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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8년 5월 25일, 폭파 전 풍계리 핵실험 관리 지휘소의 모습./사진=연합뉴스
북한 핵실험장 인근에서 신생아의 항문, 발가락, 손이 없는 정체불명의 질병이 퍼지고 있다는 한 탈북자의 주장이 제기됐다.

◇“의사들도 유령병 앞에서는 무기력감…”
최근, 영국 매체 더선은 북한에서 2015년 탈출한 이영란 씨의 인터뷰를 공개했다. 탈북 전 풍계리 핵실험장 인근 길주군에 살았다는 이씨는 “방사능의 영향으로 북한에서 항문, 발가락, 손이 없는 아이들이 태어나고 있다”며 “해당 지역의 의사들은 정체불명의 유령병 앞에 무력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이어 이 씨는 2013년 북한의 핵실험 당시를 묘사하기도 했다. 그는 “3차 핵실험이 있던 날 벽시계가 떨어지고 전구가 흔들렸는데 지진인 줄 알고 밖으로 뛰쳐나갔다”며 “이후 방송을 통해 그날 3차 핵실험이 있었고 근처 풍계리 군사통제구역이 핵실험장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 주민들은 핵실험 성공 소식에 거리에서 춤을 추며 축하했지만 정작 이들이 북한 핵 프로그램의 첫 희생자가 됐다”고 했다.

이 씨는 그의 아들 역시 유령병에 걸렸다고 증언했다. 보도 내용에 따르면 그의 아들은 2014년 10월부터 이상 증세를 겪기 시작했다. 당시 27세였던 아들은 미열 증세를 보여 중국에서 밀수된 약을 먹고 버텼지만 호전될 기미가 없자 이 씨는 그를 병원으로 데려갔다. 병원에서 폐에 두 개의 구멍이 나 있다고 진단받았지만 적절한 조치를 받지 못한 아들은 2018년 5월 사망한 것으로 전해졌다.

탈북 후 이 씨는 한국에서 방사능 검사를 받았다고 한다. 그는 “방사능 노출 수준이 매우 높았고 백혈구가 매우 낮았다”며 “여기저기 아프고 다리가 아파서 잘 걸을 수 없고, 두통 때문에 1년에 여섯 번이나 입원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저와 같은 증상을 겪고 있는 길주 출신의 많은 사람들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탈북민 검사했지만, 피폭 인과관계 입증 힘들어
지금까지 북한 핵실험에 의한 피폭 관련 여러 의혹이 제기돼 왔지만 아직까지 명확한 근거는 없는 상태다. 지난 2월, 한국원자력의학원 국가방사선비상진료센터는 풍계리 핵실험장 인근 8개 시군(길주군, 화대군, 김책시, 명간군, 명천군, 어랑군, 단천시, 백암군) 출신 탈북민 80명에 대해 실시한 방사선 피폭·방사능 오염 검사 결과를 공개한 바 있다. 해당 보고서에 따르면 신체의 방사능 오염을 판단하는 전신계수기 검사와 소변시료분석에서 유의미한 방사능 측정값을 보인 탈북민은 한 명도 없었다.

방사능 측정값이 없다는 건 유의미한 핵종 오염이 없었거나, 있었다 하더라도 반감기를 계속 거치면서 검출이 안 될 정도만 남았다는 뜻이다. 핵실험장 인근에서 노출될 가능성이 있는 핵종 중 요오드-131와 세슘-137은 유효반감기가 각각 7.6일, 70일로 짧기 때문에 탈북민이 국내 입국한지 오래 됐다면 핵종에 오염됐더라도 방사능이 검출되지 않을 수 있다. 다만 당시 검사에서는 유효반감기가 5500일이나 되는 스트론튬-90이나 6만4000일에 이르는 플루토늄-239도 검출되지 않았다.

지금까지 누적된 피폭선량 분석하는 ‘안정형 염색체 이상 검사’에선 17명의 노출 선량이 최소 검출 한계인 0.25Gy(그레이) 이상인 것으로 측정됐다. 이중 풍계리가 속한 길주군 출신은 5명이다. 다만 원자력의학원은 17명 중 2명이 2016년 당시, 같은 검사에서는 최소 검출 한계를 넘지 않았으므로 국내에 들어온 뒤 의료 방사선이나 흡연, 고령 등 다른 변수들이 영향을 끼친 결과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당시 보고서는 핵실험이 인근 주민들에게 미친 영향을 과학적으로 평가하려면 더 많은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고 결론 지었다. 인과관계 평가의 결정적 장애물은 해당 지역의 음용수 등 환경 시료를 확보할 수 없다는 점 등이 꼽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