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질환

잠을 기다리지 마세요, 스스로 찾아오게 하세요

서민철 중앙보훈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과장(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당신의 오늘이 안녕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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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게티이미지뱅크
진료실에 한 분이 들어왔습니다. 얼굴에 약간의 피로와 예민함이 묻어납니다. "벌써 10년이 넘었어요. 잠을 통 못 자네요" 언제부터인가 밤에 잠을 잘 수 없었답니다. 전부터 잠귀가 밝은 편이었고, 스트레스를 받으면 여러 생각에 몰두하느라 뜬눈으로 잠을 지새울 때가 많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다고요. 조금은 빠른 어조로 긴 세월 동안 잠을 자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였는지 토로합니다. 잠에 좋다는 각종 영양제를 먹고 음악도 들어봤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조금이라도 자기 위해 저녁 8시에는 꼭 수면제를 먹고 누워 잠을 기다립니다. 자리에 눕기 전엔 분명 눈이 감기나 했는데, 적막하게 어둠이 고이면 정신은 오히려 맑아집니다. 바깥에서 오토바이 굉음이 시끄럽게 창문을 치고 지나갑니다. '이 야밤에 웬 난리야! 정신이 있는 건가? 배려라곤 정말 하나도 없는 사람이군' 문득 가슴도 답답하고 두근거립니다. 마음을 다잡고 다시 자세를 바로 합니다. 정신이 바늘 끝처럼 예리합니다. 주방 수도꼭지에서 물이 똑똑 떨어집니다. '어휴 도대체가. 사용했으면 잘 잠궈 둬야지' 수도꼭지를 잠그고 다시 눕습니다. 이불 안이 문득 답답합니다. 좀 더운 것 같기도 하고. '몇 시나 됐지?' 휴대폰을 열어 시계를 봅니다. '벌써 한 시간이나 지났다고? 잠 못 자면 안 되는데. 잠 못 자는 사람은 치매도 걸린다는데' 온갖 생각 끝에 잠이 들고 일어나니 영 피로가 풀리지 않습니다. 낮에도 기운이 없어 소파에 자꾸 기대어 있습니다. '오늘 밤엔 잘 자야 할 텐데…'

이 사례처럼 실제 많은 사람이 '오늘 밤만은 잘 잤으면' 하며 비슷한 경험을 합니다. 잠을 잘 수 없는 건 분명 괴롭습니다. 작년 늦은 봄 영국의 BBC1은 잠을 못 자 죽음을 선택하고만 한 남성과 그 가족의 이야기를 공개했습니다. "잠을 못 자 미칠 것 같다"는 말이 과장이 아닌 셈이지요. 실제 수면 문제는 죽고 싶다는 생각과 그 행동에까지 영향을 미칩니다. 분명한 원리가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수면 문제는 정서적으로 예민하고 충동적인 행동이 발생하기 쉽게 만듭니다. 화가 나고 공격적 행동을 하기 쉽게 한다는 점에서도 감정 조절을 어렵게 만든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외에도 우울증과 연관돼 있으며, 우울증은 자살 위험을 높입니다.

그런데 불면은 몹시 흔합니다. 10명 중 3~4명은 경험하지요. 다만 불면이 길어지는 건 무언가 다른 요소가 끼어들기 때문입니다. 다음날 중요한 일이 있으면 한참을 뒤척이다 잠들곤 하지 않습니까? 하지만 그 일이 몇 달씩 이어지진 않습니다. 불면은 왜 이토록 길어질까요?

"잠이 보약이다"라는 말에는 두 가지 뜻이 내포돼 있습니다. 수면 부족으로 각종 질병 위험이 커진다는 글을 온갖 미디어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잠을 못 자면 각종 질병의 위험이 커진다니 생각만 해도 불안합니다. 실제로도 밤새 뒤척이고 나면 몸뚱이는 천근만근으로 무겁고 만사가 귀찮습니다. 집중이 어렵고 작은 일에도 예민해집니다. 꿀잠이란 말처럼 깊은 잠은 달콤합니다. 푹 자고 일어난 날 얼마나 개운한가요? 그래서 잠을 잃었다는, 그리고 잃는다는 생각은 우리를 잠에 매달리게 합니다. '자나 깨나' 꿀잠을 되찾을 방법에 몰두하게 하죠. 그런데 역설적으로 여기에 몰두할수록 잠은 달아납니다.

'하루 여덟 시간이 적정 수면'이라고들 합니다. 사람은 몇 시간을 자야 건강할까요? 나폴레옹처럼 어떤 사람은 하루 6시간을 채 자지 않아도 생활에 어려움이 없습니다. 반면 어떤 사람은 9시간 이상 자야 피로가 풀리고 활력이 납니다. 갓난아기는 하루 반나절 이상을 잡니다. 나이가 들면 자연 잠이 얕고 짧아집니다. 그러니 정답은 "사람마다 다르다"입니다. 일, 여가 등을 즐기는 데 무리가 없다면 그 정도가 나에게 필요한 수면 시간입니다. 오히려 모자란 잠을 보충하려 하면 잠을 못 자는 날이 점점 늘어만 갑니다.

