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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코 애호가들 큰일” 카카오나무 멸종 중… ‘실험실 초콜릿’ 대안될 수 있을까?

이슬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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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클립아트코리아
밸렌타인데이가 끝나길 기다렸다. 행복과 사랑을 가져다준 달콤한 초콜릿의 씁쓸한 말로에 관해 이야기해야 해서다.

롯데웰푸드는 지난해 상반기 초콜릿 제품 가격을 올렸는데, 오늘 9.5% 더 올렸다. 오리온, 해태는 물론 네슬레 등 전 세계적으로 초콜릿 가격을 올리지 않은 기업이 없다. 있다면, 용량을 줄였다. 이유는 초콜릿 원료인 코코아 원물 가격이 고공행진 중이기 때문이다. 코코아 선물 가격이 수십 년간 톤당 2000달러대였는데, 지난해 5~6배 수준으로 급등한 뒤 유지되다가 지난 15일 기준 1만 325달러를 기록했다(미국 ICE 선물거래소).

가격이 다시 이전으로 돌아갈 가능성은 희소하다. 기후 위기, 고환율, 고유가 등 당장 해결하기 힘든 원인으로 올랐기 때문이다. 심지어 카카오나무가 멸종될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코코아의 가공 전 원재료를 카카오라고 부른다.

다행히 여러 대안이 제시되고 있다. 서울과학기술대 식품생명공학과 서승오 교수는 "전 세계인이 사랑하는 간식인 초콜릿이 더 이상 맛 볼 수 없는 귀한 식품이 된다면 매우 안타까울 것"이라며 "여러 나라에서 기술을 총동원해 세포 배양 초콜릿, 코코아 없는 초콜릿 등을 개발하고 있다"고 했다.


◇카카오나무, '기후 변화'로 멸종 중
코코아 가격이 오른 주요 이유는 '기후 변화'다. 전 세계 코코아는 서아프리카에서 70% 생산된다. 최근 서아프리카에 가뭄과 엘니뇨(해수 온난화 현상) 현상이 빈번하게 나타났고, 병충해가 덮쳐 수확량이 많이 감소했다. 가나는 최근 수확량이 약 35%가량 떨어졌다. 이대로 온실가스가 배출됐다간 2050년에 코코아나무는 멸종한다.

고질적인 시장 구조로 문제 개선도 힘든 상황이다. 서아프리카는 코코아를 국영사업으로 운영하고 있는데, 선계약된 가격으로 각종 글로벌 식품기업에 코코아를 납품한다. 이때 매겨진 농부들의 임금은 턱없이 적다. 이 가격으로 농부들은 종자 개량은커녕 약을 쓰거나 비료를 뿌리기도 어려운 형편이다. 죽은 나무를 대신할 새로운 나무를 심기도 벅찼다. 상황이 악화한 지금에서야 나무 심는 걸 돕겠다는 움직임이 일고 있지만, 나무가 열매를 맺을 때까지 걸리는 시간은 적어도 수년이 걸린다. 이렇게 공급은 줄어들었는데, 중국, 인도 등에서 초콜릿 수요가 크게 늘면서 가격 인상 폭은 지속해 증가하고 있다.

◇코코아 없는 초콜릿·실험실 초콜릿… 전 세계 과학자가 찾은 지속 가능한 생산법
과학자들이 찾은 방법은 ▲코코아 없는 초콜릿(대체 초콜릿) ▲실험실 초콜릿(세포배양 초콜릿)이다. 서승오 교수는 "기존 농업 생산방식을 대체한다기보다는 과학기술을 이용해, 지속 가능한 생산 방법을 개발함으로써 코코아 시장 안정화에 기여하는 것"이라며 "생산 방식이 다각화된다면 갑자기 생긴 생산 환경 변화에 잘 대응할 수 있다"고 했다.

