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애매한 애도'를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송유진 강원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임상조교수
입력 2025/02/16 22:03
[당신의 오늘이 안녕하길]
자살과 애도에 관한 이야기에 앞서 약간은 개인적인 이야기를 꺼내 보려 합니다. 사실 저에게는 학창 시절 자살한 친구가 있습니다. 아니, 친구라고 하기에는 애매하고 아마도 동급생이라고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일 수도 있습니다. 저는 친구라고 생각하는데, 그건 그 애가 죽고 난 이후부터고, 그 애가 살아 있을 때는 그저 같은 반 아이라고만 생각했으니까요.
그애도 저를 친구라고 생각했을지, 아니면 그냥 아는 사람으로 생각했을지 궁금합니다. 정리해서 다시 말해보면, 저와 그 애는 애매한 사이였다고 표현하는 게 맞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최근엔 거의 잊고 지냈는데, 대학교를 입학하고 20대 초반, 그리고 꽤 오랜기간 동안 그 애는 제 꿈에 1년에 1~2번씩 나타났습니다.
당시에는 싸이월드가 가장 유명한 SNS였습니다. 멀리 떨어지게 된 친구들끼리도 소통할 수 있는 좋은 도구였지요. 제가 갑자기 싸이월드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그 애가 죽고 나서 종종, 매년 1~2번 그 애의 꿈을 꾸게 되면 다음날 그 애의 싸이월드에 몰래 들어가 보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우리는 일촌을 맺은 적도 없기 때문에 '몰래' 들어갔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습니다. 아무튼 그렇게 알 수 없는 불편함과 두려움, 불안을 느끼면서 그 애의 홈페이지에 들어가보면, 신기하게도 수많은 그 애의 친구들이 추모의 글들을 올려 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정말 신기한 경험이었는데, 그 애의 생일이나 기일을 알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제가 그 페이지를 찾아가게 되는 날은 항상 생일 혹은 기일 무렵이었습니다. 그 애의 홈페이지에는, 엄청나게 망설이고 들어가 보았던 제가 무색해질 정도로 매일 같이 그 애에게 편지를 남기거나, 축하 또는 그리움을 전하는 많은 친구와 지인들의 마음이 담겨 있었습니다. 20살의 저는, 그때 몹시 충격을 받았습니다. 왜 나는 이렇게 그 애의 페이지에 들어가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불편하고 힘든데, 저 친구들은 그렇게 편하고 정답게 마음을 나눌 수 있는 것일까? 또 한편으로는 그 애와, 또 그 애의 지인들과 다 함께 좋은 소식을 나누고, 여전히 좋아하는 노래를 공유하며 그 애와의 추억을 쌓아갈 수 있는 시간이 이렇게나 많은데! 왜 나는 망설이고 고민하느라 시간을 그렇게나 많이 사용한 걸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자살 유가족은 자살한 사람의 남겨진 가족들을 의미합니다. 일반적인 유가족과 구분해서 자살 유가족이라고 표현하는 이유는, 죽음의 형태에 따라 슬픔의 반응이 다르게 나타나며, 자살은사회적 편견과 죄책감을 동반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자살 유가족들의 슬픔은 증폭되고, 다른 유가족에 비해 자신들의 상태를 표현할 기회가 부족해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자살은 다른 질환이나 사고로 발생하는 사망과 매우 다르며, 유가족들의 상실감과 고통, 편견에 대한 두려움, 고인에 대한 죄책감, 분노 같은 것들이 복잡하게 얽혀, 때로는 전쟁이나 범죄를 경험한 사람들이 느낄 정도의 극심한 스트레스를 유발할 수 있습니다. 어떤 연구에 따르면, 자살 유가족은 자살한 사람이 느꼈던 고통과 같은 정도의 심리적 고통을 느낄 수 있으며, 자살자를 애도하는 과정에서 자살 사고를 경험하기도 합니다. 즉, 자살은 2차적 자살을 발생시킬 수 있는 위험이 높으며, 특히 가장 가까운 유가족들은 그러한 위험에 무방비로 노출됨에도 불구하고 죄책감이나 그리움과 같은 고인과 관련된 복잡한 감정들 때문에 자신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고, 또 제대로 애도하며 슬픔을 흘려보내지도 못하는 이중의 고난에 빠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지속애도장애(Prolonged Grief Disorder; PGD)란 사별 후 부적응적 증상이 6개월 이상 지속되고 기능 손상이 심각한 경우를 뜻합니다. 