《모모》라는 소설로 국내에 잘 알려진 독일 작가 미하엘 엔데는 수많은 멋진 이야기를 남겼습니다. 그 중 《끝없는 이야기》란 소설이 있습니다. 제목만큼이나 내용도 긴데, 잠자리에 누워 상념에 잠긴 사람은 하룻밤 동안 수천 쪽의 책을 쓰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수면제를 먹으면 치매에 걸린다던데' '잠 못 자면 치매에 걸린다던데' '수면 시간은 사람마다 다르댔어, 이제 잠을 자야지' '그래도 잘 자야 건강하지 않을까?' '잠을 못 자면 자살할 수도 있다고?' 이와 비슷한 변용이 수없이 많다는 것을 유념해 주십시오. 상념이야말로 '끝없는 이야기'입니다. 게다가 그 이야기 속에 빠져 있으면 오히려 정신은 점점 더 명료해집니다.


보통 잠을 '기다린다'고 표현합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의 함정에 빠지면 잠을 기다리지 못합니다. 잠을 쫓아가게 되지요. 애타는 마음에 무작정 쫓아가면 잠은 오히려 눈치를 보며 조금씩 멀리 달아납니다. 수면제를 먹으면 혹은 그 양이 늘어나면 한동안은 효과가 있다가도 다시 잠이 오지 않습니다. 누워서 잠을 청하면 때로는 잠들지만 이내 잠은 다시 달아납니다. 연애를 잘 하기 위해서는 밀당을 잘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 말이 옳다 그르다를 떠나 무작정 매달리기만 해서는, 혹은 젠체하며 매달려주기만을 바라면 매력이 없다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겠지요. 잠이 돌아오려면 이 밀당을 잘 해야 합니다. 잠을 쫓아가는 것이 아니라 잠이 여러분의 매력에 빠져 돌아올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매력적인 환경을 만들고 느긋하게 기다리면 조금씩 조금씩 잠이 다가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너무 과한 기대는 잠에게 부담을 줍니다. 그 수준을 조금만 낮춰보세요.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정해진 수면 시간은 없습니다. 생활하기에 어려움이 없는 정도면 충분히 건강한 수면입니다. 잠이 좋아하고 즐거워하는 좋은 환경도 만들어 줘야 합니다. 

그간 여러분의 몸은 도망가는 잠을 쫓아가기 위해 훈련해 왔습니다. 일찍부터 오래 누워 있거나, 자리에 눕는 그 순간부터 잠을 붙잡기 위해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것이 그 훈련의 결과입니다. 그런데 사실 잠은 이런 몸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습니다. 잠이 다시 다가오도록 일종의 체질 개선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누워있는 시간이 실제 잠을 자는 시간보다 두 시간 이상 크게 차이가 난다면 누워 있는 시간을 서서히 줄여야 합니다. 누워서 한동안 뒤척이고 잠이 오지 않는다면 거실이나 다른 방으로 자리를 옮기십시오. 잠깐 다른 장소에 앉아 있다가 졸리기 시작할 때 다시 침실로 돌아가십시오.

때때로 상념이 머리 속을 가득 채우고 있다면, 그 생각에 사로잡혀 있던 자기 자신을 알아차리세요. 끝없는 이야기 속에 머물러 있던 몸도 느껴보세요. 가슴이 답답하고 몸이 긴장되지는 않았나요? 덥고 땀이 나며 불쾌하지는 않았나요? 이제는 다른 전략을 취할 차례입니다. 편안하게 심호흡을 하고 기지개를 펴 보세요. 깊게 숨을 쉴 때의 느낌을 즐기고, 팔다리를 뻗어 잔뜩 힘을 주고 스르르 힘이 빠질 때의 감각을 즐겨보세요.

잘 알려진 것처럼 불면은 각종 신체 질환뿐 아니라 정신 건강에도 악영향을 미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잠을 쫓아가지만 해서는 안 됩니다. 잠과 밀당을 하며 잠이 찾아올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잠이 좋아할 환경을 만들어 보십시오. 다가오지 않는 잠을 쫓아가며 고통스러워 하기보다, 과욕을 내려놓고 잠을 위한 환경을 꾸리며 조금씩 나아가는 성장통을 반긴다면 어느 순간 잠은 곁으로 돌아와 있을 것입니다.

[본 자살 예방 캠페인은 보건복지부 및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대한정신건강재단·헬스조선이 함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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