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소화성궤양용제 시장 경쟁이 치열한 양상을 띠고 있다. 최근 몇 년 새 ‘케이캡’, ‘펙수클루’와 같은 국산 P-CAB(칼륨 경쟁적 위산 분비 억제제) 신약이 속속 등장한 가운데, ‘넥시움’, ‘에소메졸’ 등 기존에 시장을 이끌어온 PPI제제(양성자 펌프 억제제) 판매사들 또한 대응책 마련에 나선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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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 = 김민선

◇P-CAB, 국내서 단기간 급성장… 점유율 20%까지 확대
11일 제약업계에 따르면, 국내 소화성궤양용제 시장 규모는 지난해 기준 1조2666억원에 달했다. 2019년 8001억원에서 2021년 1조644억원으로 처음 1조원을 넘어선 뒤, 지난해까지 매년 성장을 거듭해왔다.

PPI제제와 P-CAB제제로 범위를 좁히면 지난해 기준 약 9127억원 규모다. 특히 P-CAB의 성장세가 눈에 띈다. 두 제제 중 P-CAB이 차지하는 비율은 23.8%(2176억원, 2023년)다. 올 상반기에는 27.1%까지 비율이 확대됐다. 국내에 P-CAB제제가 판매된 지 이제 막 5년이 넘은 점을 감안하면 괄목할만한 성장이라고 할 수 있다. P-CAB 신약이 국내에 처음 출시된 2019년 상반기 점유율은 4%에 불과했다. 반면 PPI제제의 소화성궤양용제 시장 점유율은 올해 1분기 53.7%에서 2분기 53.4%로 소폭 줄었다. 같은 기간 P-CAB제제 점유율이 19.5%에서 20.2%까지 확대된 것과 대비된다.

제약산업전략연구원 정윤택 원장은 “아직도 PPI제제가 전세계적으로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하곤 있으나, 점차 P-CAB제제로 대체되는 추세”라며 “기존 약물과의 차별성을 입증한다면 세계무대에서도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고 말했다.

◇케이캡-펙수클루-자큐보 ‘삼파전’… PPI 점유율 탈환 노린다
P-CAB제제가 이 같은 성장세를 기록할 수 있었던 건 기존 PPI제제의 단점으로 지적돼온 느린 약효 발현과 짧은 반감기, 식이 영향, 약물 상호작용 문제 등을 개선했기 때문이다. 특히 국내의 경우 시장에 출시된 약이 모두 국산 신약인 점 또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현재 국내 판매 중인 P-CAB제제는 HK이노엔 ‘케이캡’, 대웅제약 ‘펙수클루’, 제일약품 ‘자큐보’ 등 3종으로, 케이캡이 2018년 가장 먼저 허가돼 이듬해 출시됐고, 펙수클루와 자큐보는 각각 2021년과 올해 식약처 허가를 받았다.


세 회사는 빠르게 시장 점유율을 높이기 위해 다른 제약사와 제품을 공동 판매하는 전략을 택하기도 했다. HK이노엔은 보령, 대웅제약은 종근당, 제일약품은 동아에스티와 협업·판매 중이다. 현재 케이캡이 전체 소화성궤양용제 시장 약 15%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으며, 펙수클루는 7~8%다. 자큐보는 올해 4분기에 출시해 점유율을 논하기 이르다.

각자 연합 전선을 구축하고는 있으나, 큰 틀에서는 이들 모두 ‘PPI점유율 탈환’이라는 공통된 목표를 갖고 있다. P-CAB 제제 성장세가 가파르다고 해도, 전체 시장에서 PPI제제가 차지하는 비중은 여전히 압도적이기 때문이다. HK이노엔 관계자는 “지금은 P-CAB 판매사끼리 경쟁하기보다, PPI의 점유율을 가져오는 것이 우선”이라며 “그런 점에서 다른 두 회사는 경쟁사가 아닌 파트너사라고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대웅제약 관계자 역시 “일단 PPI를 대체하는 게 목표”라며 “PPI로 해결하지 못한 문제들을 P-CAB이 해결하며 영역을 넓혀갈 것이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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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K이노엔 '케이캡', 대웅제약 '펙수클루' / 각사 제공

◇PPI 판매사, 제형·적응증 확대… “P-CAB 제대로 처방·사용해야”
PPI 판매사들 역시 P-CAB제제의 성장세를 주시하면서, 복합제 출시, 제형·적응증 확대 등의 대응 전략을 펼치고 있다. 현재 국내 판매 중인 대표적 PPI제제로는 에스오메프라졸 성분의 ‘에소메졸(한미약품)’, ‘넥시움(아스트라제네카)’과 일라프라졸 성분의 ‘놀텍(일양약품)’ 등이 있다. 가장 많은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는 에소메졸의 경우 오리지널 제품뿐 아니라 서방형제제 ‘에소메졸디알서방캡슐’, ‘에소메졸플러스정’ 등 총 3개 제품으로 구성된 ‘에소메졸패밀리’ 라인업을 갖춘 상태다. 에소메졸디알은 이중지연방출제형을 통해 PPI제제의 단점으로 지적된 식전 복용의 불편함을 개선했고, 에소메졸플러스 또한 효과 발현 속도를 높였다. 현재 위궤양 적응증 추가도 준비 중이다. 한미약품 관계자는 “에소메졸패밀리는 넒은 적응증을 바탕으로 다양한 증상에 사용할 수 있다”며 “올해 국내 PPI 시장에서 5년 연속 1위를 달성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지난 9월 미국소화기학회가 P-CAB제제를 2차 치료 수단으로 발표한 것도 PPI제제 판매사로선 반가운 소식이다. 넥시움을 판매 중인 아스트라제네카 역시 조만간 국내에서 올바른 치료 가이드라인을 전파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한국아스트라제네카 관계자는 “P-CAB제제가 이렇게까지 잘 판매되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며 “아무 질환에나 처방하지 않도록 바로잡는 활동을 준비 중이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