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귀질환

"못 먹으면 죽는데…" 적자에도 희귀질환자 특수식 생산하는 기업들

오상훈 기자

특정 기업 생산에만 의존… 환자는 불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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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상형 케톤 생성식​ 케토니아./사진=남양유업 제공
일부 희귀질환자들은 정해진 음식만 먹어야 한다. 이들이 먹는 걸 ‘특수의료용도식품(특수식)’이라고 하는데 값이 비싸고 물량이 많지 않다. 몇몇 기업들이 손해를 감수하며 생산하고 있지만 환자들은 언제 공급이 중단될까 조마조마하다. 환자와 가족들의 선택권을 넓히고 특수식 공급에 식품기업들의 참여를 독려하기 지원이 필요한 실정이다.

◇시장성 없지만… 뇌전증 환아들 위해 133만개 생산
요즘에는 뇌전증 경련을 약물로 조절할 수 있다. 다만 환자 중 약 30%는 약물로도 증상 조절이 안 된다. 이러면 탄수화물 섭취는 제한하고 지방 섭취를 늘리는 ‘케톤생성 식이요법’을 처방받는다. 지방이 분해되면서 생성되는 케톤이라는 물질이 경련을 억제하기 때문. 실제 케톤식이를 하면 30% 환자에서 발작이 완전히 소실되고 또 나머지 30%는 발작이 현저히 줄어든다는 보고가 있다.

그런데 케톤식이가 쉬운 건 아니다. 단순히 탄수화물 양을 줄이는 게 아니라 지방과 단백질대 탄수화물의 비율을 3~5:1로 나눠 2년 정도는 유지해야 해서다. 비용도 문제고 지방을 과도하게 섭취하다 보니 구토 및 설사 등이 지속돼 중도에 포기하는 환자도 적지 않다.


이를 위해 남양유업은 지난 2002년 액상형 케톤 생성식 ‘케토니아’를 개발해 지금까지 생산하고 있다. 덕분에 수많은 뇌전증 환아들이 가정에서도 쉽게 케톤식이를 수행할 수 있게 됐다. 케토니아는 2022년 기준 약 133만개가 생산됐다. 수요가 어느 정도인지 불확실하고 일반 분유와 달리 연구비·설비투자비 등이 추가로 소요되기 때문에 기업 입장에서 이윤은커녕 손해만 남는 장사다. 남양유업 관계자는 “소수의 환아를 위해 생산하는 제품이어서 영업 손실이 발생하고 있지만, 앞으로도 생산과 성분 강화를 위한 연구를 지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환자들이 평생 먹는 저단백밥·특수분유도 사회적 공헌으로 생산
손해를 감수하면서 특수식을 생산하는 건 남양유업뿐만이 아니다. CJ제일제당은 페닐케톤뇨증 등 선천성 대사이상 질환을 앓는 환자들을 위해 단백질 함량을 1/10로 줄인 ‘햇반 저단백밥’을 15년간 생산해왔다. 페닐케톤뇨증은 선천적으로 ‘페닐알라닌’이라는 단백질을 분해하는 효소가 부족한 질환이다. 단백질이 많은 일반 쌀밥은 섭취하지 못한다. 이들에게 저단백밥은 생필품을 넘어 의약품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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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반 저단백밥./사진=CJ제일제당 제공
매일유업도 선천성 대사이상 질환 환자들을 위한 특수분유를 생산하고 있다. 대사이상으로 분해하지 못하는 아미노산은 제거하고, 비타민, 미네랄 등 영양성분을 보충한 특수 유아식 8종 12개 제품을 지난 1999년부터 공급하고 있다. 순천향대 서울병원 소아청소년과 이정호 교수는 “매일유업의 특수분유는 페닐케톤요증, 메틸말로닐산혈증, 프로피온산혈증, 단풍당뇨증 등의 선천성 대사이상 질환자들이 영유아 때부터 평생 먹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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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유업의 특수분유./사진=매일유업 제공
◇기업들 고맙지만 생산 중단될까 불안
환자들은 기업들이 고맙지만 한편으론 불안하기도 하다. 평생 먹어야 하는 제품을 생산하는 기업이 한 곳씩밖에 없어서다. 현행 모자모건법에 따르면 만 19세 미만 희귀질환자들은 처방전에 따라 보건소에서 특수분유와 저단백밥을 무상 지원 받을 수 있다. 다만 추가 부족분이나 만 19세 이후에는 직접 구매해야 한다. 기업이 특수식 생산을 중단하기라도 하면 당장 먹을 게 사라지게 된다. 실제 지난해 저단백밥 공급이 원활하지 않아 물량이 부족한 시기가 있었는데 환자들은 웃돈을 주고 일본 업체의 제품을 구매해야 했다. 가격은 3~4배가량 비싸다. 희귀질환자의 삶을 일부 기업의 사회적 공헌에 의존하고 있다는 지적이 오래전부터 제기된 이유다.

