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귀질환

“국내 환자 80명뿐” 비만도 아닌데 배 불룩… 무슨 희귀병?

임민영 기자

[세상에 이런 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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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쉐병 때문에 복부가 튀어나온 환자 모습/사진=Journal of Clinical and Experimental Hepatology, Molecular Genetics & Genomic Medicine
세상에는 무수한 병이 있고, 심지어 아직 밝혀지지 않은 미지의 질환들도 있다. 어떤 질환은 전 세계 환자 수가 100명도 안 될 정도로 희귀하다. 헬스조선은 매주 한 편씩 [세상에 이런 병이?]라는 테마를 가지고 우리가 상상하기 어려운, 믿기 힘들지만 실재하는 질환들을 소개한다. (편집자주)

비만이 아닌데도 배가 불룩 튀어나온 사람들이 있다. ‘고쉐병(Gaucher disease)’ 환자들은 유전적 이상 때문에 배가 과도하게 나온 모습을 보인다. 고쉐병이 어떤 질환인지 자세히 알아봤다.

고쉐병은 글루코세레브로시다아제(glucocerebrosidase)라는 효소의 결핍으로 인해 발생하는 희귀 유전성 대사질환이다. 인체는 재순환을 통해 부서진 세포 조각을 제거하는 대식세포(macrophage)를 가지고 있다. 대식세포는 세포 찌꺼기, 이물질, 미생물, 암세포, 비정상적인 단백질 등을 집어삼켜 분해하며, 신체 조직 전체에 존재하는 선천면역세포 중 하나다. 제거 과정은 리소좀이라고 불리는 세포 구획 안에서 진행되는데, 이 안에 글루코세레브로시다아제가 존재한다. 이 효소는 세레마이드(ceramide)라는 지방과 글루코스(glucose)라는 당으로 구성된 글루코세레브로시드(glucocerebroside)를 분해한다.


그런데, 고쉐병 환자들에게는 GBA 유전자 돌연변이가 있어 글루코세레브로시드를 충분히 분해하지 못한다. GBA 유전자는 1번 염색체 장완(동원체를 중심으로 긴 부위)에 위치하며, 글루코세레브로시다아제 효소의 생성에 관여한다. 결국 글루코세레브로시다아제 효소의 활성도가 떨어지면서 리소좀 내에 글루코세레브로시드가 축적되고 대식세포가 비대해진다. 이때 비대해진 대식세포는 ‘고쉐세포’라고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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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쉐병 때문에 복부가 튀어나온 환자 모습​/사진=American Journal of Pediatrics​
고쉐세포는 주로 비장, 간, 골수에 축적된다. 특히 고쉐병 환자들은 비장에 고쉐세포가 축적된 양상을 보인다. 비장에 고쉐세포가 축적되면 비장은 최대 25배까지 팽창하며, 과도하게 활성화된다. 이로 인해 복부가 튀어나와 비만이나 임신한 것처럼 보인다. 비장이 과도하게 활동하면서 적혈구를 생산하는 것보다 더 빠르게 적혈구를 파괴해 빈혈로 이어지기도 한다. 또, 빈혈 때문에 체내 산소가 부족해져 쉽게 피로감을 느낀다. 환자들은 혈소판 숫자도 감소한다. 혈소판이 감소하면서 피가 빠르게 응고하지 못해 타박상이나 피를 흘리는 일이 잦아진다. 환자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자주, 심하게 코피를 흘리며, 여성의 경우 월경량이 많아지고 기간이 긴 편이다.

고쉐병은 진행 과정과 신경계 합병증 여부에 따라 세 가지 형태로 나뉜다. 제1형은 ‘성인형’이라고도 불리며 고쉐병 환자의 90% 이상을 차지한다. 증상이 나타나지 않는 환자도 있고, 만성적으로 심각한 합병증이 동반되는 경우도 있다. 증상은 주로 청소년기에 나타나지만, 아동기부터 성인기까지 어느 연령에서나 발생할 수 있다. 신경계 증상은 나타나지 않는다고 알려졌다. 제2형은 생후 1년 이내 증상이 나타나며, 신경계 증상을 심하게 겪는다. 특히 6개월 이전에 비장비대가 심하게 발생하며, 대부분 2세 이전에 사망한다. 제3형은 아동기나 청소년기에 신경계 증상이 시작하지만, 제2형보다는 비교적 느리게 진행된다.

제2형과 제3형 고쉐병 환자들이 겪는 신경계 증상으로는 근육의 긴장도가 떨어지면서 운동능력도 떨어지는 운동실조증이 있다. 특히 제2형의 경우 아기가 목을 잘 가누지 못하며, 음식을 잘 삼키지 못한다. 제3형의 경우 경련도 나타날 수 있다. 이외에도 고쉐병 환자들은 골수 안에 고쉐세포가 축적돼 골밀도 감소가 발생하거나 골절이 쉽게 일어날 위험이 있다.


고쉐병을 치료할 땐 부족한 글루코세레브로시다아제 효소를 대체해 글루코세레브로시드가 축적되는 것을 막는 게 중요하다. 1991년 미국 식품의약국(FDA)에선 태반에서 추출된 효소인 세레다제(ceredase)가 제1형 고쉐병 치료제로 승인됐다. 국내에선 세레자임(cerezyme) 효소를 이용한 효소 대체요법이 주 치료법으로 사용되고 있다. 환자들은 2주마다 1~2시간씩 혈관 주사를 맞아야 하며, 증상의 정도에 따라 용량을 조절할 수 있다. 현재 전문가들은 글루코세레브로시다제 효소의 유전자를 넣어 효소를 충분히 생산할 수 있게 하는 치료법을 연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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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쉐병 때문에 복부가 튀어나온 환자 모습​/사진=Department of Medical Education Government of Rajasthan
한편, 고쉐병은 1882년 간과 비장이 비대해진 환자에 대해 처음 보고한 프랑스 의사 필립 찰스 어니스트 고쉐(Philippe Charles Ernest Gaucher)의 이름에서 유래됐다. 현재 고쉐병 환자 수는 전 세계 약 1만 명으로 추정되며, 국내에서는 80명 정도가 진단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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