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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형 간염이라더니… 1년 만에 또 뒤집힌 베토벤 사망 원인
오상훈 기자
입력 2024/05/08 08:00
미국 산호세주립대 베토벤 연구소의 윌리엄 메리디스 원장, 메이요클리닉 폴 자네토 박사 등 공동 연구팀은 베토벤의 정확한 사인을 알아보기 위한 연구를 진행했다. 호주 사업가 케빈 브라운으로부터 기증받은 베토벤의 머리카락 뭉치 두 개를 중금속 분석 장비로 살펴본 것이다.
분석 결과, 베토벤의 머리카락 뭉치 하나에서는 1g당 258μg(마이크로그램) 납이 함유돼 있었고, 또 다른 뭉치에서는 1g당 380μg 납이 검출됐다. 일반 머리카락의 납 함유량이 1g에 4μg 미만이니 100배 가까운 수준의 납이 나온 것이다. 아울러 비소 함유량은 정상 수치의 13배, 수은은 4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자네토 박사는 “이번 결과는 베토벤이 고농도의 납에 노출돼 있었다는 점을 보여준다”며 “이는 지금까지 내가 본 모발 가운데 가장 높은 수치”라고 말했다.
독성 물질에 정통한 데이비드 이튼 워싱턴대 명예교수는 미 일간 뉴욕타임즈에 “베토벤의 위장 문제는 납 중독 증상과 정확히 일치한다”고 했으며, 베토벤의 청각 장애에 대해서도 “다량의 납이 신경계에 영향을 미쳐 청력을 손상시켰을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만성적인 복용이 실제 사인이 될 정도로 충분한지는 말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납 중독 전문가인 제롬 은리아구 미시건대 명예교수는 베토벤이 살았던 19세기 유럽에는 납이 와인과 음식뿐 아니라 의약품과 연고에도 사용됐다고 설명했다. 특히 당시에는 품질이 떨어지는 와인의 맛을 개선하기 위해 단맛이 나는 ‘납 설탕’을 첨가하곤 했는데 납땜한 주전자에 담겨 숙성된 와인에 납이 녹아들었을 수도 있다는 게 은리아구 교수의 설명이다. 베토벤은 하루에 한 병 정도의 와인을 마실 정도로 중독돼 있었고 말년에는 건강에 좋다고 믿으면서 와인을 더 많이 마신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베토벤은 수년간 많은 의사와 상담하며 질병과 청각 장애를 치료하려 했지만,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했다. 그는 연고를 사용하고 75가지의 약을 먹었는데, 상당수에 납이 함유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뉴욕타임스는 전했다.
한편, 지난해 독일 막스플랑크 진회인류학연구소와 영국 케임브리지대 등 공동연구팀은 똑같이 베토벤의 머리카락을 분석한 뒤 B형 간염을 사인으로 발표한 바 있다. 베토벤의 머리카락에서 B형 간염 바이러스 유전자와 간 질환에 취약한 PNPLA3 변이 유전자가 확인됐기 때문이다. 연구팀은 당시 "이번에 확인한 변이 유전자로 유추했을 때 B형 간염 감염과 유전적 간 질환, 지속적인 음주로 인한 간경화로 숨졌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번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임상화학' 저널에 최근 게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