한국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 김진아 사무국장은 “특수식이 필요한 질환은 굉장히 다양한데 거의 대부분이 사기업의 공헌에 의존하고 있는 상황 자체가 환자들 입장에선 불안한 측면이 있다”며 “또 특수식 지원의 근거 법안이 만 19세가 넘어가면 모자보건법에서 희귀질환자의료비지원사업으로 전환되는데 여기서 누락되는 질환도 있고 특수식이 필요하지만 아예 처음부터 지원받지 못하는 환자들도 있다”고 말했다.


영화 로렌조 오일로 유명한 ‘부신백질이영양증’은 긴사슬지방산(VLCFA)이 분해되지 않고 신경계에 축척되는 질환이다. 국내 환자 수는 50명 정도로 추정된다. 아직까지 치료제가 없어 신경학적 증상을 예방하려면 골수를 이식하거나 로렌조 오일을 섭취해야 한다. 그러나 특수식인 로렌조 오일은 국내에서 생산되지 않고 정부 지원 대상도 아닌 탓에 환자들은 한 달에 약 150만원을 전부 부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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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렌조 오일./사진=뉴트리시아 제공
◇특수식 생산 독려하고 급여도 고려해야
환자와 가족들의 선택권을 넓히고 특수식 공급에 식품기업들의 참여를 독려하기 위한 여러 방안들이 거론된다. 대표적인 게 특수식 생산 기업에 세제 혜택을 주는 것인데 현실적으는 쉽지 않다. 경희대 의학영양학과 박유경 교수는 “시장도 작고 해당 기업들이 소수 환자들을 위해 마음먹고 만드는 제품들이라 다른 기업들은 끼어들 엄두도 못 낸다”며 “해외에서는 특수식 제조업체는 특수식만 생산하는 경향이 있어 세제 혜택을 고려할 수 있지만 국내는 식품 대기업들이 생산하기 때문에 세제 혜택을 주기에는 적절하지 않다“고 말했다.

기업들이 특수식을 해외로 수출하기 위한 행정적 지원도 거론된다. 즉, 특수식 수요가 많은 해외 시장으로 유통을 확대해 전체적인 생산량을 늘린다는 것이다. 특수식 국가별 제품 인허가 규정과 심사 등은 매우 까다로운데 기업 입장에선 정부의 도움이 필요하다. 전 세계 특수식 시장은 2021년 기준 약 9조 5천억 규모로 매년 3~4% 수준의 성장률을 보이고 있다. 반면 국내 특수식 생산액은 세계 시장의 1% 정도인 981억 원 정도다.


아울러 환자들을 위해 특수식을 약으로 인정하는 절차도 필요해 보인다. 환자들이 연령과 상관없이 건강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정호 교수는 “의학적인 근거로 환자들이 평생 먹는 특수식은 처방과 급여의 범주로 들어올 수 있도록 하는 법령 개정이 필요해 보인다”며 “또 일부 질환자들에게 지원되는 특수식 중 버려지는 경우도 많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정말 필요한 질환자들에게 혜택이 가게끔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