코코아 없는 초콜릿은 말 그대로 코코아를 다른 원료로 대체해 초콜릿 맛을 낸 것이다. 주로 캐롭, 보리, 루쿠마, 잭프루트 씨앗, 치커리 루트, 해바라기씨, 귀리 등이 사용된다. 캐롭은 콩과 식물로, 초콜릿과 비슷한 향이 나고 더 달다. 루쿠마는 페루 과일로 캐러멜 향이 나고, 치커리 루트는 초콜릿의 쓴맛을 낼 때 활용된다. 주로 온실가스 배출량과 물소비량을 줄일 방법으로 대체 초콜릿이 개발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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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스타트업 캘리포니아 컬쳐드가 공개한 세포 배양 초콜릿 제조 사진./사진=캘리포니아 컬쳐드
실험실 초콜릿은 실험실에서 코코아콩 세포를 배양해 만든 것이다. 코코아콩 씨앗에서 세포를 추출해, 세포가 잘 자라는 환경을 조성한 배양기에 넣는다. 카카오나무가 좋아하는 고온 다습한 환경과 당분 등도 제공한다. 서승오 교수는 "카카오를 구성하고 있는 세포를 대량으로 만들어 모아 가공해서 코코아로 사용하는 것"이라며 "농약이나 비료 등을 사용하지 않아도 돼 친환경적일 것"이라고 했다. 카카오 열매를 수확하려면 7개월가량이 걸리지만, 배양기에서 키우면 3~4일이면 초콜릿 원료를 얻을 수 있다. 가톨릭대 생명공학과 김필 교수는 "세포 배양 초콜릿에는 폴리페놀 등 초콜릿에 들어있는 몸에 좋은 성분을 강화하거나, 다른 성분을 배합하는 등으로 강화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했다.

◇맛 비슷하지만… 실험실 초콜릿, 가격 비싸
맛이 비슷할까? 대체 초콜릿은 아무래도 카카오 세포가 직접 활용된 게 아니므로 한계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식물성 대체육이 고기 맛을 낸 것보다는 비슷한 맛이 날 가능성이 크다. 코코아 자체가 식물체고, 초콜릿은 가공품이기 때문이다. 독일 스타트업 플래닛에이푸드 창업자는 "소비자들이 일상적으로 접하는 M&M, 스니커즈 등 대중적인 제품과 '초비바' 사이에는 맛의 차이가 없다"며 "일반적인 간식용 초콜릿은 코코아콩 자체가 아닌 가공 과정에서 맛의 80%를 구현하므로, 초콜릿을 만드는 데 코코아콩이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초비바란 플래닛에이푸드에서 만든 대체 초콜릿 제품으로, 귀리와 해바라기씨를 혼합해 발효하고 볶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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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스타트업 플래닛에이푸드가 생산하고 있는 대체 초콜릿 '초비바'./사진=플래닛에이푸드
실험실 초콜릿은 대체 초콜릿보다 더 맛이 비슷할 것으로 보인다. 카카오나무에서 수확하지 않았을 뿐, 코코아콩과 유전적으로 동일하기 때문이다. 서울대 동물미생물학과 김영훈 교수는 "기본적으로 맛과 품질은 동일할 것"이라면서도 "실험실 배양·대량생산 조건 등에 따라 맛이 변해, 실제 초콜릿 제품을 생산할 땐 추가적인 품질 보완 기술이 얼마나 잘 개발됐는지에 따라 완성도가 달라질 것"이라고 했다. 지난 2021년 스위스 취리히대 연구팀이 실험실 초콜릿 개발을 성공했는데, 향이 기존 초콜릿보다 더 강하다고 알려졌다. 식감은 기존 초콜릿과 같았다.

