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SNS에서 '자해'를 고백하는 아이들… 우리가 돕는 법은 무엇일까요?

신은지 서울특별시보라매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임상심리 전문가 | 강등현 서울특별시보라매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진료조교수

[당신의 오늘이 안녕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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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게티이미지뱅크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일하다 보면 자해하는 청소년을 생각보다 자주 만납니다. 다만 자발적으로 보고하는 경우가 드물어 꽤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그 사실을 알게 될 때가 많습니다. 그렇습니다. 다른 무엇보다도 자해를 고백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정신적으로도 힘들지만, 이를 위해 입을 떼고, 단어가 나오게 하는 일련의 신체적 활동이 고통으로 느껴질 정도로 힘들 수 있습니다.

자해(self-harm)란 자신의 신체에 고의로 상처를 입히는 행동입니다. 대개 초기 청소년기에 처음 발생해 성인기에 이르기까지 지속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자해 관련 선행 연구를 살펴보면 많게는 청소년 5명 중 1명, 보수적으로 봐도 10명 중 1명이 자해를 한 경험이 있다고 하니 결코 가볍게 넘길 문제가 아닙니다. 자해에 관한 가장 단순한 이해 중 하나는 다른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자 하는 행동이라는 것입니다. 그럴 수도 있겠으나 그게 전부는 아닙니다. 자기 파괴의 동기를 실제 행동에 옮기기까지는 다양한 원인과 환경적 요소가 관여하며 당사자들이 가장 흔하게 보고하는 자해의 동기 중 하나는 '짜증이 나는데 할 수 있는 게 없어서'와 같이 정서 조절을 위한 경우일 때가 많습니다. 앞서 말했듯 당사자들은 실제 생활에서 자해를 했다는 사실을 주변에 드러내지 않는 경우가 많고 자해로 인한 상처를 타인이 보게 되면 상당한 수치심이나 취약감을 경험합니다.

다만 실제 생활에서는 자해 행동을 숨기더라도, 사회관계망서비스(이하 SNS)에서는 다양하고 적극적인 상호작용 시도가 이루어집니다. 가령 '자해계(자해 계정)' '우울계(우울 계정)' '정병계(정신병 계정)' 등에 자해한 사진을 게시하거나 자신을 소개하는 식으로 말이죠. 왜 아이들은 온라인에서 자신의 자해 행동을 고백하는 걸까요? 이에 답할 수 있게 된다면 자해를 하는 청소년의 심중에 더 가까워질 수 있을까요?

자해의 다양한 측면을 다룬 단행본 《자해를 하는 마음》에 따르면 자해 행위를 고독하고 비밀스러운 것으로 간주하던 사회의 분위기가 2000년대 초 인터넷이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하면서 반전됐다고 합니다. '자해를 한다'는 정체성을 가진 이들이 온라인 커뮤니티 상에서 서로를 인지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학교를 비롯한 사회에서 자해 행동은 여전히 교정해야 하는 문제 행동으로 간주되며, 우리는 이들을 쉽게 '문제아'로 낙인 찍습니다. 이런 분위기에서 자해 행동을 고백하게 될 경우 개인의 이미지는 점점 더 부정적으로 바뀌고 또래 관계도 타격을 입게 됩니다. 그러나 SNS 상에서는 다릅니다. 자해한 사진을 올리고 타인의 계정을 보다 보면 이와 같은 행동이 크게 일탈된 것이 아니며 새로운 감정표현 방식의 일부라고 느끼기도 합니다. 더하여 불특정 다수에게 자신의 우울감을 호소하고 위로의 댓글을 달거나, 공감의 '맘찍(마음에 들어요)'을 남김으로써 위안을 얻기도 합니다. 온라인에서는 나의 나약함을 드러내도 공격의 대상이 되기보다는 위로를 받는 등 마음을 기댈 수 있는 아지트의 기능이 이뤄지고 있는 것입니다.

