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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싸진 ‘지하철 역명 사용료’에 병원들 고심… “공공성 잃어” 지적도

전종보 기자

[지하철 역명 뒤에 붙은 병원 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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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내용과 무관한 사진 / 사진= 클립아트코리아
병원은 근 몇 년간 지하철 역명 병기 판매사업의 주 고객이었다.(그 배경에 대해서는 上편 ‘3억 사용료에도… 지하철 역명 뒤에 유독 병원 이름 많은 이유’에서 자세히 다뤘다) 그러나 최근 들어서는 역명을 계속 또는 새로 사용하는 것에 대해 회의감을 표하는 병원들이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사용료가 지속적으로 비싸진 데 반해, 체감 효과와 만족도는 다소 떨어진다는 이유에서다. 의료기관 입찰 기준이 완화된 뒤로는 공공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들리고 있다.

◇ 기초 입찰가, 역 따라 7~8배 차이… 5년 후 1~70% 인상
역명 병기는 철저한 입찰제다. 서울교통공사 측이 외부 원가조사 전문 기관에 의뢰해 기초 금액을 책정하면 역명 병기를 희망하는 기관들이 각자 입찰가를 써내는 식이다. 공사 심의위원회 심의를 통과한 기관들만 입찰에 참여할 수 있고, 그 중 가장 높은 금액을 부르는 곳이 최종 낙찰된다.

외부 기관은 ▲해당 역의 유사한 광고매체 판매단가 ▲역세권 활성화 정도 ▲승·하차 인원 ▲안내표지판 부착 위치·수량 등을 고려해 기초 금액을 산출한다. 공사가 직접 기초 금액을 정하지 않는 이유는 객관성을 지키기 위함이다. 같은 맥락에서 공사가 임의로 입찰 금액을 높이거나 낮추는 것 역시 불가능하다.

당연히 입찰에 참여하는 기관이 많을수록 금액은 올라간다. 반대로 경쟁 기관이 적거나 없는 경우엔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낙찰되기도 한다. 서울 중심, 유동 인구가 많은 곳은 입찰 시작 가격 자체가 높다. 경쟁까지 붙으면 더 상승하기 마련이다. 실제 가격이 높은 역과 낮은 역이 3~4배, 많게는 7~8배까지도 차이를 보인다.

가격이 비싼 곳은 인상률도 높다. 예를 들어 현재 기초 금액 상위 5위권에 들어가는 2개 역의 경우(3개 역은 최근 최초 계약으로 비교 불가), 첫 계약 당시인 2016년과 비교하면 기초 금액 이 73%가량 올랐다. 반면 하위 5위권에 해당되는 역들은 인상률이 최대 42%며, 1~2%대인 곳도 있다. 하위 2개 역의 경우 오히려 직전 계약인 2019년보다 가격이 소폭 깎였다. 이에 대해 서울교통공사 측은 “2016년 최초 계약 때보다 기초 금액이 높아진 이유는 역명을 병기하는 안내 표지판 종류와 수량이 증가했기 때문”이라며 “역세권 개발 정도와 표준 공시지가 상승도 반영됐다”고 말했다.


◇ 절반이 유찰… 병원 업계 “사용료 계속 비싸지면 연장 안 할 것”
가격이 비싸지면 소비자는 지갑을 닫는 법이다. 서울교통공사에 따르면 최근 3년 간 역명 병기 판매사업 계약률은 45~50%다. 매물을 내놔도 절반은 구매자가 나타나지 않고 있는 셈이다. 가격 인상과 무관하지 않다는 게 전문가 의견이다. 아주대 교통시스템공학과 유정훈 교수는 “당장 적자를 메워야 하는 공사 측은 더 많은 비용을 받고자 하지만, 입찰 기관에서는 그만한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고 말했다.

비싼 금액이 부담되는 건 병원업계도 마찬가지다. 특히 개원 당시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역명을 쓰기 시작한 곳의 경우, 시간이 지나서 자리를 잡으면 비싸진 재계약금을 지불하면서까지 역명을 사용하는 데 회의감이 들 수 있다. 병원업계 한 관계자는 “서울 모 병원의 경우 재계약 당시 3년 전보다 40~50%씩 기초 가격을 높인 것으로 안다”며 “‘그 정도 금액까지 지불해야 하나’ 싶었다는 게 당시 실무자들의 전언이다”고 했다. 현재 역명을 사용 중인 A병원 관계자 또한 “사용 초기에 비해서는 경영진의 관심이 덜한 편”이라며 “계속 가격이 많이 오른다면 경영진 입장에서도 연장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할 것 같다”고 말했다.

모든 병원이 비용 부담을 느끼는 건 아니다. 역 주변에 경쟁 기관이 없거나 인상폭이 크지 않은 병원의 경우, 여전히 역명 사용을 가성비 좋은 홍보 수단으로 여기기도 한다. 유동인구 증가나 물가 상승 등을 고려했을 때 인상 폭이 크지 않다는 의견도 있다. B병원 관계자는 “현재로써는 역명을 계속 사용할 계획”이라며 “지역 대표기관으로 자리 잡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 “오로지 금액 싸움, 경쟁 부추겨… 공공성 더 감안해야”
비싼 가격도 가격이지만 공공성을 잃어가는 게 더 큰 문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입찰 시스템에서 더 많은 금액을 써내는 쪽이 낙찰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그럼에도 공사 측이 입찰 자격으로 제시한 ‘공공성’이 제대로 지켜지고 있는지는 재고해볼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다. 현재 의료기관의 경우 2022년 서울교통공사가 병기 역명 대상기관 중 의료기관 기준을 완화하면서 의료기관 종류, 병상 수와 상관없이 의료법 제3조2항에 해당하는 모든 의료기관이 역명을 사용할 수 있다. C병원 관계자는 “이미 역명을 사용 중인 입장에서는 모든 의료기관이 역명에 들어가면 신뢰도가 떨어진다고 느낄 수 있다”며 “해당 병원에 권역응급센터가 있는지를 비롯해 공공성을 더 감안했으면 한다”고 했다. D병원 관계자 또한 “종합병원 입장에서는 의원급 병원과 동일 선상에 놓이게 된다”며 “지나치게 가격 위주로만 선정되면 역명을 사용하는 의미가 있을지 다시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입찰가 위주 선정이 경쟁을 과열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E병원 관계자는 “기준이 사라지다보니 오로지 금액 싸움이 되는 것 같다”며 “역명 병기는 공공적 측면도 있는 만큼, 최소한의 기준이나 가산점 제도 등이 필요하다”고 했다.

전문가는 역과 역명이 갖는 무게를 생각했을 때 사업에 좀 더 신중함이 요구된다고 조언한다. 유정훈 교수는 “지하철역은 공공시설이므로, 상업적 목적으로 이름을 부여하는 것에 대해 신중해야 한다”며 “상징성이 있고 역에 대해 큰 역할을 하는 기관이 역명을 사용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어 “역 방문객, 지역주민 의견까지 반영되도록 심의 과정이 공론화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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