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질환

진료 대기 두 달… “마약서 벗어나고 싶어도 나를 가둘 곳이 없다”

오상훈 기자

[마약, 손절의 길] ① 마약 중독 치료, 예산·전문 인력 태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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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클립아트코리아
마약 중독자 A씨는 4년 전 친구 권유로 LSD와 펜타닐에 손댔다. 끊어야 한다는 걸 머리로는 알았지만 손만 뻗으면 약을 구할 수 있는 환경 탓에 쉽지 않았다. 지난해 어느 날 수사 기관에 적발된 이후 구속되며 모든 삶과 인간 관계가 무너지는 지인 한 명을 보고 단약을 결심했다. 금단 증상이 심해 마약 중독을 치료해주는 전문병원을 찾아다녔다. 병원을 찾는 것도 어려웠는데, 문의한 병원들에서는 “대기 인원이 너무 많아 짧게는 두 달 후에나 첫 진료가 가능하다”는 식의 답이 돌아왔다.

마약 중독 치료에는 특효약이 없다. 그저 끊어야만 벗어날 수 있다. 하지만 중독성과 의존성이 극도로 높은 약물은 뇌의 보상회로를 변화시킨다. 혼자서 약을 끊겠다고 다짐하는 것만으론 탈출이 어렵다. 마약에서 벗어나려면 의학적인 치료는 물론 지역 사회로의 복귀를 위한 재활 등 끊임없는 관리가 필요하다. 마약 중독 환자가 병원에 가면, 해독 치료와 함께 불면증·우울증 같은 동반 질환을 치료 받는다. 치료가 끝난 후에는 다시 마약을 투약하지 않도록 자조 모임이나 중독 재활센터 등으로 인계된다. 단약으로 가는 길고 긴 여정의 첫 관문인 셈이다.

국내 마약 사범이 급증하고 있는 가운데, 우리 사회에 마약 중독 치료를 위한 인프라가 얼마나 갖춰져 있는지 점검해봤다.


◇올 들어 3월까지만 5000명 검거, 입원 병원은 단 두 곳
마약 중독 환자들이 갈 병원은 턱없이 부족하다. 보건복지부는 마약 중독을 치료하는 병원을 ‘치료 보호 기관’으로 지정하고 있다. 환자들은 해당 기관에서 치료를 받아야 치료비를 지원받을 수 있다.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치료 보호 기관별 2023년 치료 보호 운영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마약류 중독자 치료 보호 기관은 전국에 25곳이다. 그런데 이 중 60.0%(15곳)는 치료 실적이 ‘0건’으로 조사됐다. 마약 중독 환자를 한 명도 받지 않았다는 것이다. 치료 실적이 있는 나머지 10곳 중에서도 ‘인천참사랑병원’과 ‘국립부곡병원’이 전체 실적의 86.4%를 차지했다. 사실상 마약 중독 환자를 활발히 받는 병원이 전국에 두 곳뿐이라는 의미다.

마약 투약자들은 전국에 퍼져 있다. 대검찰청 자료에 따르면 올해 들어 지난 3월까지만 마약류 사범 단속 건수는 5040건이다. 지역별로 보면 서울에서 1304명(25.9%)으로 가장 많았고 경기(1200명), 부산(354명), 인천(336명), 경남(218명), 충남(199명), 대구(185명) 순으로 나타났다. 전국 각지에서 마약을 투약하고 있다는 뜻인데 이들이 입원치료를 받기 위해선 인천이나 경남 창녕으로 향해야 한다. 인천참사랑병원과 국립부곡병원의 지정 병상 수는 합쳐서 140여개. 두 병원서 1년 동안 입원시킬 수 있는 환자는 입원 기간을 최소 치료 보호 기간인 두 달로 잡아도 840명에 그친다.