부적응적 증상이란 지나치게 강렬한 슬픔과 상실감, 공허감, 고인에 대한 집착, 예를 들면 고인과 관련된 생각이나 기억, 사물에 과도하게 집착하고 몰입하는 것, 반복적인 후회와 지나친 죄책감, 사회적 고립과 삶의 의미 상실, 반복적이고 강렬한 자살 사고 등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이러한 것들로 인해 현재 자신의 일상생활이나 직장 및 사회생활, 대인관계에 광범위한 영향을 받고 있는 상태를 지속애도장애라 말합니다. 애도와는 구별되는 지속애도장애의 특징은, 시간이 오래 지나도 감정들이 희석되거나 좋았던 기억과 함께 갈무리되지 못한 채, 고인의 사망한 그 자리에 머물러 지속적으로 괴로워하는 것입니다. 애도라는 것은 슬퍼하고 괴로워하는 것만을 포함하지 않습니다. 애도 과정(mourning process)이란, 상실 뒤의 슬픔과 회복이라는 두 가지 차원의 과정을 뜻합니다. 스트로베와 셧(Stroebe & Schut, 1999)의 이중과정모델(dual process model)에 따르면, 상실 경험 자체에 초점을 맞추는 상실 중심의 과정과, 회복에 초점을 둔 과정이 동시에 일어나야 합니다. 멈춘 자리에서 다시 일어나 삶을 향해 나아가며, 온전한 고인의 모습을 기억하고 추억하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애도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저의 경우는 어떨까요? 저는 사전적 의미의 자살 유가족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해서 가까운 사이였나 하면, 꼭 그렇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고인이 가끔 꿈에 나타나고, 또 그로 인해서 마음이 복잡해지는 걸 보면 심리적으로는 가까운 사이였는지도 모릅니다. 최근 자살 유가족을 넘어 자살로 인해 고통을 받는 사람들, 즉 배우자, 가족, 친구, 이웃 등 가까운 사이였던 사람들을 포괄해서 자살 생존자(suicide survivors), 또는 자살 사별자(Suicide Bereaved)라는 용어들도 제안되고 있습니다. 최근 제안되고 있는 여러 가지 용어들은 아마도 저와 같은 '애매한' 거리에 있기 때문에, 고인의 죽음 이후에 제대로 슬퍼하지도, 또 제대로 추억하지도 못하는 사람들을 함께 보듬기 위해서라는 생각이 듭니다. 또한 더욱 가까운 거리에서, 더 큰 혼란과 슬픔으로 인해 고통 받고 있는 자살 유가족들을 지지하고, 함께 애도와 사랑을 나눌 수 있도록 격려하는 차원에서의 목적도 있을 것입니다.
[본 자살 예방 캠페인은 보건복지부 및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대한정신건강재단·헬스조선이 함께합니다.]
그애도 저를 친구라고 생각했을지, 아니면 그냥 아는 사람으로 생각했을지 궁금합니다. 정리해서 다시 말해보면, 저와 그 애는 애매한 사이였다고 표현하는 게 맞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최근엔 거의 잊고 지냈는데, 대학교를 입학하고 20대 초반, 그리고 꽤 오랜기간 동안 그 애는 제 꿈에 1년에 1~2번씩 나타났습니다.
당시에는 싸이월드가 가장 유명한 SNS였습니다. 멀리 떨어지게 된 친구들끼리도 소통할 수 있는 좋은 도구였지요. 제가 갑자기 싸이월드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그 애가 죽고 나서 종종, 매년 1~2번 그 애의 꿈을 꾸게 되면 다음날 그 애의 싸이월드에 몰래 들어가 보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우리는 일촌을 맺은 적도 없기 때문에 '몰래' 들어갔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습니다. 아무튼 그렇게 알 수 없는 불편함과 두려움, 불안을 느끼면서 그 애의 홈페이지에 들어가보면, 신기하게도 수많은 그 애의 친구들이 추모의 글들을 올려 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정말 신기한 경험이었는데, 그 애의 생일이나 기일을 알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제가 그 페이지를 찾아가게 되는 날은 항상 생일 혹은 기일 무렵이었습니다. 그 애의 홈페이지에는, 엄청나게 망설이고 들어가 보았던 제가 무색해질 정도로 매일 같이 그 애에게 편지를 남기거나, 축하 또는 그리움을 전하는 많은 친구와 지인들의 마음이 담겨 있었습니다. 20살의 저는, 그때 몹시 충격을 받았습니다. 왜 나는 이렇게 그 애의 페이지에 들어가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불편하고 힘든데, 저 친구들은 그렇게 편하고 정답게 마음을 나눌 수 있는 것일까? 