다만, 가격이 문제다. 대체 초콜릿은 몰라도 세포배양 초콜릿은 기존 초콜릿보다 다소 비싸게 형성될 것으로 보인다. 당장 실험실에서 초콜릿을 만드는 데 드는 비용이 기존 초콜릿보다 여섯 배가량 더 많이 든다. 서승오 교수는 "세포 생산 비용이 많이 들고, 생산 수율도 농업 방식보다 낮고, 세포로부터 카카오 성분을 추출해 가공하는 새 공정 과정이 들어가므로 아무래도 가격은 기존 초콜릿보다 높을 수밖에 없다"면서도 "기술 개발이 이뤄지고, 공장에서 대규모 세포배양으로 생산하게 된다면 점점 판매 가격이 내려갈 것"이라고 했다.


◇미국·유럽에선 이미 판매 중… 우리나라는 멀었다
생각보다 가까운 미래에 대체 초콜릿과 세포 배양 초콜릿을 맛볼 수 있다. 이미 대체 초콜릿은 판매되고 있고, 세포 배양 초콜릿도 아직 대량 판매는 이뤄지고 있지 않지만, 곧 시중에 풀릴 예정이다.

대체 초콜릿 사업은 '코코아 테크'로 불리며 미국과 유럽에서 뜨고 있다. 플래닛에이푸드가 대표적인데, 최근 약 431억 원 규모 시리즈 B를 투자 유치했다. 현재 독일·오스트리아·스위스를 기반으로 연간 2000톤을 생산하고 있는데, 향후 영국·프랑스·미국에 진출할 계획이다. 또 미국 스타트업 보야지푸드도 미국 농무부로부터 최근 약 345억 상당의 대출 보증을 받았고, 현재까지 약 1620억 원 규모의 투자를 유치했다. 보야지푸드는 초콜릿에 있는 화합물을 분자 단위까지 분석하고 파악한 후, 포도씨·해바라기씨 등 코코아가 아닌 원료에서 빼낸 성분을 조합해 다시 풍미, 맛 등이 초콜릿과 비슷한 대체 초콜릿을 만들었다. 이 외에도 이탈리아 포에버랜드, 영국 WNWN 푸드 랩스 등이 지난해 말 각 약 51억 원, 83억 원의 투자를 유치하며, 캐롭을 주원료로 대체 초콜릿을 개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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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스타트업 캘리포니아 컬쳐드가 공개한 프로토 타입 세포 배양 초콜릿./사진=캘리포니아 컬쳐드
세포배양 초콜릿 시장도 대체 초콜릿 시장보다는 늦지만, 활발한 투자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미국 스타트업 캘리포니아 컬쳐드는 올해 세포배양 초콜릿 제품 출시를 예고했다. 코코아의 항산화 성분인 플라바놀을 함량을 높인 세포 배양 코코아 파우더를 일본 식품 기업 메이지를 통해 판매할 예정이다. 스위스 취리히대 연구팀은 2년 이내 상업화가 가능하다고 했고, 이스라엘 기업 셀레스트 바이오는 세포 배양 코코아 분말·버터 생산으로 약 65억 원 규모의 펀딩을 확보했다.


한국은 아직 국외 상황을 관망하는 단계다. 대체 초콜릿은 HN노바텍이 지난해 들깨, 메밀껍질 등으로 개발하고 있다고 했지만, 세포배양 초콜릿은 시도한다는 기업조차 알려진 바 없다. 김필 교수는 "국내에서도 개발할 수 있는 기술은 충분히 있다"면서도 "시장 규모가 작고, 시장 수요가 크지 않고, 제조 관련 규격 가이드라인 등도 없어, 한국의 코코아테크 시장 전망을 논하긴 어려운 상황"이라고 했다. 국내 최대 초콜릿 제조 기업에서는 초콜릿 시장의 미래를 어떻게 준비중인지 물었다. 롯데웰푸드 관계자는 "중단기적으로 가나 등에 농업 기술을 증진하기 위해 투자하고, 묘목을 기부·지원 하고 있다"며 "대체 초콜릿 관련해서는 롯데중앙연구소에서 관련해 기술을 개발하고 있지만, 배합이 달라지면 맛도 달라져 당장 적용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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