자신과 비슷한 가치관과 정체성을 지니는 이들을 만나고 교류하는 것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이를 문제 삼고 부정하는 것은 사회를 구성하는 다양한 정체성의 존재 가치와 잠재력을 제한하는 일이 될 것입니다. 다만 정체성을 공유하고 서로의 존재를 인지하는 것을 넘어서 자신을 해하는 행동이 강화되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의 문제로서, 예방이 필요한 영역입니다. SNS에서 정보가 공유되는 방식인 사진, 동영상은 문자로 제시되는 정보보다 즉각적이고 생생한 생리적 반응을 유발하고 자해 충동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을 가속화합니다. 또한 SNS를 통해 다양한 자해 수단을 접하게 되는 것도 문제입니다. 해시태그를 통해 관련 게시글을 묶어 보는 것에 더해 비슷한 계정이나 컨텐츠를 추천해주는 알고리즘 기능을 고려한다면, 청소년들이 자신들이 원하는 것 이상으로 무분별하게 자해 관련 컨텐츠에 노출되는 것이 불가피합니다. 아울러 온라인 상에서의 교류가 일시적인 소속감과 안정감을 줄 수 있지만 자해 행동과 관련한 보다 근본적인 문제인 정서 조절의 어려움을 해결해주지는 못합니다. 또한 현실 세계에서의 문제에 대한 회피를 지속시킨다는 점에서 궁극적인 해결책이 되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현대 사회에서 소셜 미디어가 지니는 파급력과 일부 순기능을 고려했을 때 사용 자체를 막는 것은 어려울 것이며 보다 전문적이고 정교한 접근이 필요해 보입니다. 우선 소셜 미디어 플랫폼은 자체적인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좀 더 적극적인 대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가령 현재는 유해한 키워드 검색과 사진 열람을 제한하고 개인이 추가적인 조작을 해야만 도움 관련한 정보를 제공받을 수 있는데요. 이에 머무르기 보다는 키워드 검색 시에 정신건강 전문가가 제작한 카드뉴스 등을 상위에 노출시키거나 유해한 컨텐츠의 유사 알고리즘에 포함되게 하는 등의 적극적인 조치가 필요해 보입니다. 즉 단회적이고 소극적인 '빼기'식 규제가 아닌 '더하기'식 관여에 힘써야 할 것입니다. 정신건강 관련 전문가는 온라인에서 위기청소년을 찾아내고 도움을 제공하는 여성가족부의 사이버 아웃리치 사업 등에 관심을 기울이고 참여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아울러 학교나 지역 사회에서 자해 행동 고위험군을 선별할 수 있는 평가 도구를 개발하고 치료로 연계되는 프로세스를 마련해야 합니다. 자해 학생들이 치료와 관련한 도움 요청을 자발적으로 하지 않는 특성이 있음을 고려한다면, 누가 도움을 필요로 하는 지 발견하는 것부터 주요한 안건이 될 수 있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병원, 상담센터, 지역 사회가 협력해 자조(self-help) 집단 등의 프로그램을 마련해야 합니다. 온라인 상에서 자해 행동을 공유하는 행위의 기저에 '별나 보이지 않고 싶음'과 같은 욕구가 자리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비슷한 고민을 지닌 또래를 현실 세계에서 만나는 과정이 크게 도움이 될 것입니다.

어떤 문제에 대한 하나의 완벽한 설명도, 완벽한 해답도 없다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특히 자해와 자살 앞에서는 한마디 말을 얹는 것도 주저하게 됩니다. 다만 청소년들이 자해를 중단하기로 결심하는 과정에서 주변인들이 자신을 이해하려 노력하는 모습을 본 것이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포기하고 싶지 않아집니다. 심각한 정신과적 문제가 없더라도 누구나 자해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럴 수 있다'고 해서 '그래도 된다'는 것은 아닙니다. 이런 우려가 '귀찮은 잔소리' 정도로 그치지 않게, 우리가 세심한 이해를 위해 노력하고 그가 전문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안내자의 역할을 해주면 어떨까요?

[본 자살 예방 캠페인은 보건복지부 및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대한정신건강재단·헬스조선이 함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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