또 한편으로는 그 애와, 또 그 애의 지인들과 다 함께 좋은 소식을 나누고, 여전히 좋아하는 노래를 공유하며 그 애와의 추억을 쌓아갈 수 있는 시간이 이렇게나 많은데! 왜 나는 망설이고 고민하느라 시간을 그렇게나 많이 사용한 걸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자살 유가족은 자살한 사람의 남겨진 가족들을 의미합니다. 일반적인 유가족과 구분해서 자살 유가족이라고 표현하는 이유는, 죽음의 형태에 따라 슬픔의 반응이 다르게 나타나며, 자살은사회적 편견과 죄책감을 동반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자살 유가족들의 슬픔은 증폭되고, 다른 유가족에 비해 자신들의 상태를 표현할 기회가 부족해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자살은 다른 질환이나 사고로 발생하는 사망과 매우 다르며, 유가족들의 상실감과 고통, 편견에 대한 두려움, 고인에 대한 죄책감, 분노 같은 것들이 복잡하게 얽혀, 때로는 전쟁이나 범죄를 경험한 사람들이 느낄 정도의 극심한 스트레스를 유발할 수 있습니다. 어떤 연구에 따르면, 자살 유가족은 자살한 사람이 느꼈던 고통과 같은 정도의 심리적 고통을 느낄 수 있으며, 자살자를 애도하는 과정에서 자살 사고를 경험하기도 합니다. 즉, 자살은 2차적 자살을 발생시킬 수 있는 위험이 높으며, 특히 가장 가까운 유가족들은 그러한 위험에 무방비로 노출됨에도 불구하고 죄책감이나 그리움과 같은 고인과 관련된 복잡한 감정들 때문에 자신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고, 또 제대로 애도하며 슬픔을 흘려보내지도 못하는 이중의 고난에 빠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지속애도장애(Prolonged Grief Disorder; PGD)란 사별 후 부적응적 증상이 6개월 이상 지속되고 기능 손상이 심각한 경우를 뜻합니다. 부적응적 증상이란 지나치게 강렬한 슬픔과 상실감, 공허감, 고인에 대한 집착, 예를 들면 고인과 관련된 생각이나 기억, 사물에 과도하게 집착하고 몰입하는 것, 반복적인 후회와 지나친 죄책감, 사회적 고립과 삶의 의미 상실, 반복적이고 강렬한 자살 사고 등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이러한 것들로 인해 현재 자신의 일상생활이나 직장 및 사회생활, 대인관계에 광범위한 영향을 받고 있는 상태를 지속애도장애라 말합니다. 애도와는 구별되는 지속애도장애의 특징은, 시간이 오래 지나도 감정들이 희석되거나 좋았던 기억과 함께 갈무리되지 못한 채, 고인의 사망한 그 자리에 머물러 지속적으로 괴로워하는 것입니다. 애도라는 것은 슬퍼하고 괴로워하는 것만을 포함하지 않습니다. 애도 과정(mourning process)이란, 상실 뒤의 슬픔과 회복이라는 두 가지 차원의 과정을 뜻합니다. 스트로베와 셧(Stroebe & Schut, 1999)의 이중과정모델(dual process model)에 따르면, 상실 경험 자체에 초점을 맞추는 상실 중심의 과정과, 회복에 초점을 둔 과정이 동시에 일어나야 합니다. 멈춘 자리에서 다시 일어나 삶을 향해 나아가며, 온전한 고인의 모습을 기억하고 추억하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애도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저의 경우는 어떨까요? 저는 사전적 의미의 자살 유가족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해서 가까운 사이였나 하면, 꼭 그렇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고인이 가끔 꿈에 나타나고, 또 그로 인해서 마음이 복잡해지는 걸 보면 심리적으로는 가까운 사이였는지도 모릅니다. 최근 자살 유가족을 넘어 자살로 인해 고통을 받는 사람들, 즉 배우자, 가족, 친구, 이웃 등 가까운 사이였던 사람들을 포괄해서 자살 생존자(suicide survivors), 또는 자살 사별자(Suicide Bereaved)라는 용어들도 제안되고 있습니다. 최근 제안되고 있는 여러 가지 용어들은 아마도 저와 같은 '애매한' 거리에 있기 때문에, 고인의 죽음 이후에 제대로 슬퍼하지도, 또 제대로 추억하지도 못하는 사람들을 함께 보듬기 위해서라는 생각이 듭니다. 또한 더욱 가까운 거리에서, 더 큰 혼란과 슬픔으로 인해 고통 받고 있는 자살 유가족들을 지지하고, 함께 애도와 사랑을 나눌 수 있도록 격려하는 차원에서의 목적도 있을 것입니다.
[본 자살 예방 캠페인은 보건복지부 및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대한정신건강재단·헬스조선이 함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