, 조혈모세포 이식술의 부담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의료진의 설명이다.


윤재호 교수는 "조혈모세포 이식술 과정에서 환자들이 적게는 10%, 많게는 25%까지 합병증으로 사망하기도 한다"며 "블린사이토 공고요법은 미세잔존질환이 없는 환자가 이식술까지 시행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완치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높였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급여 조건, 임상 결과 최대한 반영해야"
블린사이토는 국내에서 1차 공고요법 이외에 두 가지 적응증을 추가로 갖고 있고, 두 적응증에 대해 보험급여도 적용되고 있다. 의료진은 1차 공고요법 적응증에도 급여 적용이 확대된다면, 고가의 약제에 대한 환자들의 접근성이 높아져 더 많은 환자들이 재발 없이 첫 치료에서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고가의 약제가 급여 목록에 오를 때는 임상시험 조건 전체를 보장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예컨대 임상시험에서는 약의 투여 횟수를 4회로 설정했으나, 급여를 적용할 경우 절반인 2회만 비용을 지원하고 나머지는 환자가 비급여로 부담하는 방식이다. 이에 일각에서는 환자의 접근성을 최대한 보장하기 위해 임상시험 결과를 급여에 그대로 적용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성훈 교수는 "임상 3상 연구에서 블린사이토는 공고요법으로 4주기를 투여했지만, 워낙 고가의 약제다 보니 2주기까지만 보험을 인정해 주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다"며 "연구를 통해 입증된 치료 효과가 국내 환자들에게 그대로 전달되려면 연구 결과를 최대한 그대로 반영해주는 방안이 고려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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