인천참사랑병원 천영훈 병원장은 “치료해주는 병원을 못 찾아 두 곳 병원에 환자들이 몰리는 상황이 오랫동안 지속돼 왔다”며 “우리 병원의 경우 광주나 거제에서도 환자들이 올라오고 있어 입원은 물론 외래진료도 몇 주씩 밀려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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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클립아트코리아
◇예산 문제 방치되는 동안 중독자 급증
치료 보호 기관이 환자를 못 받는 데에는 예산 문제가 크게 작용한다. 마약 중독 환자 한 명의 치료를 끝내면, 이후 병원이 지자체에 청구하는 시스템이다. 치료비는 지자체와 보건복지부가 절반씩 부담한다. 그런데 예산이 적은 지자체에서 치료비 지급을 미루다 보니 미수금이 쌓여 병원들이 환자를 치료할수록 손해를 보는 구조가 됐다. 마약 중독 치료 예산은 정부 예산 4억원에 지자체 예산을 더하면 8억2000만원이 전부였다(지난해 기준). 이는 환자 150명이 한 달 동안 입원 치료를 받으면 모두 소진되는 수준으로 턱없이 적다.

정부는 최근에서야 치료 보호 기관 활성화를 위한 방법들을 내놓고 있다. 먼저 치료 보호 기관을 기존 25개에서 31개로 늘리고 마약 중독 치료 보호 예산도 올해 22억 원으로 증액했다. 또 이르면 다음 달부터 마약 중독 치료에도 건강보험을 적용할 예정이다. 그러면 환자의 부담이 줄고 병원도 미수금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 아울러 별도의 예산을 투입해 우수 치료 보호 기관에 포상금을 지급하고 치료 보호 기관 환경 개선금 지원 등 신규 사업도 추진할 예정이다.

다만 예산이 확보된다 하더라도 마약 중독 치료의 난도가 높은 게 여전히 병원의 발목을 잡는다. 마약 중독은 입원치료를 기준으로 했을 때 보편적인 정신질환 급성기 치료에 비해 난도가 10~20배로 높다. 환자들이 폭력성을 보이거나 자살을 시도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들을 치료해도 일반적인 정신질환에 준하는 수가가 적용된다. 알코올 중독 전문병원도 의료진을 구하기 어려운 마당에 이보다 높은 치료 난도와 낮은 보상 체계를 가진 마약 중독 치료 보호 기관으로 의료진이 유입될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의료계에 따르면 현재 전국에서 마약 중독 입원과 외래를 둘 다 보는 의료진은 5명에 불과하다.


상황이 방치되는 동안 마약사범 수는 급증했다. 대검찰청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검거된 마약사범은 2만7611명이다. 1만8395명이 적발된 2022년에 비해 50%p 증가한 수치다. 전체 마약사범 중 10대는 지난해 1477명으로, 2022년과 비교해 약 3배로 늘었다. 마약 범죄는 공식 통계로 잡히지 않는 대표적인 암수 범죄로, 암수율이 28.57배라는 연구 결과도 있다. 이를 적용하면 마약을 투약하는 사람은 전국에 약 70만 명 있다 계산이 나온다.

◇“정신과 외래 진료 가능한 수준 돼야”
현장 전문가들은 마약사범이 늘어나는 속도를 고려했을 때 안전망을 더 촘촘하게 펼쳐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림대춘천성심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이상규 교수는 “건강보험 적용은 현재 마약 중독 환자를 받고 있는 치료 보호 기관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며 “다만 마약 중독을 치료하는 의료진의 수가 여전히 적기 때문에 치료 보호 실적이 큰 폭으로 증가할 것이라고 기대하긴 어렵다”고 말했다. 마약 중독은 급성기에 치료 보호 기관에서 입원치료를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불면증이나 우울증 등 재발 요인 등을 평생 관리하는 게 필수다. 이상규 교수는 “빠르게 증가하는 마약 중독 환자 수에 대응하려면 일반 정신건강의학과 의원들도 마약 중독 외래 치료를 볼 수 있을 만큼 인프라가 구축돼야 할 것”이라며 “치료 후에는 환자들을 중독 재활센터나 자조 모임으로 효과적으로 연계해 이들이 다시 마약에 손대지 않도록 철저히 관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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